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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사람들의 눈물[절판] 조선의 만시 이야기
  • 지은이 | 전송열
  • 옮긴이 |
  • 발행일 | 2008년 08월 18일
  • 쪽   수 | 399p
  • 책   값 | 14,800 원
  • 판   형 | 140*207
  • ISBN  | 9788954606493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책소개

죽음을 詩로 쓰면 어떻게 될까?

죽은 자를 애도하여 지은 시를 만시挽詩라 한다. 이생을 떠난 이를 기림으로써 그에 대한 글을 남기는 것이 조선시대에는 당연한 예의에 속했고 그것이 만시의 역할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산 자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하는 것은 만시의 또다른 핵심이 될 것이다. 오언절구나 칠언율시로 씌어진 만시는 격정을 이기지 못해 장편으로 길어지기도 하고 슬픔의 자취를 감쪽같이 없앤 단형구로 남기도 한다.
그리고 조선시대엔 권세가가 돌아가면 문전에 만시가 수북이 쌓일 정도로 흔해서 만시들이 모두 심금을 울리는 명문장은 아니었다. 조선중기의 대문장가 택당澤堂 이식李植은 대충 격식에 맞춰 쓴 의례적인 만시를 거부하고 스스로 죽기 며칠 전 간결하게 자만시自挽詩를 지었다.
어떤 만시는 밋밋한 반면 또 어떤 시는 글이 힘이 있고 애절하다. 그런 차이는 만시를 지은 이가 문학적 탁월함을 갖췄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기도 하고, 또 죽은 이에 대해 통절한 심정을 얼마나 내면에 깊게 쌓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이 책에 소개되는 만시들은 지난 20여 년간 조선시대 시문학을 전공해온 저자가 문학적으로 뛰어난 명편만을 골라 엮고 그 역사적 유래와 미학적 특징을 분석한 것이다. 죽음 앞에서 감정을 꾸밀 새가 없었던 이들의 속내가 투명하게 드러나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모든 슬픔이 직설적인 화법으로만 다뤄진 것은 아니다. 한 예로 산운 이양연이 둘째 아들을 떠나보내며 지은 시에는 ‘슬픔’이나 ‘눈물’ ‘아픔’ 같은 시어들을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문을 들어서려다 다시 나와서
고개 들어 바쁘게 두리번대네.
남쪽 언덕엔 산 살구꽃이 피었고
서쪽 물가엔 해오라비 대여섯
-「슬픔을 피하려고□悲」

‘타비’라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슬픔을 피하고자 지은 까닭 때문인지, 이양연은 슬픔을 말로 설명한 것이 아니라 풍경으로 보여주고 있다. 풍경에 떠넘겼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그렇게 언어의 한계성을 극복하고 있다. 17세기의 시인 이명한이 처남 박미의 상을 당하여 읊은 만시 역시 희망과 편안함을 드러내며 산 자의 여유로움을 보여주는 독특한 시이다. 처남이 죽었건만 저승에 가서 먼저 떠난 자기 부인을 만나면 안부 좀 전해달라는 여유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심노숭의 저 유명한 「누원淚原」에서 볼 수 있듯이 죽음에는 당연히 눈물과 슬픔이 뒤따른다. 자하 신위는 너무 슬퍼한 나머지 예禮를 잃기도 했고 김상채는 “아들을 잃어버리고 상심한 이후로 마음을 가누지 못해 몸도 쇠하여지고 병도 깊어졌으며 슬픔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이어져만 갔다”며 만시를 지어 남겼다. 반면 이건창은 아내를 떠나보내고 난 후 슬픔이 희미해졌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이처럼 죽음의 비애스런 순간은 다양한 문장으로 드러난다. 이 책에 소개된 죽음을 포착한 35편의 시를 통해 독자들은 조선 한문학의 유려한 미학적 순간들을 새롭게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산문이 드러낼 없는 시의 묘미

옛사람들이 남긴 문집을 보면 시를 비롯하여 편지글, 제문, 묘지문, 행장, 전傳, 논설 등 매우 다양한 종류의 글이 실려 있다. 죽은 이를 위해서는 흔히 지어진 것들이 제문, 묘지문, 행장이다. 하지만 만시는 이러한 산문과는 구별된다. 살아남은 자는 쉬이 잠잠해지지 않는 심정을 구구절절 산문으로 옮겨 적을 수도 있겠지만, 시에서는 울컥하는 심정을 한번 삭였다가 그것을 절제된 언어로 드러내는 특징이 있다. 가령 삼당시인 이달李達(1561~1618) 이 죽은 아내를 생각하며 지은 만시는 유독 우아하고 서정적이다. 먼지에 거미줄을 손에 만져질 듯이 제시했고 복사꽃과 닫힌 문을 겹치게 놓아 심리적 단절감을 강조했다. 그것은 안개와도 같이 사랑하는 이의 부재를 덮는다. 은은해질 때까지.

화장함엔 거미줄, 거울엔 먼지 일고
닫힌 문에 복사꽃 핀 적막한 봄이라
예전처럼 다락에 밝은 달은 떴건만은
그 누가 있어 저 주렴 거두어줄까
– 이달이 「죽은 아내를 슬퍼하며悼亡」

또한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이미 300여 수의 시를 남겼던 천재적 시인 김숭겸을 기리기 위해 김창흡은 시를 지었다. 그는 산문이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조카가 시를 목숨보다 사랑했기 때문에 자신도 시로서 마지막 길을 전송한 것이다.
몇 줄의 글로 살아남은 자의 심사를 적기엔 부족했던 탓인지, 영조 때 좌의정을 지냈던 겸재謙齋 조태억은 아들의 죽음을 10수나 되는 연작시로 남겼다.

 

누구를 대상으로 했나?
만시는 아내를 위해 지은 도망시悼亡詩, 친구를 위한 도붕시悼朋詩, 먼저 간 자식을 위한 곡자시哭子詩 외에 스승과 제자, 선배, 자신이 데리고 있던 종을 위해서 지어지기도 했다. 나아가 자기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기린 자만시自輓詩도 있다. 특히 조선의 사대부들은 사랑하는 여인을 위한 마음을 드러내놓을 수 없던 처지였는데, 예외적으로 아내가 저세상으로 떠나갔을 때 지었던 도망시만큼은 체면이고 위엄이고 다 내려놓고 마음껏 통곡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중 추사가 아내 잃은 심사를 적은 것은 도망시 중에서도 압권으로 꼽힐 만큼 뛰어나다고 평가받는다. 추사는 생전에 수많은 난을 쳤듯이 아내의 삶과 죽음이 마음에 여러 굴곡들을 남겼음에도 힘겹게 천천히 따라가면서 난을 치는 심정으로 극복해냈을지도 모른다.

뉘라서 월모에게 하소연하여
서로가 내세에 바꿔 태어나
천 리에 나 죽고 그대 살아서
이 마음 이 설움 알게 했으면
-「유배지에서 아내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만시를 짓다配所挽妻喪」

추사는 제주 유배지에서 자주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아내가 아픈 뒤부터는 더욱 자주 보냈다. 약을 제대로 쓰고 있는지, 아예 드러누웠다는데 그렇게 아픈 것인지 등 걱정이 끝이 없었다. 결국 아내는 지병이 악화돼 죽었지만 추사는 그것도 모르고 그 다음날 편지를 썼고, 그 후로도 한달 동안 답장을 기다렸다. 위의 시는 한달 뒤에야 아내의 죽음을 전해듣고 원통한 마음에 나 죽고 그대 죽어 이 원통함 알게 했으면 하는 심정을 나타낸 것이다.
자하 신위는 당대의 뛰어난 시인이었듯이, 죽은 아내를 생각하며 많은 시를 남겼다. 그 중에서 “가슴에 매실이 든 것처럼 시큰거린다”는 시는 사랑하는 이의 부재가 오래 지속되며 앙금처럼 남아있는 현실을 경험적으로 잘 호소하고 있다.

눈물을 참는 것이야 이젠 어렵지 않소만
이 인생 몇 번이나 기쁨과 슬픔 겪을는지
가슴속엔 푸른 매실이라도 들은 것처럼
이상하게 오래도록 시큰해져오는구려

조선시대의 만시 중에선 독특한 느낌을 주는 것도 많다. 그중 하나가 남의 슬픔을 대신해서 지은 대인작이다. 조선중기 당시풍의 시로 명성을 날린 백광훈이 지은 「남을 대신해서 지은 만시」는 누군가가 부탁하여 그 심정을 대신하여준 것이지만, 본인이 당한 일처럼 느껴질 만큼 그 내용이 비감하기 짝이 없다.

그 옛날 집엔 고운 먼지만 가득하고
새 무덤은 얼었고 길은 멀기만 하오
백년해로 하자던 약속의 말만 남긴 채
수없이 흐르는 눈물에 부쳐서 보낼 뿐이오
-「남을 대신해서 지은 만시挽代人作」

또한 가장 독특하게 주목해볼 만한 것이 소위 자만시다. 이 책에서는 총 3편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중 택당 이식은 죽기 꼭 20일 전에 병상에 누워 시를 받아적게 함으로써 자만시를 남겼다. 산운 이양연 역시 한 편의 자만시를 남겼는데, 짧지만 한평생의 시름이 그 안에 모두 담겨 있다.

한평생 시름 속을 지나다보니
밝은 달은 봐도봐도 만족치 못했는데
이젠 길이길이 대할 것이매
무덤 가는 이 길도 나쁘지는 않으리

이처럼 먼저 가고 나중에 가는 인생들이 모두 어우러져 드러나는 공간이 만시다.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가도 인생의 슬픔이 모두 여기서 생겨난다는 것이 예사롭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천년 사는 나무도 사라짐이 아쉬워 죽어서 또 천 년을 산다는데, 이에 비하면 인간의 삶이란 전광석화처럼 순간에 불과해 한 번 퍼덕거리고 나면 다 지나가버린다.
아득하고 어지럽게 저세상으로 가버린 친구 생각, 즉 권필이 죽은 친구 구용을 생각하며 적은 시는 그들의 정신적인 사랑을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친구가 떠난 후 남겨진 이의 삶의 모습이 황폐해진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한 권필을 기억하는 것은 또 다른 친구 이안눌의 몫이 됐다. 권필은 광해군 왕비 유씨 집안의 득세를 시로 풍자했다가 지독한 고문을 받고 유배길을 떠날 때 주막집 한켠에서 술을 벌컥벌컥 들이키고는 그대로 절명했다. 그의 나이 44세였다. 권필이 죽을 때 창밖에는 복사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친구 이안눌은 시구 하나 때문에 죽어 사라진 시인의 운명을 귀를 씻고 눈을 감아가며 저주했다.

내가 오래 살았음이 한스러운 것이 아니라
내게 귀가 있다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네
저 수많은 산 비바람 몰아칠 때에
천재 시인 죽었단 얘기 내 귀에 들리다니
-「석주를 곡하며哭石洲」 2수 중 첫 수

세월은 흘러 1624년, 이안눌은 54세의 나이에 이괄의 난에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하옥되었다가 특명으로 함경도 경성으로 유배를 가게 됐다. 이 때가 3월 28일이었다. 마침 친구 권필이 죽은 동대문 밖 주막 앞을 지나다가 이안눌은 죽은 친구와 자신이 똑같은 처지가 된 생각에 그만 마음이 처연해졌다. 저 앞에 주막집이 보이는데, 이안눌은 친구 생각에 목이 메이며 다시 그리움이 밀려왔다.

미천한 신의 죄 커서 죽어도 외려 마땅한데
저 먼 곳 유배 가며 좋은 시절 생각해보네
복사꽃 흩날리는 동쪽 성문을 지나가자니
진짜 시인 내 친구 생각에 지금도 슬프구나
-「3월28일에 동대문 밖에서 말을 타고 가며 시를 짓다三月二十八日 興仁門外 馬上口號」

혜환 이용휴 역시 친구 유서오의 죽음을 애도하여 다섯 수의 시를 남겼다.

보배를 다른 곳에 맡겨놓으면
하룻밤도 지체 않고 되찾는데
다행히 주인이 잊어버리는 바람에
오십삼 년 동안을 빌려 썼구려

삶을 “오십삼 년 동안을 빌려 썼다”고 표현한 것도 매우 탁월하지만, 이 시가 전혀 슬프지 않다는 점 또한 주목해봐야 할 것이다. 그것은 유서오가 살아생전에 “처세는 길 가는 나그네처럼 하다가 일 끝나면 곧바로 돌아가야 하오”라고 말하곤 했는데, 그가 정말로 나이 53세에 그 같은 형국으로 돌아가고 말아, 이용휴는 친구의 죽음을 심히 슬퍼하지 않고 달관의 자세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조선시대 만시를 유형별로 엮어 해설한 최초의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 이것은 평소에 항상 느끼고 사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에 소개된 이들 중 요절한 예민한 젊은이들은 자신이 소멸해가는 속도를 뜬눈으로 지켜보고 늘 마음에 담아두어야 했다. 그리고 그 죽음을 옆에서 지켜보았던 이들은 슬픔을 숨길 새도 없이 가슴을 찢으며 통곡하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세상과 저세상이 다르지 않다며 초연한 자세를 보인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초연한 심정조차 10년이고 20년이고 아픔을 삭인 후 나온 것이지, 죽음을 당면한 직후에 마치 그 사람이 없었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간 이들은 없었다.
이 책은 죽음을 되돌아봄으로써 삶을 기억하고자 하는 취지에 읽어볼 수도 있다. 여기 남겨진 만시들은 모두 산 자가 쓴 것으로써 죽은 이의 행적 속에서 삶의 의미를 되짚어보고 있기 때문이다.
간혹 문집에서 산발적으로 접해볼 수 있었던 시들이 자세한 해설을 곁들여 한 권의 책으로 묶여져나온 적은 없다. 이 책을 엮어 쓴 지은이는 글자 하나에 인생을 담는 고농축된 시어들을 맛깔스럽게 풀어냈고, 시를 해설하는 것을 넘어 죽은 이와 살아남은 이의 생전 관계와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어 역사서로도 손색이 없다.

 

목차

1 오장치지어진안지간야
인간 세상에서 유희하다가
– 남극관이 수봉이란 종의 죽음에 남기다
칠월칠석날에 돌아가고 말았구나
– 양응정이 소합이란 여종의 죽음을 슬퍼하다

2 남안산행화 서주로오륙
삼십 년 세월이 순식간처럼 바빴구나
– 이덕수가 아들 이산배를 앞세우고 자도하다
남쪽 언덕엔 산 살구꽃이 피었고
– 이양연이 둘째 아들 인익을 떠나보내며

3 오열부하언 원장촌촌절
돌아가 누운 넌 응당 편하리라
– 남씨 부인이 평생을 앓다 간 손녀의 죽음에 참담해하다
이 정을 어찌하란 말이냐!
– 조태억이 둘째 아들 의빈을 잃고서

4 요락칠세성 매몰일산록
저 산 한 귀퉁이에 묻어야만 하다니
– 김상채가 아들을 잃고 쓴 오언고시
피눈물 흘리며 슬픈 울음소리를 삼키노라
– 허난설헌이 두 남매의 혼을 잃고 피눈물 흘리다

5 적료경시혼 교도여침륜
어찌 시인으로 일생을 마쳤더냐!
– 김창흡이 김숭겸의 죽음에 숙부의 지극한 정을 드러내다

6 보답평생미전미
나는 죽고 그대는 살아서
– 추사가 아내 잃은 심사를 적다
그 누가 있어 저 주렴 거두어줄까
– 이달이 아내 잃고 말로 다할 수 없는 처연함을 드러내다
백년해로 하자던 약속의 말만 남긴 채
– 백광훈이 아내 잃은 한 사람을 대신하여 시를 짓다

7 은촉동동수함저
숨은 슬픔은 잠시도 달아나지 않는다
– 채팽윤이 각별한 아내 사랑을 적다

8 불향창전종벽오
창 앞에다 오동나무 심지도 않았을 텐데
– 이서우가 꿈속에서 아내를 만난 후 적다
새벽 산은 꿈속인 양 달빛 지난 흔적만 남았네
– 신익성이 아내를 잃고 한밤중에 시름겨워하다

9 인상고혼구뇌이
일편단심 보내노니 재는 되지 않으리다
– 강세황이 부인 류씨를 전염병으로 떠나보내다

10 소복난소수 문전자도향
내 집에 살아도 손님만 같구려
– 이건창이 스물두 살에 요절한 아내 서씨를 위해 남기다
그날 혼인했던 그 사람은 뵈지를 않으니
– 신위가 첫째 부인 조씨를 잃고 애절한 심사를 적다

11 위설칭온낭신무하극
바느질도 다 못 한 채 사람만 먼저 갔구려
– 채제공이 아내 사랑을 추억하다
그 쑥 보면서 저를 생각해주시겠어요?
– 심노숭이 아내를 잃고 34구의 고시를 남기다

12 효앵제송독귀인
눈물 감추며 산을 나서 지난 길을 찾노라니
– 권필이 벗 구용을 장사 지낸 후

13 도화난락여홍우
내게 귀가 있다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네
– 이안눌이 권필의 죽음에 통절함을 드러내다

14 통곡광릉금이절
아직도 눈앞에 아련하건만
– 이행이 스물여섯의 나이로 떠난 벗 박은을 그리워하며

15 막설인간만시비
인간 세상 부질없는 시비일랑 논하지 마세나
– 박상이 죽은 조광조를 위로하고 나무라다
오십삼 년 동안을 빌려 썼구려
– 이용휴가 일찍 져버린 유서오의 죽음에 다섯 수의 시를 적다

16 유신문전초목심
이 세상에 제 한 몸 숨길 곳이 없었으니
– 이행이 스스로 목숨을 버린 정희량을 슬퍼하다
유신의 문 앞처럼 초목만 깊겠지
– 이호민이 천재 시인 정지승의 죽음을 애통해하다

17 일취일방 방취수능혼
뼈는 사막에 버려지고 피는 풀을 적셨으며
– 신흠이 김응하 장군의 죽음에 애도시를 적다

18 초초수양하 희망단고운
한바탕 웃음 속에 신선이 되셨구려!
– 이안눌이 38세 위의 선배 정작의 죽음을 탄식하다

19 중인쟁래간 경기홀무적
오색 빛깔의 비상한 새 하나가
– 이용휴가 제자 이언진의 죽음에 10수의 시를 적다

20 만년장상대 차행미위악
푸른 산은 변함없고 물은 동으로 흐르리라
– 이식이 자신의 죽음 20일 전에 적다
슬프게도 외로운 무덤뿐이로구나
– 서른의 나이로 죽은 기준이 자신의 죽음을 시로 남기다
한평생 시름 속을 지나다보니
– 정처 없이 떠돌던 이양연의 자만시

21 금일사형하처견
자네 누이 자네 보면 내 안부를 물을 테니
– 이명한이 처남 박미의 죽음에 지독한 아내 사랑 드러내다
아버지가 그리울 때면 형을 보곤 했지요
– 박지원이 형의 죽음을 보며 아버지를 생각하다

미리보기

당시 선조가 피난처에서 옹주에게 썼다는 편지는 비록 짤막하지만 전쟁 통에도 딸의 안부를 걱정하는 부친의 각별한 정이 엿보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리 간 후의 안부 몰라 하노라. 엇디들 잇는다? 셔울 각별한 긔별 업고, 도적은 물러가니 깃거하노라. 나도 무사히 인노라. 다시곰 됴히 잇거라.

아끼고 사랑했던 딸이었기에 훗날 선조는 옹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이틀 동안이나 조정의 일을 폐하고서 크게 애통해 마지않았다고 하였습니다.

_155~156쪽

지은이/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