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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세기, 인문의 기원 인문학을 위한 창세기 깊이 읽기
  • 지은이 | 펑샹
  • 옮긴이 | 박민호, 박은혜
  • 발행일 | 2016년 11월 24일
  • 쪽   수 | 690p
  • 책   값 | 32,000 원
  • 판   형 | 135*195
  • ISBN  | 9788967353919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책소개

「창세기」 스무 가지 이야기에 담긴
태초의 몸짓과 언어,
현대의 수수께끼가 되어 펼쳐지다

히브리어 성서의 집필, 편찬, 성서成書는 천년에 걸쳐 이루어졌다. 그 시작인 「창세기Genesis 創世記」는 경전인 동시에 서양 문화와 정신의 근간을 이루는 역사와 철학의 시원이다. 베이징대와 하버드대, 예일대에서 고대?중세문학과 법학을 전공한 저자는 「창세기」라는 복잡한 텍스트를 ‘인문人文의 기원’에 관한 이상적이고도 아름다운 전설로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성서의 수많은 조각과 그 조각의 교직은 동양적 맥락에서 해체되어, 종교적 교리에 그치지 않는 윤리적?존재론적 고찰로 확장된다. 독일어와 그리스어, 라틴어, 영어, 프랑스어, 히브리어 현대 성서를 비롯해 위경과 탈무드, 미드라시, 중세 밀교의 문헌까지 두루 아우른 저자의 역주를 통해 이 책은 「창세기」 읽기를 처음 시도하는 이에게는 매혹적인 안내를, 이미 성서에 익숙한 이에게는 다양한 층위에서 유희할 만한 새로운 질문들을 선사한다.

 

_태초太初에 새겨진 인간 역사의 원형

「창세기」는 성서의 시작인 동시에, 인류의 시작에 관한 역사서다. 성서에 따르면 인간의 지식, 죄의 출현, 법과 질서, 갈등과 분열, 즉 역사를 이룬 인문의 원형은 모두 창세의 결과였다. 그리고 그 역사는 오랫동안 구전과 수사본으로 전해지다 기원전 5세기에서 4세기 무렵 책으로 정리되었다. 탄생하기까지만도 천년의 세월이 걸렸고, 그것이 전해진 역사가 또다시 수천 년에 이를 만큼, 성서는 복잡한 텍스트다. 그것은 수많은 조각의 교직으로 이루어져 있고, 함축과 미로로 가득하다. 언뜻 읽으면 단순하게 읽히지만, 세밀하게 읽기로 마음먹으면 언어들은 한없이 세밀한 교직의 결을 드러낸다. 그래서 성서 번역의 역사와 그 사회적 영향 역시 또 하나의 역사가 된다. 탄생 이후 현재까지도 서양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상위 텍스트로서 성서가 지니는 절대적 의미는 정치 담론에서 철학의 존재론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력의 범위가 상당하다.

그런 까닭에 역사, 철학, 문학 등 여러 분야에서 인문학에 몸담거나 발을 담그려는 사람들은 그 바탕에 성서에 관한 앎을 깔아두고자 한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성서 읽기는 그것을 완수한 이에게나, 그러지 못한 이에게나 불완전한 느낌을 준다. 그것은 도전의 의미이기도 하고, 과정의 의미이기도 하며, 또 깊이의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성서의 시작인 「창세기」에서부터 이미 이런 불완전한 느낌을 경험한다. 『창세기, 인문의 기원』은 바로 그 경험을 공유하고, 확장하고, 유희하는 책이다.

저자 펑샹은 먼저 히브리어 성경을 직접 번역하고, 주석을 달았다. 이 과정에서 가장 권위 있다고 말해지는 독일의 『슈투트가르트 판 히브리어 성경』과 그리스어 칠십인역, 성 히에로니무스의 라틴어 역본, 그 밖에 영역본과, 프랑스어 예루살렘본, 루터 독일어 역본, 유대교 원전 타나크 등 고금의 평론과 주석을 두루 참조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창세기 역주’가 이 책의 하편을 이룬다. 그러나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 번역이라 해도 성서는 여전히 독자로부터 얼마간의 거리를 유지한 채 머문다. 그것은 성서의 언어과 그것이 속한 문화, 사유방식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더 아득하다. 동양인인 펑샹이 이 거리를 좁히기 위해 택한 방법은 성서의 해체와 그것을 재구성한 스토리텔링이다. 그는 역주에 미처 다 풀어내지 못한 내용을 히브리어와 헬라어 위경pseudepigratha, 바벨론 탈무드, 고대 율법, 중세 밀교의 문헌까지 다양한 기록을 참고해 새로운 이야기로 재탄생시켰다. 이것이 이 책의 상편을 이루는 「창세기」의 스무 가지 에피소드다.

따라서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판본의 성서와 이 책 하편의 「창세기」 역주, 그리고 상편의 스무 가지 에피소드는 서로 때로는 느슨하게 때로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 서로를 부러 뒤흔들어놓고, 또 어떤 면에서는 서로를 충실히 보완한다. 이러한 면면으로 인해 독자에게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얼마간 사색적이면서도 유희적인 의미를 띠게 된다.

 

_성서의 구절, 그 너머의 주석들

히브리어 성경은 다음 문장으로 시작된다. “태초에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그렇다면 창세 이전의 태초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버드대에서 성서 문학을 가르치는 모리 교수는 이렇게 답한다. “중요한 질문일세. 이것이 모든 문제의 시작과 끝이니까.” 신이 정해둔 윤리의 틀 안에서 신앙을 견지하며 답을 찾는 길은 오로지 하나다. 즉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었다는 가르침(토라), 곧 성서를 이해하는 것. 성서는 구절과 구절이 서로 호응하며 무한히 순환하는 언어로 짜여 있다. 그렇기에 비유와 상징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같은 맥락에서 성서의 첫 문장, 「창세기」 1장 1절을 다시 읽는다면 어떨까? 저자는 「잠언」과 「예레미야」 등에 연결된 교직을 통해 율법, 곧 지혜가 하느님의 창세를 도왔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탈굼에 수록된 「창세기」의 아람어 역본은 ‘태초’를 ‘지혜’로 번역하여 위 구절을 “지혜로 하느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적고 있다. 저자는 여기에 아람어가 기원전 8세기부터 근동에서 널리 쓰인 언어이며, 예수가 설교할 때 사용한 언어 역시 아람어였음을 들어 ‘태초’가 곧 말씀 혹은 지혜의 다른 이름임을 논증한다.

이렇게 성서를 해석할 때는 장절의 교직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단서를 준다. 가령 「창세기」 26장 35절에는 유딧과 바스맛이 이사악과 리브가의 속을 썩였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는 27장 46절의 “화가 나 죽겠다”는 리브가의 토로와 연결되며, 이어지는 내용을 통해 야곱이 하란으로 향하게 된 연원을 설명할 수 있다. 또 「창세기」 16:1, 25:21, 29:31에는 여주인의 불임과 그 극복이 인물만 바뀌며 이스라엘 가족사에서 일관된 주제로 등장하기도 한다.

한편 히브리어의 어근과 소리(발음) 또한 성서를 읽는 중요한 실마리다. 하느님이 “땅 위의 진흙을 취해 사람을 만드시고 그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자 아담이 영혼을 얻어 살아났다”는 구절을 읽을 때 히브리어 아담(adam)의 이름이 ‘흙을 뭉쳐’(adamah) ‘사람을 만드는’(adam) 과정과 긴요하게 연결되어 있음이 대표적이다. 울부짖는 하갈의 소리를 듣고 하느님이 내려준 이스마엘은 그 이름 자체로 ‘하느님께서 들으셨다’는 의미를, 라하이 로이(브엘라헤로이) 우물은 ‘영원하신 이가 보호하는 우물’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처럼 성경의 많은 구절과 거기에 사용된 단어들은 히브리어와 대조했을 때 대명사와 수數마저도 저마다 엄격한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단어의 쓰임이 이러하니, 몸짓과 행동은 물론이다. 옷을 찢는 것, 허벅지 안쪽에 손을 대고 말하는 것, 할례를 비롯한 고대 근동의 여러 관습과 사상 등 성서에 쓰인 표현 하나하나가 기호이자 의미다. 따라서 펑샹의 주석과 함께 「창세기」를 읽는다는 것은 기존의 성서 읽기와 얼마간 결이 다른 독서 경험을 선사한다.

여기에는 저명한 철학자 펑치馮契의 아들이자, 하버드와 예일대에서 고대?중세 문학 및 법학을 전공한 펑샹의 탐구도 한몫한다. 기독교 성서의 신구약 및 외경에 입각한 상세한 해설 외에, 펑샹은 고대 종교의 다양한 경전과 율법서를 넘나들며 「창세기」의 스무 가지 에피소드에 폭넓은 주석을 붙여두었다. 또 고대문헌뿐 아니라, 종교학의 대가 카렌 암스트롱의 저작을 비롯한 수십여 권의 성서 및 종교학 관련 역사서 등 현대의 연구 자료들도 두루 참고했다. 예컨대 요셉이 파라오의 꿈을 해몽하는 대목에서는 옛사람들의 꿈 해석학이 등장한다. 강간당한 디나, 그리고 그의 오라비 시므온과 레위, 그들이 세겜 부족에게 가한 복수는 모세로부터 전해지는 율법 외에 「희년서」와 「유딧기」 등 외경과 1세기 역사학자 요세푸스의 해설, 고대부터 현대까지 성서학자들의 다양한 견해가 덧붙여진다. 이 주석들은 다시 우리가 「창세기」를 읽으며 인간의 본성과 성서의 가르침, 죄와 윤리, 휴머니즘에 관해 논할 때 중요한 고리가 되어준다.

또한 성서가 그렇듯이, 이 책 『창세기, 인문의 기원』의 곳곳에도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수많은 단초가 자리하고 있다. 맥락의 배치와 구절의 등장, 표현의 선택에서 독자는 펑샹이 성서의 어떤 단어나 문장 또는 사상을 가져오고, 해석하고, 확장하는지 알아챌 수 있다. 이렇게 부러 능동적인 글 읽기의 판을 짜둠으로써 저자는 성서라는 텍스트 자체뿐 아니라 그것을 읽는 태도까지도 논의의 범주에 포함시킨다. 그것은 읽은 이에 따라 천의 의미를 드러내는 성서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바와 자못 닮아 있다.

 

_풀리지 않는 물음, 비완결의 대답

성경에는 카인이 동생 아벨을 살해한 일로 신의 심판을 받은 사건이 나온다. 이 사건으로 정통 교의에서 카인은 ‘악’을 상징했다. 하지만 성서는 현대사회가 ‘악’을 판단할 때 고려하는 일련의 성황에 대해, 그리고 그 판단의 결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지 않다. 가령 살인 동기, 범행의 수단과 방식, 시신 유기, 양형量刑과 집행 등에 대하여 독자는 알 길이 없다. 더 중요한 사실은, 아담의 장자인 카인은 인류의 조상이며, 문명사회가 그의 자손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따라서 카인의 생애와 공과는 인류의 존엄, 인간의 성품과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흔히 카인을 죄의 상징으로 해석하는 것처럼 쉽게 인류 문명의 시조는 ‘죄인’이며, 인간이 악을 숭상한다고 단정해야 하는가? 죄가 카인으로부터 비롯되었다면, 그의 후손이 약속된 축복의 땅에서 인류의 조상이 된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여기서 펑샹은 원인과 결과의 모순을 드러내며, 그 모순 또한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일상임을, 즉 모순됨의 보편성을 이야기한다.

『창세기, 인문의 기원』을 통해 읽는 「창세기」의 구절과 구절, 단어와 표현은 질문과 대답, 혹은 연속되는 질문으로 가득 차 있다. 천지창조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창세기」 1장에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는 말이 10번이 아닌 9번만 등장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사탄이 하느님께 반역한 이유는 무엇일까? 하느님은 왜 릴리트를 뱀으로 변하게 하여 그를 죄의 상징으로 만들었을까? 인간은 본래 악을 숭상하고 죄를 존엄하게 여기는 것일까? 아담과 카인, 노아와 이사악, 사라와 하갈, 야곱과 유다, 요셉은 무엇을 번뇌하고 무엇을 깨달았을까? 또 우리는 그들의 번뇌와 깨달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현재적으로 재해석할 것인가? 질문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리고 그것들은 결국 세계와 인간의 관계, 그 안에서 빛을 발하는 인간의 존엄에 대해 생각하게끔 한다.

이 책의 상편에는 「창세기」의 주요 인물과 사건에 저자가 직접 살을 붙여 재구성한 스무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하편 「창세기」 역주에 미처 담기지 못한 해설과 함께 그와 관련된 저자 자신의 경험을 더해 스토리를 구성했다. 거기에는 성서의 주요 인물들과 더불어 저자가 어울려 수학하고 사귄 지인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하버드에서 성경 문학을 가르치는 모리 교수, 그리고 그 아래서 함께 연구하고 토론한 학우들, 도서관에서 만난 사람, 고국인 중국에서의 인연들, 톨레도의 고성에서 만난 사람……. 이들은 저마다의 경험 속에서 「창세기」에 관해, 나아가 종교와 인생, 인류에 관해 질문을 던진다. 때로는 귀 기울이고, 때로는 쟁명하며 진지하게 혹은 유쾌하게 그에 대한 답을 구하려 한다. 이들의 모습은 어쩌면 성서를 읽는 우리 자신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텍스트를 읽는 독자는 그를 단지 습득하는 것을 넘어, 확장함으로써 세계와 연결 지을 수 있다. 저자 펑샹은 그의 벗, 지인, 스승,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독자와 함께 세계를 이해하고 상상하며 인간됨에 대해 함께 생각하고 표현하는 대화의 즐거움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죄에 관하여
서문│창세기: 조각과 해체

상편
태초
아담
릴리트
카인
메타트론
방주
니므롯
기적
하갈
눈을 들다
가랑비
만약
이사악
야곱
세겜
유다
높은 산
쇼핑몰
7년
목소리

하편
창세기 역주

수정판 후기│끝나지 않는 투쟁
추천 도서
옮긴이의 말│「창세기」 읽기의 유희와 정의

미리보기

인류의 생육과 노동, 가정과 사회생활에서의 존비尊卑, 애증, 투쟁, 그리고 여기서 발생하는 고통과 행복 따위의 온갖 감정은 모두 도덕적 각성과 윤리적 선택, 모색과 창조를 필요로 했다. 이것들은 에덴동산에서 수용되고 길러질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이렇듯 낙원과의 이별은 마치 아이가 성장하여 부모를 떠나는 것과 같은 새로운 생활의 시작이었다. 그것은 “신과 흡사한” 인간의 자손이 번성하고,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여 개조하기” 위한 선결 조건이었다. 따라서 에덴동산은 인간의 조상이 오래 머무를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신의 자녀들(그리고 동물들)이 에덴에서 쫓겨난 이유도 죄 때문은 아니었다.
_「한국어판 서문」

 

사탄은 아담이 자신의 자리를 빼앗았기 때문에 하느님께 반역한 것일까? 잔니의 말이 맞다. 하느님은 아담을 만든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야훼께서 진노하신 이유는 신의 아들 중 그를 대적하는 이가 나와 그가 사랑하시는 아담을 유혹하여 끝없이 죄짓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인자한 조물주는 어쩔 수 없이 아담에게 저주를 내리고 그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냈다. 또 에덴동산을 폐쇄하고, 홍수로 세상을 멸망시켜야만 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한 것은 사탄이 인간 세상에서 여전히 ‘현세의왕’(「요한의 복음서」 12:31, 16:11)으로 군림하고 있으며, 아직도 심판을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_「아담」

 

물론 신학이 신화와 타협할 수는 없기에, 신학은 성경 해석에 있어 신화와는 다른 방향으로 끝까지 따져 묻기 마련이다. 「창세기」의 편찬자가 아브라함의 일대기를 기록한 목적은 역사의 기록이나 도덕적 교훈에 있지 않다. 그것은 하느님과 하느님 자녀들 사이의 관계 회복에 있다. 이것은 신앙에 대한 기록이며 신앙으로 지탱되는 이야기다. 즉 야훼께서 거룩한 조상을 시험하여 여러 고난(기근을 피해 이집트로 이주하고, 아내를 강제로 다른 이에게 시집보내며, 하나뿐인 아들을 제사 지낼 뻔했던 일들)을 겪게 하심으로써 그의 충성스러움을 확인했다는 이야기 말이다.

_「기적」

 

모리 교수님께서 일전에 제게 물으셨습니다. ‘태초에 만물이 말씀으로 시작되었으며 아담과 하와는 야훼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는데, 악인은 왜 악을 행하며 선한 사람은 왜 고난을 당하는 것이지? 누가 이 문제에 대해 책임져야 하나?’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이런 문제는 토론할 수 없으며, 논리적인 답을 낼 수도 없다’고 말이죠. 그러자 교수님께선 저더러 법학을 배우라고 하시더군요.” 말을 마치며 그는 큰 소리로 웃었다. 그러곤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어 있으며, 영혼은 선을 좇지만 육체는 사탄에게 속하여 끊임없이 죄를 짓기 때문에 세상이 고난에 빠졌다는 주장을 예로 들었다. 그는 또 성경에서 몇 가지 주제를 고른 후 내게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좋을지 물었다.

_「눈을 들다」

 

저자는 「창세기」 속 이야기를 단순히 황당무계한 고대 신화의 일종으로 치부해버리지 않고, 그것을 일단 ‘진실한 것’으로 받아들여 경건하고 진지하게 다룬다. 가령 그는 「창세기」의 하느님을 잔학무도하고 폭력적인 존재가 아닌 전지전능하고 자애로운 존재로 전제한 후, 신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이 보여주는 희생, 헌신, 의지, 숭고 등에 커다란 가치를 부여한다. (…) 휴머니즘이야말로 그의 「창세기」 해석이 비신자들의 통념이나 기독교의 기성 교리와 다르다면 다른 부분일 것이다.

_「옮긴이의 말」

지은이/옮긴이

지은이

펑샹 馮象

1953년 상하이에서 태어났다. 소년 시절 윈난의 변경으로 하방되어 그곳 소수민족에게 9년간 재교육을 받았다. 이후 다시 정규교육을 받기 시작하여 쿤밍사범대 영미언어문학 학사, 베이징대 영미문학 석사를 거쳐 하버드대에서 중세문학 박사, 예일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홍콩대 로스쿨 부교수(1993~1999), 하버드대 로스쿨 객좌교수(2001~2002)를 지냈으며, 현재는 칭화대 로스쿨에서 법학을 가르치고 있다. 연구 분야로는 법률과 종교(성서학), 법률과 윤리(직업윤리), 법률과 문학(법리, 사회비판), 지식재산권(민상법) 등이 있다. 저서로 『베어울프: 고대영어서사시』 『중국의 지식재산권』 『정법노트』 『유리섬』 『모세오경』 『지혜서』『신약』 등이 있다. 그 외에도 법학평론, 소설, 시가 등 여러 분야에 걸쳐 글을 쓰고 있다. 『창세기, 인문의 기원』은 히브리어 성서를 대본으로 하여 「창세기」를 강설하고 원문을 직접 현대어로 옮겨 함께 실었다. 펑샹의 「창세기」 역주는 동서고금의 평론과 주석을 참조해 인문학적 주석을 붙인 엄격한 해설을 추구하는 한편, 동서양 정신문화의 흐름 위에서 성서를 새롭게 해석했다는 평을 받았다.

 

옮긴이

박민호

한국외대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중국 현대문학을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 현대문학 및 문화에 관한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주요 역서로 『중국, 묻고 답하다』 『야만의 시대, 지식인의 길』(공역) 등이 있다.

 

박은혜

한국외대 대학원에서 중국 현대문학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중국 현대소설과 대중문화 현상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