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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장 높은 유리천장 깨기 미국 대선에 도전한 세 여성의 이야기
  • 지은이 | 엘런 피츠패트릭
  • 옮긴이 | 김경영
  • 발행일 | 2016년 08월 25일
  • 쪽   수 | 276p
  • 책   값 | 15,000 원
  • 판   형 | 140*210
  • ISBN  | 9788967353582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추천의 글
책소개

150년 동안 시도된 가장 높고 단단한 유리천장 깨기!
이번에는 과연 깨질 것인가
하수구란 하수구는 다 끌려다녔던 여성 대권 도전자들
그 도전의 역사는 길었고 야망과 실패, 의구심과 가능성으로 점철됐다

 

1871년 첫 번째 도전자, 빅토리아 우드헐 
미국 역사에서는 그간 200명을 웃도는 여성이 대통령 후보에 도전해왔는데, 그 시발점은 빅토리아 우드헐이다. 1871년 7월, 뜻밖의 후보가 갓 출범한 정당 대표로 대선 출마에 동의하는 수락서를 쓰는 일이 일어났다. 아직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지기도 전이라 그녀는 범상치 않은 여성임에 분명했다. 당시 미국은 재건시대로 남북 분리와 전쟁, 노예 해방의 결과를 받아들이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격론이 펼쳐졌다. “오늘날의 시대정신은 무한 해방입니다. 노예제의 저주가 이 땅을 뒤덮었을 때는 주춤했지만 끝없는 전투로 노예제가 폐지되고 정의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흑인과 평등해지고 싶어하는 미국 여성들의 열망을 비웃도록 놔둡시다.”
전국 정치 무대에 서본 여성들 중 빅토리아 우드헐만큼 파란만장한 길을 걸은 사람도 없다. 1838년 오하이오 농촌 마을에서 태어난 그녀는 사기꾼 아버지를 두었고, 어머니 록사나는 “한 번도 제정신인 적이 없는”, 조증과 울증을 널뛰는 여성이었다. 우드헐이 받은 교육은 길어야 3년이다. 열다섯에 결혼해 순탄치 못한 부부관계로 우드헐은 혼자 힘으로 사는 법을 배웠고 그러던 중 ‘심령 치료사’로서 재능을 인정받아 큰돈을 손에 쥐게 되었다. 즉 미 대선의 첫 여성 도전자는 ‘영적 능력’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특히 이때 만난 제임스 블러드 대령은 훗날 그녀의 두 번째 남편이 되면서 대권 가도를 열어주는 조력자가 된다. 심령술로 부와 명성을 얻은 우드헐(그리고 그 동생 클래플린)은 영매능력으로 주식 정보까지 내다봤고, 금과 채권을 사들이면서 엄청난 부를 모았다.
곧이어 우드헐은 여성 참정권 운동계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참정권 운동가들은 우드헐 자매에게 마음을 빼앗았다. 그들은 우드헐 자매의 ‘용기, 에너지, 진취성, 외모, 매너, 여성스러운 행동’을 높이 샀다. 특히 한 기자가 썼듯이 “수려한 용모와 기품 있는 모습, 햇빛에 반짝이는 보석 같은 광채, 정신을 아득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얼굴과 몸매”로 인해 ‘높은 자리에 오를 여성’이란 평가를 받았다. 더욱이 우드헐이 큰 부를 바탕으로 야망을 이루는 데는 두 명의 급진주의자 남성 뮤즈가 있었다. 한 명은 그녀의 두 번째 남편 블러드 대령으로 그는 철학에 조예가 깊고 공산주의자를 자처하는 인물이었다. 다른 한 사람은 유토피아주의 철학자이자 급진적 노동운동가인 스티븐 앤드루스였다. 두 사람이 힘을 합쳐 우드헐의 대선 출마를 도왔다. 우드헐의 대통령 출마는 두 단계로 진행됐다. 우선 1870년 봄 [뉴욕 헤럴드]에 편지를 보내 출마 의사를 밝혔다. 그녀가 특이한 후보인 것은 단지 투표권이 없는 여자라거나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 출마 최소 연령(35세)에 못 미쳐서만은 아니었다. 그녀가 ‘자기 지명 후보’인 까닭도 있었다.
우드헐이 1870년 출마 선언을 한 주목적은 “여성이 남성과 정치적 평등을 누릴 권리에 관심을 모으는 것”이었다. 즉 상징적인 출마 선언이었다. 19세기에 여러 사람이 택했던 길이다. 하지만 그녀가 여느 후보들과 차별적이었던 점은, 다른 대통령 후보들이 미덕, 겸손, 청렴을 앞세웠던 데 비해, 그녀는 사회운동의 화신으로서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다는 점이다(이는 당시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녀는 특히 다수당인 공화당과 민주당 후보들이 싸움을 붙이기 위해 ‘흑인 평등’ 문제를 들고나오자 “한물간 쟁점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남북전쟁과 재건으로 흑인 평등이 어느 정도 실현됐기 때문이다. 몇몇 언론은 우드헐의 이런 도전을 높이 사면서 ‘진취적’이라고 평가했던 반면, 다른 많은 언론은 그녀를 “뇌쇄적인 우드헐” “어여쁜 환전상” “무당벌레”라 불렀다.
이후 1871년 1월 워싱턴 DC에서 전국참정권대회가 열리던 날 우드헐은 여성 최초로 하원 법사위원회에서 연설을 하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수많은 언론이 우드헐을 사냥감으로 여겨 물어뜯으려 했지만, 우드헐은 “우드헐과 언론의 개들”이라는 헤드라인 기사를 내는 등 강고하게 대응해나갔다. 하지만 1871년 5월 우드헐의 공적인 삶과 사적인 삶 모두 위태로운 운명에 놓이게 된다. 우드헐의 어머니가 “우드헐은 현 남편과 전남편 둘 다와 동거 중”이라는 폭탄 발언을 한 것이다. 우드헐이 몸져누운 전남편을 돌보기 위해 동거 중이었던 것은 맞지만, “난잡한 행태”로 악의적으로 보도돼 우드헐의 품성이 도마에 오르면서 그녀의 모든 업적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우드헐이 도덕성을 회복하기에는 이미 늦었었다. 어머니가 사위를 고소하고 가정사를 폭로한 지 일주일 만에 우드헐의 삶은 끝났다는 기사가 전국 신문을 도배했다. “딱 걸렸다.” 당시 [애틀랜타 컨스티튜션]의 헤드라인이다.
우드헐의 대선 출마는 대체로 경솔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그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이 출사표는 그녀의 삶에서나 미국 역사에서나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된다.

 

“공화당의 강적”, 마거릿 체이스 스미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죽음을 맞기 일주일 전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기자들로부터 마거릿 체이스 스미스 후보가 뉴햄프셔 선거에 영향을 미칠 걸로 점치냐는 질문을 받았다. 케네디의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스미스 의원은 강적입니다. 제가 공화당 후보라면 그녀를 경쟁자로 만나지 않길 바랄 겁니다.” 당시만 해도 여성이 대선에 입후보한다면 기자들조차 웃음을 터뜨렸던 시대이건만 스미스 상원의원의 입후보는 웃을 일이 아니었다. 사실 스미스야말로 예측하기도, 손쓰기도 힘든 ‘진정한 무소속’ 의원이었다. 그녀가 이뤄낸 수많은 ‘최초’는 업적과 고립을 동시에 보여준다. 여성 최초로 혼자 힘으로 상원의원이 된 스미스는 또한 여성 최초로 상하원 의원 모두를 지냈다. 20세기 여성 중 가장 오랜 기간 상원의원을 지낸 경력을 보유하며, 1963년에 이르기까지 총 4명의 대통령을 거쳤다.
용기와 자립심을 타고난 권리로 여긴 스미스는 남편을 통해 상원의원직에 올랐다. 상원의원이었던 남편이 재임 중 사망하자 ‘미망인 승계 관례’에 따라 자리를 물려받았던 것이다. 그녀의 출생 배경도 우드헐처럼 그리 좋지 못했다. 메인 주 스코히건이라는 공업도시에서 술에 찌들어 지내는 이발사의 딸로 태어났다. 맏딸로서 어머니를 도왔던 그녀에게서는 일찍부터 책임감, 추진력, 야망의 싹이 엿보였다. 가장 먼저 가진 직업은 고등학생 때의 전화 교환수직이었다. 그 일을 하면서 15년 동안 관계를 이어갈 마흔 살경의 이혼남 클라이드를 만나게 됐다. 여성 편력의 기미가 조금 엿보이는 클라이드와 관계를 맺으면서 마거릿은 원룸 스쿨 교사생활을 잠시 했다. 그리고 2년 뒤 스코히건의 주간신문사 [인디펜던트-리포터]에 온갖 잡무를 도맡는 여사원으로 취직해 보급부장 자리까지 승승장구했다. 1920년대에 그녀는 여성 클럽에서 활발히 활동하게 되며, 넘치는 열정으로 클럽 내에서 단기간에 주목을 받았다.
이전에 이미 정치적 경력이 있었던 스미스의 남편 클라이드가 먼저 선거에 도전했고, 스미스 역시 지방과 카운티의 공화당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시작은 스코히건 공화당 의원회 비서직이었다. 이후 윌러드 커밍스가 운영하는 방직 공장 일을 하면서 주 차원의 정당정치에 몸을 담았다. 이때 커밍스는 스미스에게 정계 입문을 권했다. 스미스는 남편 클라이드가 의원생활을 할 때 남편과 유권자들 사이에서 다리 노릇을 하기도 했다. 워싱턴과 메인 주를 정신없이 오가며 남편의 자리를 메웠다. 1938년 남편의 재선운동 기간에는 남편의 대변자 역할에 그치지 않고 그와 반대되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가령 남편 클라이드는 고립주의자로 국방비 지출 확대에 반대했다면, 스미스는 미국 군대의 전쟁 대비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1940년 봄, 남편은 아내 스미스를 자신의 승계인으로 지목하며 사망했다. 이로써 ‘고양이 구멍’으로 공직에 앉게 된 스미스는 스스로의 추진력과 야망에 운명적 우연이 덧붙여지면서 연방 정치에 뛰어들었다. 보궐선거로 그녀에게 주어진 임기는 딱 6개월. 곧바로 공화당 의원 네 명과 맞붙는 1940년 6월 예비선거에 뛰어들어야 했다. 이때 함께 출마한 공화당 의원 존 마셜은 메인 주가 여자에게 대표 자리를 맡기는 것은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고 주장했다. “손목 한번 까딱 흔들며 웃는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즉 전형적으로 ‘능력’보다는 ‘성별’ 다툼으로 선거를 몰고 갔다.
그런 우려는 20세기 전쟁 상황에서 특히 여성 대통령 후보들을 힘들게 했다. 전통적으로 남녀의 고유한 능력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남성은 힘과 공격성, 용기, 냉정함을 갖춘 타고난 군사 전략가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통념 때문에 여성이 군 통수권자 역할을 잘해낼지에 대한 의심은 더욱 커졌다. 여성 운동가는 곧 평화 운동가라는 역사적 인식 역시 이런 염려에 무게를 실어줬다. 미국 공직자 중 가장 유명한 여성 몇 명이 평화주의자였다.
하지만 스미스는 좀 달랐다. 그녀는 ‘전쟁 준비’를 자신의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국방에 지출하는 돈은 사치가 아닙니다. 전쟁에 대한 보험입니다.” 그녀는 1941년 2월 무기 대여 법안을 지지한 공화당 의원 24명 중 한 명이었고, 11월에는 공화당 하원의원 중 유일하게 중립법(해외 전쟁에 대한 미국의 참전과 무기 판매 등을 금지하는 법률) 폐지에 찬성했다. 한결같이 국방에 대한 강화를 외치는 그녀는 이미 남편을 도와 유권자들과 친숙한 덕도 있고, (그녀 자신은 외면했음에도) 여성 세력의 지지를 입어 공화당 경쟁자 4명을 완파시킬 수 있었다. 스미스는 정치인으로서 페미니스트이냐고 질문을 받으면 발끈했다. 그럼에도 양성평등 수정조항에는 찬성표를 던졌다.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부인한 이유는 그런 꼬리표가 붙으면 여자라는 이유로 남자보다 여자 편을 든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저는 특혜를 요구한 적도, 받은 적도 없습니다.” 그녀가 한 말이다.
1948년 상원의원 재선에 도전할 때 메인 주 유권자의 64퍼센트가 여성이라는 점이 스미스에게는 기회가 됐다. 그녀는 자신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여성의 대변인’임을 강조했다. 온갖 구설수와 인신공격 속에서도 스미스는 세 남자를 물리치고 승리했다. 1949년 1월 스미스는 상원의원에 취임했고, 남성의원 27명과 함께 양성평등 수정조항을 의회에 발의했다. 스미스는 대기업과 노동자 문제에 있어서는 공정과 평등에 목말라하는 노동자들 문제에 주의를 기울였지만 외교 정책에서는 여전히 ‘독수리의 발톱’을 택했다. 베트남 전쟁 개입도 한결같이 지지했다. 1950년대 중반 그녀는 전국적인 유명 인사가 됐다. 비이성적인 반공주의자 매카시에게 맞서고, 유일한 여성 상원의원일 뿐 아니라, 냉전 정치가다운 면모 등으로 인해 1954년 갤럽 여론조사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여성 4위에 뽑혔다. 하지만 1964년 그녀가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 나가기로 결심하자 상황은 쉽지 않았다.
많은 언론은 스미스를 부통령 후보로 점쳤고, 심지어 부통령 후보가 되리라는 전망조차 조롱거리가 되었다. 화가 난 스미스는 “제 목표는 오직 대통령 선거입니다”라며 입장을 분명히 했다. 특히 그녀는 자신의 출마 의사를 밝히는 무대로 전국여성언론인클럽을 택했다. 여론조사가 긍정적이었던 것과 달리 언론은 부정적인 면을 보였다. ‘사랑스럽고 날씬한 사람이지만, 백악관 주인에게 필요한 강한 체력은 없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런 와중에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이 터졌고, 이것은 스미스에게 매우 불리하게 돌아갔다. 그리고 대중은 성별 문제에 있어 보수의 자세로 회귀했다.
이런 상황에서 스미스는 자신의 원칙을 고수하며 “자금 없이 선거를 치르”겠다고 공표했다. 하지만 광고와 전문가, 고액 기부자의 역할이 절대적인 이 시대에 이런 방법이 과연 통할까 스미스가 세운 원칙은 좋든 나쁘든 시대의 흐름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이전에는 그런 청렴함이 스미스를 키워주었다면, 이제는 그 원칙이 부메랑이 되어 선거에서 스미스가 이길 가능성을 차단한 것이다. 스미스는 뉴햄프셔 예비선거에서 첫 패배를 당하면서 결국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진 못했지만,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스미스는 더 이상 조연이 아니며, 이 나라가 시작된 이래 그 어떤 여성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기사를 내며 그녀가 내디딘 큰 걸음을 평가했다.

 

‘흑인’과 ‘여성’이라는 핸디캡, 셜리 치점 
“미국 뉴욕 주 하원의원 셜리 치점은 여성이고, 흑인이며, 다음 화요일에 있을 민주당 플로리다 주 대통령 예비선거에서 승산이 없다.” 1972년 3월, 팜비치 선거 유세를 취재한 이 기사에는 당시의 통념이 엿보인다. 셜리 치점만은 생각이 달랐다. 그녀는 선거운동을 하던 내내 자신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에서는 11명이 대통령 후보 경쟁에 뛰어들었고, 언론은 치점의 도전을 성별과 인종을 내세운 상징적인 도전으로 치부했다. “당신은 ‘진지한’ 후보입니까?” 선거운동을 하는 열 달 내내 그녀에게 던져진 질문이다. 치점은 유세 중 맞닥뜨리게 될 난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으로서 최초로 하원의원에 당선되기까지 그 과정은 불가능을 극복하는 일로 점철된 역정이었다.
대학 시절 제17선거구민주당클럽에 첫발을 들여 여성 회원 대상 연례 복권 추첨식에서 시가 상자를 장식하는 일을 시작으로 그녀는 지역 정치 클럽, 사회운동 단체 등에서 활동하며 뉴욕 주의회에 입성했고, 1968년엔 하원의원에 당선, 워싱턴으로의 정치 여정을 이어나갔다. 일부 지지자가 47세의 치점이 백악관에 도전했다가 모욕을 당하지 않겠나 하고 우려하자 그녀는 지체 없이 대답했다. “멸시와 비방과 모욕과 폭언은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어요. 그게 어떤 건지 잘 아니까요.” 1972년 대선에 나선 치점의 무기는 용기와 번뜩이는 유머감각이었다. 치점은 당연히 여성 그리고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유권자로 노렸다.
치점은 1924년 브루클린에서 태어났고, 그녀의 부모는 1920년대 초 바베이도스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들이었다. 대학에 들어가 그녀는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을 날카롭게 다듬어갔다. 진보적이라 자평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편견은 강고했다. 그러나 향후 치점의 정치적 도전에서 ‘흑인’이라는 점보다 더 큰 핸디캡이 된 것은 ‘여성’이란 점이었다. 치점은 사회에 나와 클럽활동을 하면서 ‘카드 파티 준비 위원회’에 배정되었다. 그녀는 곧 이 클럽이 여성을 착취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제17선거구 위원회에서 일하면서도 자신이 구색 맞추기로 힘을 얻게 되자 여기에 착각하지 않고 “정계 위로 올라가겠다”고 다짐했다. “착취 냄새가 나는 흑인 지배나 백인 지배는 일체” 거부했다. 치점은 오랫동안 지역사회 활동을 하면서 여성 단체들을 통해 큰 힘을 얻어갔다. 특히 아프리카계 미국인 시민단체 키위민오브아메리카로 인해 대규모 인력을 동원할 수 있었다. 여성이 치점의 선거운동에서 ‘중추’가 되었다면 푸에르토리코계 이민자들 역시 다른 한쪽을 받쳐주는 지지 세력이 되어주었다.
치점은 뉴욕 주의 주도인 올버니에 도착하자마자 정치적 독자 노선을 택했다. 마거릿 스미스와 같은 방식이었는데, 여성이라는 소수자의 위치를 오히려 강점으로 삼았다. 치점은 주의원으로 일하면서 50개의 법안을 발의해 그중 15개가 발효되는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다. 뉴욕 주 의원회에서 발휘한 성과에 더불어 훌륭한 조력자까지 나타났다. 맥 홀더라는 인물이 퀸메이커로 나선 것이다. 그는 치점이 방향만 잘 잡으면 브루클린 최초의 흑인 하원의원이 될 가능성이 누구보다 높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녀를 돕기 위해 나섰다. 그 와중에 언론은 끊임없이 인종과 성별 문제를 들고나왔다. 그럼에도 치점은 파머라는 경쟁자를 두 배의 표 차로 때려눕히며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최초로 하원에 입성했다. 그로부터 1년도 안 돼 치점은 대통령 출마를 구상하기 시작한다. 치점은 열 번째 여성 하원의원이었지만, 91대 의회까지도 역대 여성 상원의원은 마거릿 체이스 스미스가 유일했다.
1971년 치점은 여성해방 운동가들과도 손잡고 전국여성정치회의 창립에 가세했다. 치점은 하원의원으로서 여성과 아프리카계 미국인, 페미니즘과 흑인 투쟁이라는 갈림길에서 어느 것도 배제하지 않고 가교 역할을 하려 노력했다. 특히 하원에서 ‘목소리’를 내는 의원이 되겠다고 다짐한 그녀는 1969년 3월 의회 첫 연설에서 닉슨 대통령이 대탄도 미사일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계획을 세운 것에 대해 맹비난했다. 또한 치점은 여성해방 운동의 핵심 요구 사안을 단호하게 지지했고, 이는 시금석으로 남았다.
원래 그녀는 자신이 대통령 후보 재목이 되는가에 대해서는 스스로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한 강연 질의회에서 백인 남학생이 던진 질문을 듣고 대선 출마 결심을 굳혔다. 치점이 “자신은 여성이고 흑인이다”라는 장애에 대해 이야기하자 한 남학생은 “그런 장벽은 언제 깨질까요?”라고 되물었던 것이다. 워싱턴 DC에서 열린 전국여성정치회의의 첫 집회는 치점의 대통령 출마 구상을 가속화시켰다. 여론조사도 예전과 달리 여성 후보에 대해 호의적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큰 난관이 있었다. “선거운동을 감당할 자금이 없어” 출마를 한다면 빚더미에 오를 터였다. 더욱이 그녀가 인종과 성별에 대해 맹목적인 의리를 보인다는 우려도 있고, 흑인이냐 여성이냐를 택하라는 우격다짐의 목소리도 거세졌다.
치점은 어마어마한 빚을 떠안으면서, 쥐꼬리만큼밖에 안 되는 돈을 가지고 선거운동에 뛰어들었다. 모금액도 한참 못 미쳐 신용카드에 의지해 유세를 했다. 그녀는 사실 ‘성별’과 ‘인종’이라는 “투 스트라이크를 먹은 상태”에서 선거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더욱이 페미니스트들은 이전과 달리 치점에 대한 지지 의사를 모호하게 표명했고, 치점의 열성적인 지지자들 또한 흑인, 여성, 멕시코계, 푸에르토리코계로 나뉘어 분열을 일삼았다. 그러나 험난한 과정을 거쳐 치점은 전당대회에서 대의원 표 151표 이상을 획득해냈다. 이 기록은 그 어떤 여성 후보보다 많은 것이었으며, 2008년 힐러리 클린턴 이전까지 깨지지 않았다.
2008년, [네이션]의 존 니컬스는 치점과 클린턴 사이의 인연의 끈을 이었다. 즉 그녀는 “힐러리와 오바마를 위한 길을 닦았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힐러리 클린턴 
이 책의 에필로그는 현재진행형인 여성 대통령 후보 힐러리 클린턴으로 마무리 짓는다. 위의 세 인물을 비롯해 수많은 여성이 다져놓은 기반 위에 힐러리가 가장 강력한 파워를 가지고 등장하게 됐고, 그것은 유리천장이 깨질 좀더 높은 가능성을 점치게 한다. 힐러리는 카멜레온이란 별명을 얻을 만큼 정치적 힘이 이동하는 쪽으로 능숙하게 대처해왔음이 분명하고 그로 인해 비난과 비호감을 사는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힐러리가 고난의 시기를 딛고 상원의원이 됐을 때 유리천장에는 이미 1만8000개의 금이 갔다. 그리고 미국 역사상 대통령 자리에 이토록 가까이 간 여성은 없었다. 그 오랜 여정이 이제 한 판의 정치 대결로 판가름 날 것이다.

목차

프롤로그_2008년 뉴햄프셔

제1장 빅토리아 우드헐_“모두가 주목하는 자리”
제2장 마거릿 체이스 스미스_“공화당의 매력적인 얼굴”
제3장 셜리 치점_“뒤집어엎어”

에필로그_2016

미리보기

200명을 웃을 웃도는 여성이 대통령직에 나서고 후보로 지명되며 표를 받았다. 그 시작은 1870년대에 여성 최초로 대통령에 출마한 우드헐이었다. 남자 대통령 후보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압도적 다수가 거의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했다. 20세기 후반까지 여성 후보들은 무소속이나 제3당의 공천 후보로 가장 많이 나왔따. 그도 아니면 돈키호테처럼 전당대회 때 반짝 스타로 잠깐 이름을 알리는 식이었다. 그런 후보들은 예나 지금이나 기억에서 쉽게 잊히다.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후보들 중 남녀를 막론하고 역사의 한 페이지에 이름을 남기는 사람은 많지 않으며,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 책은 이례적으로 그 일을 해낸 세 여성의 이야기다.

_「프롤로그」

지은이/옮긴이

지은이

엘런 피츠패트릭Ellen Pitzpatrick

뉴햄프셔 대학 역사학과 교수. 현대 미국 정치사와 지성사 연구자로 『뉴욕 타임스』 『월스트리트 저널』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USA 투데이』 『보스턴 글로브』 『워싱턴 포스트』, CBS의 「페이스 더 네이션Face the Nation」, NPR 등과 인터뷰를 진행했고, PBS의 「뉴스아워」에 출연하기도 했다. 학계와 저널리즘 분야에서 활동하며 미국 정치 이슈를 다룬 여덟 권의 책을 저술하고 편집했다. 베스트셀러 『재키에게 보낸 편지Letters to Jackie』는 빌 쿠튀리에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재키에게 보낸 편지: 케네디 대통령을 추모하며」의 원작이며, 영화는 큰 호평을 받았다. 피츠패트릭은 영화의 협력 프로듀서로 참여하기도 했다. 여성 사회학자와 그들이 추구한 점진적 개혁을 다룬 『끝나지 않는 운동Endless Crusade』과 미국에서의 여성인권운동을 다룬 공저 『투쟁의 세기Century of Struggle』 등 미국 정치사에서 페미니즘과의 접점에 천착해왔으며, 그 밖에 미국 현대 정치사를 다룬 『역사의 기억History’s Memory』과 미국 정치 저널리즘에 획을 그은 세 가지 사건을 심층 분석한 『사생활 캐기Muckraking』 등을 썼다. 이 같은 성과로 공공서비스 부문 우수상을 수상하며 그 공로를 인정받았다.

 

옮긴이

김경영

광고회사 카피라이터로 일했으며, 성균관대 번역대학원에서 번역학 석사과정을 수료한 뒤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그들은 살아 돌아왔다』 『친밀한 범죄자』 『기적의 치유력』 『커피이스트 매니페스토』 등이 있다. 매달 여행 잡지 론리플래닛 매거진의 번역에도 참여하고 있다.

추천의 글

“피츠패트릭은 힐러리 클린턴에 앞서 대권에 도전한 세 여성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훌륭한 전기작가인 저자는 명석하고 강인한 세 여성의 이야기를 풍부한 일화와 함께 소개한다. 여성은 얌전해야 한다고 요구받던 시대에 그들은 대범한 삶을 살았고, 그 대가를 치렀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세 여성에게 다른 길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_코니 슐츠, 『워싱턴 포스트』

 

“대단한 책이다!”

_질 레포어, 『뉴요커』

 

“피츠패트릭이 전하는 역사는 한시가 급한 중요한 문제에 기여한다. 마냥 유쾌한 책은 아니지만 적어도 성별 문제를 역사적 관점에서 보게 해준다. 시의적절하게 나온 이 책은 우리가 만든 어떤 역사든 그냥 흘러가게 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_레베카 트레이스터, 『뉴욕타임스 북리뷰』

 

“피츠패트릭의 흥미진진한 이 책은 분별 있는 여성이 과연 원하기만 하면 백악관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진짜 믿었을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결국 좌초되긴 했지만 과거 대선 도전에 실패한 흥미로운 세 여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_세라 처치웰, 『뉴스테이츠먼』

 

“엘런 피츠패트릭은 두 번째로 높은 유리천장을 깬다. 바로 여성 정치인의 역사를 스릴러처럼 풀어놓는다. 또 최근에 선거를 조롱하는 글을 쓰긴 했지만 대통령 선거를 개선하려고 노력한다. 탁월한 글쓰기 덕분에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나도 모르게 계속 책장을 넘겼다. 저자는 자신이 높이 사는 대담하고 열정적이며 지적인 정치인들만큼이나 흥미롭다. 토요일 오후에 한가롭게 책 읽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것이다. 책장을 덮는 순간 여성 대통령을 간절히 원하게 될지도 모른다.”

_엘리자베스 콥스, 『타임스 고등교육원』

 

“여성이 미국 대통령에 출마하면 진지한 후보로 인정받는 데 왜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일까? 『가장 높은 유리천장 깨기』에서는 그 역사를 잘 보여준다. 피츠패트릭이 들려주는 대통령에 도전한 여성들의 이야기는 흥미로우며, 미국 정치사에서 시급했던 중요한 간극을 메워준다. 또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읽노라면 대통령 정치를 이미 안다고 생각했던 이들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될 것이다.”

_짐 레러, 『PBS 뉴스아워』 전 편집장

 

“여성이 미국 대통령에 도전한 여정은 길고 지난하다. 탁월한 학자이자 저자인 피츠패트릭은 진작 이루었어야 할 이 흥미로운 역사를 기록하는 데 있어 완벽한 저자다. 큰 업적이자 영감이 되는 책이다.”

_테다 스카치폴, 『하버드대』 교수

 

“엘런 피츠패트릭의 지혜롭고 흥미로운 이 책은 퓰리처상을 수상한 케네디 전 대통령의 『용기 있는 사람들』의 2016년판이 될 것 같다. 피츠패트릭은 올해 민주당 후보 힐러리 클린턴을 대담한 여성 대통령 후보라는 역사적 인물 중 하나로 기록하며, 힐러리에 앞서 승리에 다가간 세 여성인 빅토리아 우드헐, 마거릿 체이스 스미스, 셜리 치점을 집중 조명한다. 무엇이 이 세 여성으로 하여금 ‘시대적 상황에서 걸어 나와 역사 속으로 발을 내딛고’ 치점의 목표처럼 ‘뒤집어엎게’ 만든 것일까? 피츠패트릭의 강렬한 이야기는 미국 대통령 정치에 관심 있는 모든 사람이 고마워할 소중한 교훈을 어떻게, 언제, 그리고 왜 가르쳐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_메건 마셜, 『마거릿 풀러: 새로운 미국식 삶』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