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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구 없는 사회 무한한 욕망의 세계사
  • 지은이 | 다니엘 코엔
  • 옮긴이 | 박나리
  • 발행일 | 2019년 03월 04일
  • 쪽   수 | 232p
  • 책   값 | 15,000 원
  • 판   형 | 135*210
  • ISBN  | 9788967355982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추천의 글
책소개

물질적 진보의 약속이 사라지면 삶은 비참하고 투박해지지 않을까

이 책은 성장을 향한 무한한 욕망의 세계사를 다룬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다니엘 코엔은 구석기에서 시작해 디지털 시대에 이르기까지 성장을 향한 인간의 욕망을 하나의 서사로 구축해낸다. 역사학, 지리학, 사회학, 정치학, 철학적 시각이 녹아 있으며, 경제적 흐름과 맞물린 지적 논쟁들이 등장·반박되는 가운데 논의는 깊이를 더해간다. ‘경제적 욕망’을 중심으로 서술되는 인류 역사가 이 책의 주제이지만, 산업혁명 이후의 개인주의에서 ‘동성애는 범죄인가’라는 주제로 옮겨가는 등 이야기의 흐름은 독자의 예상을 넘어선다.

오늘날 가장 큰 문제는 성장을 향한 인간의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 큰데 사회는 저성장으로 접어들었다는 점이다. 그러면 인류는 자기 욕망을 누르고 ‘저성장’을 견뎌낼 수 있을까. 타인에 대해 시기심을 품지 않고 지나친 경쟁도 하지 않으면서? 그런데 성장세가 강할 때 사람들은 사회를 향한 믿음을 갖는 반면, 성장세가 약할 때는 비관론에 빠진다. 성장이 강하거나 약함에 따라 개인은 자신을 사회에 통합시키기 위해 묵묵히 노력하고, 일자리를 찾기 위해 애쓰는 등 긴장감은 날로 더해간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성장 가능성이 거의 없는 위기에 직면한 인류는 계몽주의적 사고를 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물론 전 지구적 차원의 집단행동은 이끌어내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자발적 움직임은 더더욱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더라도 성장이 닫힌 사회라는 난제에 부딪힌 인류가 계몽적 사고를 하길 포기한다면,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고속열차 안에서 ‘유한성’이라는 새로운 시련에 전례없이 맞서야만 할 것이다.

 

현대인은 정신적 한계를 넘어선 삶을 살고 있다

버블 뒤에 폭락이 이어지고, 폭락 뒤에 버블이 이어진다. 경제성장이 뜻대로 안 되자 정책결정자들은 대책을 내놓지만 국민의 원성을 살 뿐이다. 사실 그들은 핵심 질문은 외면하고 있다. 무한 성장이라는 약속이 무의미해졌다면? 우리는 또다른 만족감을 찾아낼 수 있을까, 아니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질까? 과거 선조들은 이렇게 질문했다. ‘신이 없는 세계에서 살아갈 가치가 있을까?’ 이 질문은 오늘날 이렇게 바뀌었다. ‘물질적 진보의 약속이 사라진다면 우리의 삶은 비참하고 투박해지지 않을까?’

현대사회는 케인스가 내놓았던 예측보다 6배 이상 부유하지만, 물질에 대한 욕망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우리는 세계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모든 부를 다 소비하고도 남을 태세다. 반면 성장은 멈췄다. 가령 미국은 인구 90퍼센트의 구매력이 지난 30년간 전혀 오르지 않았다. 그 이유는 뭘까? 첫 번째 원인은 노동의 측면에 있다. 성장률이 높아지려면 고성능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일자리가 사라진 인간들 자신이 생산성을 높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가령 피자 배달부 자리처럼 단순직과 비정규직이 늘면서 많은 노동자의 생산성은 정체되고, 이로써 성장 잠재력은 상당히 감소하고 있다.

후기 산업사회는 20세기적 성장 시대와는 다르다. 지금 사회는 카풀, 소개팅 등 사회적 상호작용을 더 잘 관리하고, 공해를 줄이며, TV 채널 수를 늘리는 데 주력한다. 디지털 사회는 레몬즙을 짜내듯 노동자를 쥐어짜지만(생산 측면), 디지털 사회가 만들어내는 세상은 이미 그 상징이나 다름없는 태블릿 PC와 스마트폰으로 포화돼 있다(소비 측면). 이런 상황에서 인류는 불안감에 빠지지 않은 채, 자율과 자유의 가치들을 추구할 수 있을까.

 

왜 우리는 일자리나 사회적 지위를 잃을까봐 전전긍긍하게 됐는가

우리는 풍요로운 사회에서 살지만, 일자리나 사회적 지위를 잃을까봐 걱정한다. 풍요 사회가 도래해 만인이 예술과 형이상학에 집중하게 되리라고 했던 케인스의 예측은 어긋났다. 어째서 물질적 부는 인류를 물질적 문제로부터 해방시켜주지 못할까?

우리는 내가 ‘평균’이라고 생각하는 기준점에 비해 행복하거나 또는 불행한데, 결국엔 현재 처한 상황이 언제나 새로운 기준점이 된다. 따라서 아무리 노력해도 늘 같은 출발점에 머무는 챗바퀴를 돌리는 것이다. 한편 손실에 대한 공포는 무언가를 취득하는 데서 오는 만족감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어떤 대비책을 세우든 간에 이 공포는 개인을 늘 괴롭힌다. 개인이 돈을 벌어 곤궁에서 벗어나더라도, 이 새로운 상태가 곧바로 새로운 기준점이 되어 모든 것이 또다시 시작된다.

이는 ‘이스털린의 역설’이라는 개념으로 정립되는데, 행복을 향한 헛되고도 지칠 줄 모르는 추구를 통계화한 것이다. 자신이 주변 사람들보다 가난하고 뒤처졌다는 사실은 저주나 다름없는 최악의 상황이다.

그렇지만 문제의 핵심은, 인간이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욕망의 법칙을 따른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작동하는 데 어째서 부 자체보다 부의 성장이 더 중요한지가 설명된다. 성장은 현재의 심리적·사회적 상태보다 더 상승하고자 하는, 덧없지만 늘 새로이 갱신되는 희망을 만인에게 선사한다. 성장의 실현이 아니라, 그러한 성장의 약속이 불안을 잠재우는 셈이다.

 

중산층은 몰락의 위험성이 가장 크고 디지털 경제는 너무 빨리 사라진다

빈부격차가 극심하다는 것이 상수가 되어버린 오늘날, 몰락의 징후가 가장 큰 부류는 중산층이다. 경제적 등급을 3으로 나눈다면, 레벨 2는 관리감독, 행정직, 숙련노동자 등 사회 위계질서 중간층에 속하는 직종들이다. 최근 30년 사이 성장률이 추락한 것은 ‘중산층’의 직종이었다. 후기 산업자본주의 사회에서 임금 책정 방식은 ‘최강자’에게 전부를, 2위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 경향으로 흐른다. 고용계는 양극단으로 치우치는 가운데 엄청난 불균형이 생겨나, 고소득자의 임금은 끝없이 올라가고 일자리는 한없이 줄어드는 것이다. 그중 사라지는 것은 가운데의 중산층이다. 더불어 이들 존재가 구현해내는 민주주의도 깊은 타격을 입게 된다.
최근 10~20년 사이에 급격하게 성장한 디지털 경제는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시리즈를 중심으로 돌았을 뿐이다. 이것은 혁명이라 이를 만하지만, 앞선 산업혁명과 과학혁명과는 다른 방식의 성장이었다. 게다가 앞의 두 차례의 혁명은 그 성장 잠재력이 사라지기까지 1세기가 걸렸던 반면, 대중 소비라는 성장 개념은 우리가 현실을 받아들일 준비조차 안 된 상황에서 눈앞에서 사라져가는 중이다.

브린욜프슨과 맥아피가 말하듯이, 경제학자들은 ‘떳떳치 못한 작은 비밀’을 숨기고 있다. 즉 기술적 진보의 몫은 우리 모두가 향유할 게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오늘날 우리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자산”이라는 말이 통용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바라는 ‘성장’의 발목을 잡는 가장 핵심적인 요인이다.

 

당신이 세계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 때 우울증이 생겨난다

후기 산업사회는 ‘우수성’을 기준으로 기업을 근로자가 성장해나가야 하는 행동 장소처럼 내세운다. 개인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는 근무 시스템은 파괴적인 영향을 야기하는데, 이를테면 낙담, 소외 현상, 은밀한 경쟁이 그것이다. 여기서 ‘번아웃’ 증후군이라는 새로운 질병이 생긴다. 이 병은 인류 자신이 ‘작동 불능’임을 경고한다.

르네 지라르의 ‘이중 구속’ 개념이 우리의 분석틀이 될 수 있다. 회사는 근로자를 향해 “주체적으로 살아라”라고 말하면서도, 각종 프로그램을 끼워넣어 근로자의 자율성을 사실상 막는다.

사회학자 알랭 에랭베르는 현대의 정신병은 신경증이 아니라 우울증이며, 개인이 세계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 때’ 우울증이 발생한다고 봤다. 그런데 우울증의 ‘경제적 문제’는 그것에 걸린 사람을 비생산적으로 만든다는 데 있다. 우울증을 앓는 이들은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뿐 아니라 하루 일과를 짜는 것조차 어려워한다는 게 최근 연구 결과로 밝혀졌다. 반대로 쾌활한 사람들은 좋은 친구이자 동료, 이웃, 나아가 최고의 시민이다.

행복은 더 나은 사회적 관계에 기여하는 자기 충족적 현상이며, 이것은 당사자의 건강까지 개선시킨다. 예컨대 긍정적 감정을 지닌 사람은 염증성, 심혈관성, 신경내분비성 질환에 훨씬 덜 걸린다. 반면 신경질적인 사람들은 과일보다는 정크푸드를 먹는다. 실직이 위험한 것은 단지 소득을 잃는 데만 있지 않고, 사회적 지위, 자존감, 타인과의 유대관계를 잃는 것으로 이어지는 데 있다. 그들은 다시 일자리를 찾은 뒤에도 정상으로 되돌아오는 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사회적 족내혼은 또 다른 비극을 준비한다

예전엔 TV를 사고 자동차를 마련하는 것으로도 행복했다면, 오늘날은 그런 것만으로 사회를 신뢰하기가 어려워졌다. 이제 핵심적인 질문은 다음과 같다. 공장과 대중 소비가 더는 사회적 중재의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사회적 중재는 어떻게 이뤄질까? 여기서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사회적 족내혼social endogamy’이다. 같은 계급 출신끼리 교제 범위를 제한해 평등 문제에 직면하길 피하는 것이다. 명문대생은 명문대생과, 지방대생은 지방대생과, 그리고 고졸자는 고졸자끼리 만나 결혼한다. 최상위권은 최상위권끼리 어울리면서 그 아래 사람들은 남아 있는 유일한 시장, 즉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로 향한다.

현대사회에 엘리베이터가 발명되기 전, 부자들은 3층에, 가난한 이들은 꼭대기 층에 살았다. 이들은 늘 서로 마주쳤고, 말을 섞진 않더라도 이들의 자녀는 대체로 같은 학교에 다녔다. 하지만 엘리베이터가 보급된 후 부자와 빈자는 사는 건물이 나뉘어 서로 마주칠 일이 없어졌다. 여기에 광역급행전철이 생기면서 두 계급 간의 공간은 확연히 분리되고 더 견고해졌다. 교외지역 주민들은 토요일 저녁이면 도심에서 사진을 잔뜩 찍고는 집으로 돌아간다. 사회 도처에서 일련의 폐쇄적 세계가 형성되며, 노동자는 자기가 첫발을 내딛은 그 여정이 곧 자신의 운명이 되어버리는 세상을 살아간다.

그렇다면 이제 끼리끼리 모이게 됐으니, ‘비교’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이나 긴장은 줄어들게 됐을까. 상황은 그리 간단치 않다. 사회적 족내혼은 또 다른 비극을 준비한다. 비슷한 사람끼리만 모일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유사성은 또 다른 가능성들을 배제함으로써 저주가 되었다. 유사성이 일종의 젗이 되어 그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사회적 폐소공포증을 유발하는 것이다. 이런 위협 속에서 사회는 차이점이 두드러지는 희생양으로 눈을 돌린다. 이것이 바로 후기산업사회에서 관용이 생겨나기보다는 거꾸로 인종주의와 외국인 혐오증이 짙어지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목차

서문

1장 성장의 원천
1. 인류
2. 대이동
3. 2026년 11월 13일
4. 화폐의 탄생
5. 역사의 절도
6. 닫힌 세계에서 무한한 우주로

2장 미래, 미래여!
7. 특이점이 온다
8. 인간의 노동은 어디로 향하나?
9. 성장이 자취를 감추다
10. 할리우드에 간 마르크스
11. Collapsus novum: 새로운 파탄

3장 진보를 재고하기
12. (새로운) 대변혁
13. 자율과 생존
14. 신화와 한恨
15. 이중 구속
16. 덴마크처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7. 사회적 족내혼
18. 성장을 넘어서서

결론

미리보기

어째서 물질적 부는 인류를 물질적 문제로부터 해방시켜주지 못할까? 근본적으로는 결국 뒤얽혀 있긴 하지만, 그 대답을 두 가지 차원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한 가지 대답은 개인적 차원으로, 개인이 지닌 욕망의 구조가 행복을 향한 열망을 구속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한 가지 대답은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는 사회구조적 차원의 대답이다. _154쪽

 

일의 만족도는 삶의 기쁨 가운데서 핵심적인 요소다. 행복은 더 나은 사회적 관계에 기여하는 자기 충족적 현상이며, 이 사회적 관계 또한 행복의 한 요소다. 뿐만 아니라 당사자의 건강까지 개선시킨다. 예컨대 ‘긍정적 감정’을 지닌 사람은 염증성, 심혈관성, 신경내분비성 질환에 훨씬 덜 걸린다. 긍정적인 기분은 영양 섭취의 질에, 따라서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신경질적인 사람들’은 과일보다는 ‘정크푸드’와 팝콘을 먹는다. 우울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비만이 될 확률이 훨씬 더 높으며 흡연자가 될 확률은 두 배 더 높다. _171쪽

 

이러한 가변성은 저주인 동시에 기회다. 왜냐하면 욕망이 어떠한 차원으로 펼쳐지는가는 사실상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인간이 노동이나 작품 속에서 자신을 승화시키고, 사회생활이라는 무대에서 제 몫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인간의 이러한 욕망을 지구의 보전과 양립시키려면, 인구 변화에 힘입은 것과 비슷한 변화, 즉 양에서 질로의 이행이 필수적이다. _204쪽

지은이/옮긴이

지은이

다니엘 코엔Daniel Cohen

오늘날 프랑스 지성을 대표하는 학자 중 한 사람이다. 프랑스의 파리고등사범학교에서 수학했으며 현재 파리1대학, 파리경제대학, 파리고등사범학교 경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다양한 저서를 통해 경제 현상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높이고 바람직한 경제 정책이 무엇인가에 대해 사회적 발언도 활발히 하고 있다. 미국의 폴 크루그먼이나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같이 사회적 영향력을 크게 끼치는 경제학자로서 그의 관심사는 개발도상국 경제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부채 및 성장 문제에 관해 많은 연구를 수행해왔다. 시장방임주의적 담론에 비판적이며 스스로를 실용적 경제학자로 규정하는 코엔은 프랑스 정부와 국제기구의 정책 수립에도 적극 관여해왔다. 『악의 번영』은 2009년 초 출간되어 프랑스 아마존 종합베스트셀러 3위에 올랐으며, 그해 가장 많이 팔린 책 가운데 하나다.
프랑스 총리 지원 기관인 경제분석위원회 CAE 위원과 OECD 개발센터 자문위원으로 활동했고, 『르몽드』 편집위원이며 지식 전문 라디오 방송에서 경제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저서로 『화폐, 부, 부채』 『번영의 불행들』 『세계화와 그 적들』 『후기 산업화 사회의 세 가지 교훈』 『악의 번영』 『호모 이코노미쿠스』 등이 있다.

 

옮긴이

박나리

연세대 불문학과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한불과에서 순차통역·번역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세금혁명』 『대재난』 『밤의 과학』 『제7대 죄악, 탐식』 『경솔한 여행자』 등이 있다.

추천의 글

“독자들을 애타게 만드는, 박식하면서도 독창적인 책. 인류는 성장을 향한 끝없는 갈망과 경제의 (그리고 지구의) 한계 사이의 갈등을 무사히 헤쳐나갈 수 있을까? 코엔의 결론은 우아하고 희망적이며 논쟁적이다. 한번 들면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걸작.”

_에스더 듀플로, 『가난한 경제학』 저자

 

“현대사회가 저성장을 견뎌낼 수 있을까? 이 책에서 코엔은 이 중요하고도 핵심적인 사안에 관한 가장 명확하고 훌륭한 분석을 보여준다. 인간적인 경제학을 보여주는, 다니엘 코엔의 흥미롭고도 단도직입적이며 뜻깊은 책.”

_제프 맥드릭, 『일곱 가지 터무니없는 생각』 저자

 

“이 흥미롭고 시사하는 바가 많은 책은 인류가 항시적인 열망 상태에서 살아갈 필요가 있는지자문한다. 그 안에서 다루는 레퍼런스 또한 무척 폭넓다.”

_하워드 데이비스, 『금융 시장은 통제될 수 있을까』 저자

 

“혼돈의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가이드. 전문적이면서도 가독성이 높은 텍스트다.”

_파트리스 트라피에, 『르 주르날 뒤 디망슈』

 

“수레바퀴부터 아마존에 이르기까지 완벽하게 몰입되는 여정.”

_섀런 쉰, 『비즈에드』

 

“다양하고도 풍부한 역사적, 철학적 레퍼런스가 담겨 있다.”

_제라르 모아티, 『레 제코』

 

“간결하고 쉽게 읽히지만, 논의의 깊이는 상당하다. 코엔의 희망적인 메시지는 성장을 향한 믿음의 소멸이 새로운 휴머니즘을 위한 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_『프로스펙트』

 

“다양한 학문을 광범위하게 살피는 고무적인 책.”

_데이비드 로리머, 『패러다임 익스플로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