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 스토아주의 500년의 역사와 주요 개념에 대하여
  • 지은이 | 장바티스트 구리나
  • 옮긴이 | 김유석
  • 발행일 | 2016년 08월 22일
  • 쪽   수 | 236p
  • 책   값 | 15,000 원
  • 판   형 | 137*203
  • ISBN  | 9788967353599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책소개

제논·크뤼십포스·에픽테토스로 이어져온 철학,
‘금욕주의’를 넘어서는 스토아주의
500년의 역사와 그 개념을 탐구하다

스토아학파의 역사와 개념을 다룬 이론서가 한국에서 최초로 출간되었다. 한국에서 스토아학파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에 비해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은 철학 사조다. 많은 이가 ‘스토아학파’라고 하면 쉽게 ‘금욕주의’를 떠올리거나, ‘무감동’을 뜻하는 ‘아파테이아apatheia’ 같은 단어를 생각해낼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나 세네카 같은 로마 시대의 철학자들이 남긴 금언金言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이렇듯 스토아주의는 금욕주의를 뜻하는 보통명사처럼 인식되어버린 경향이 있다. 그러나 단순히 금욕주의로 환원하기에 스토아철학은 지극히 정교한 체계를 자랑하는 철학이다. 즉 언어와 사유의 본성에서 출발해(논리학) 자연과 우주의 기원과 구조를 거쳐(자연학) 삶의 목적과 가치에 이르기까지(윤리학), 스토아철학의 각 분야는 서로 치밀하게 이어져 하나의 거대한 체계를 형성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스토아의 현자들이 남긴 금언이 쉽게 나온 말이 아니며, 매우 치밀한 철학적 사유의 기반 위에서 정교한 논변의 결론으로서 제시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저자 장바티스트 구리나Jean-Baptiste Gourinat는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에서 고대 철학 분과 전임연구원으로 일하는 스토아학파 전문가다. 스토아학파의 변증술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문가답게 저자는 스토아학파에 속했던 많은 철학자의 이름과 복잡한 해석 및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스토아주의의 개념들을 길지 않은 이 개론서 안에 놀랍도록 간명하고 또 짜임새 있게 구성해놓았다. 스토아학파가 처음 생겨난 헬레니즘 시대(서기전 323~서기전 31)에서 시작해(1장), 로마 시대(서기전 1세기~서기 3세기)를 거쳐(2장), 오늘날 스토아학파의 후손들과 현재성(3장)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스토아주의의 역사와 개념을 차례로 훑는다. 특히 이번 한국어판에서는 옮긴이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본문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쉽지 않은 명제의 추론 분석’과 스토아철학의 주요 개념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했으며(부록 1, 2), 책에 등장하는 철학자들의 이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인명 색인을 수록해두었다.

 

‘주랑 아래 모이다’, 스토아학파의 탄생

스토아주의는 스토아학파의 주장, 그중에서도 특히 그들의 도덕관을 일컫는다. 스토아주의는 철학사가들이 흔히 ‘헬레니즘’이라고 부르던 시기에 유행했던 철학 사조다. 처음 스토아학파를 설립한 사람은 키티온 출신의 제논으로, 시기는 서기전 3세기 초, 장소는 아테네다. 제논은 아테네에 정착한 뒤 아고라 건물의 주랑柱廊 아래에서 강의를 펼쳤다. 많은 이가 제논의 강의를 들으러 주랑으로 모여들었고, 이 기둥들이 다채롭게 채색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곳을 ‘스토아 포이킬레’(채색주랑)라 불렀다. 처음에는 제논주의자들이라고 불리다가 이후 주랑을 중심으로 학파가 형성되었다고 하여 ‘스토아학파’라 칭하게 되었다. 그리스어로 ‘스토아’가 바로 주랑이라는 뜻이다.

제논은 견유학파에 속하는 크라테스의 제자였다. 견유학파와 더불어 아카데메이아와 메가라학파로부터 삼중의 영향을 받았다. 이는 이런저런 방식으로 소크라테스의 유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더하여 헤라클레이토스, 피타고라스,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철학을 자연학, 윤리학, 논리학 세 부분으로 나누었다. 이 분류는 아카데메이아에서 빌려온 듯하다. 키케로는 『아카데미카 후서』에서 제논이 이룩한 주요 철학적 혁신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논은 윤리학에서 유일한 선은 덕, 유일한 악은 악덕이며 무관한 것들 중에 건강처럼 선호할 만한 것이 있다고 했다. 자연학에서는 불을 원초적인 원소로 보았고, 비물체적인 실재들에 대해서는 일체의 효능을 부정했다. 논리학에서는 표상表象을 외부 대상에서 유래하는 인상으로 정의했고, 특히 파악 가능한 표상을 기준으로 삼았다.

제논에게는 클레안테스, 크뤼십포스, 제논(타르소스 출신), 디오게네스, 안티파트로스, 파나이티오스 등의 제자가 있었다. 클레안테스는 제논의 자연학을 발전시켰으며, 제논 이후 스토아주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사람은 클레안테스의 계승자였던 크뤼십포스다. 그는 논리학자로서의 보기 드문 재능에 힘입어 스토아철학의 체계를 구축하고 발전시켰다. 한마디로 고전적인 형식의 스토아주의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크뤼십포스가 없었다면 주랑(스토아)도 없었을 것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크뤼십포스를 비롯한 스토아주의자들은 철학적 담론, “수련”으로서의 철학, 수련의 결과로서의 지혜(덕, 과학)를 구별했다. 이런 관점에서 덕 또한 자연적인 덕, 윤리적인 덕, 논리적인 덕으로 구분했다.

로마 시대의 스토아주의

스토아학파의 가르침이 지중해 세계로 전파·확산된 건 서기전 2세기 중엽이었다. 공화정 말기와 제국 시대 처음 두 세기 사이에 스토아주의는 그리스 로마 세계로 확산되었다. 몇몇 선생은 가정교사로 활약하기도 하는 등 활동을 펼쳤는데, 그중에는 카이레몬이나 세네카 같은 네로의 스승들과 노예였던 에픽테토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등 유명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스토아주의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사회 깊숙이 뿌리내리게 된다. 로마에서 스토아주의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치세에 절정에 달했다. 서기 176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네 개 주요 철학 학파를 위하여 아테네에 교수직을 마련해주었다. 플라톤주의, 스토아주의, 에피쿠로스주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로, 학파마다 두 자리씩 교수직을 배당했던 듯하다. 이 시기 스토아주의의 성공은 부정할 수 없어 보인다. 그 영향력은 한때 노예였던 에픽테토스부터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모든 계급에 미쳤다. 스토아주의는 로마 지배자들의 철학인 동시에 제국의 독재적 경향에 반대했던 정치가들의 철학이기도 했다. 그러나 포르퓌리오스가 『플로티누스의 생애』에서 스토아학파의 가르침은 260년경에 이미 사라졌다고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267년에 있었던 헤룰레스족에 의한 아테네의 함락이 스토아학파가 사라지게 된 원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스토아주의가 남긴 유산

500년 동안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이었던 스토아주의는 세대를 이어가며 지중해 전역으로 퍼져나가 로마제국까지 이어지다가 서기 3세기 중엽에 자취를 감춘다. 그 조직과 이론 체계는 사라졌지만, 그들이 보여주었던 금욕적인 삶의 방식과 지행합일의 태도는 1000년이 넘도록 지속되고 있으며, 특히 유럽인들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스토아주의는 르네상스와 근대에 이르러 다시 ‘신新스토아주의’라 불리는 형태로 등장하게 된다. 이는 고대 스토아주의를 재발견했던 학자들의 업적이었다. 스토아철학이 사라진 이후에도 스토아적 유산의 많은 부분은 과거 스토아주의가 지녔던 측면을 유지한 채로 문화 일반 속에 보존되었다. 스토아주의의 재발견에 가장 크게 기여한 사람은 르네상스 시대의 유스투스 립시우스다. 스토아주의 쇄신 운동은 1532년 칼뱅이 에라스뮈스가 1529년에 편집한 『관용론』에 주석을 달면서 시작되었다고 보지만, 이보다도 스토아주의의 재발견을 기념할 만한 것은 유스투스 립시우스가 1584년에 출판한 『의연함에 관하여』와 기욤 뒤 베르의 『스토아주의자들의 도덕철학』을 들 수 있는데, 이 작품들은 스토아적인 도덕을 기독교에 적용하고자 했다. 립시우스는 논리학을 제외한 스토아 체계 전체를 설명하는 임무에 전념하여 『스토아철학 교본』과 『스토아 자연학』을 써냈다.

그렇다면 스토아주의가 오늘날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 철학 학파로서는 이미 과거의 철학이 되었으나, 스토아주의는 매우 완결적이고 대단히 정합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도덕에 있어서 스토아주의자들은 인간 삶의 목적이 본성에 부합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고유한 개별성을 지지하는 것이 헛되다고 생각하거나, 이를 보편적 관점에 종속시키는 것을 받아들인다. 우리 자신은 이 세계와 비교했을 때 거의 아무런 중요성이 없으며, 일상의 좋은 것들은 우리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기에 부서지기 쉽고 무관하다는 확신을 가짐으로써 삶의 시험을 견뎌낸다. 스토아주의자들에게 유일한 좋음은 내 방식대로 생각하고 행하는 것뿐이다. 내가 그 주인이 아닐 경우에는 모든 게 나와 무관해진다. 하지만 스토아주의자들 역시 무관한 것들 가운데 ‘건강’처럼 선호할 만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스토아주의는 희망 없는 인내다”라는 라이프니츠의 말에 동의한다면, 스토아주의는 여전히 살아 있는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 서론

제1장 헬레니즘 시대의 스토아주의
Ⅰ. 학파의 역사와 진화
제논과 학파의 창립 │ 스토아학파: 클레안테스에서 파나이티오스까지
Ⅱ. 스토아 체계의 고전적 형식: 크뤼십포스
수련과 체계로서의 철학 │ 논리학 │ 윤리학 │ 자연학

제2장 로마 시대의 스토아주의(서기전 1세기~서기 3세기)
Ⅰ. 서기전 1세기와 스토아주의의 탈중심화
Ⅱ. 계승과 혁신: 파나이티오스에서 세네카까지
Ⅲ. 스토아주의의 쇄신: 에픽테토스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제3장 스토아주의의 후손들, 그리고 현재성
Ⅰ. 스토아주의의 유산
Ⅱ. 유스투스 립시우스와 학자들의 스토아주의
Ⅲ. 르네상스부터 18세기까지의 “신스토아주의”
Ⅳ. 스토아주의가 남긴 것

스토아학파 연표
부록 1│단순하지 않은 명제의 추론 분석
부록 2│스토아철학의 주요 개념들
옮긴이의 말 │ 참고문헌 │ 인명 찾아보기

미리보기

한국에서 스토아학파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에 비해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은철확 사조다. 많은 이가 “스토아학파”하면 금욕주의를 떠올리거나, 무감동을 뜻하는 “아파테이아” 같은 단어를 생각해낼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나 세네카 같은 로마 시대의 철학자들이 남긴 금언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토아 사상은 단순히 금욕주의로 환원하기에는 지극히 정교한 체계를 자랑하는 철학이다. 즉 언어와 사유의 본성에서 출발하여(논리학·인식론) 자연과 우주의 기원과 구조를 거쳐(자연학) 삶의 목적과 가치에 이르기까지(윤리학), 스토아철학의 각 분야는 서로 치밀하게 이어져 하나의 거대한 체계를 형성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스토아의 현자들이 남긴 금언이 사실은 매우 치밀한 철학적 사유의 기반 위에서 정교한 논변의 결론으로 제시된 것임을 보게 될 것이다. _「옮긴이의 말」

지은이/옮긴이

지은이

장바티스트 구리나 Jean-Baptiste Gourinat

1964년 프랑스 니스에서 태어났다. 파리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파리 4대학(파리-소르본)에서 스토아학파의 변증술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7년 이래로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의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스토아철학의 권위자다. 또한 스토아학파뿐만 아니라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 전반과 고대 논리학 분야에서도 많은 저서와 논문을 발표했다. 주요 저서로는 『스토아학파와 영혼의 문제Les stoiciens et l’ame』(Paris, 1996), 『스토아학파의 변증술La dialectique des stoiciens』(Paris, 2000) 등이 있다.

 

옮긴이

김유석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숭실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마치고 파리 1대학(판테온-소르본)에서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외에도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주의 전통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현재 강릉원주대 학술연구교수이자 숭실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사단법인 정암학당 연구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서양고대철학 1』(공저, 길, 2013), 옮긴 책으로는 루이-앙드레 도리옹의 『소크라테스』(이학사, 2009)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