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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의 형상들
  • 지은이 | 자크 랑시에르
  • 옮긴이 | 박영옥
  • 발행일 | 2016년 07월 15일
  • 쪽   수 | 115p
  • 책   값 | 10,000 원
  • 판   형 | 134*217
  • ISBN  | 9788967353315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책소개

역사에 직면한 이미지는 무엇을 생각하는가
역사화歷史畵의 전도와 역사화歷史化의 흐름 속에서
세계대전을, 수용소의 기억을,
기억의 질서에서 배제된 자들을, 말 없는 자들을,
이미지는 어떻게 형상화하는가

1996년 12월, 조르주퐁피두센터에서는 ‘역사에 직면해서(1933~1996)’라는 주제의 전시회가 열렸다. 즉 1933년부터 1996년까지 60여 년간 양차 세계대전을 비롯해 헝가리 혁명, 베트남전, 사회주의의 몰락 등 여러 역사적 사건에 직면했던 예술가들을 한데 불러모은 것으로, 이 책은 당시 전시회 카탈로그를 위해 쓰인 글을 묶어낸 것이다. 시차는 상당하다. 전시회가 1996년에 있었고, 이 책 『역사의 형상들』은 그로부터 16년 뒤인 2012년에 출간됐다. 그러나 이 숫자들은 일견 의미심장해 보인다. 1990년에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를, 1995년에 『불화』를 발표한 랑시에르는 사유의 방향을 조금 틀어 미학과 정치의 관계를 탐구하기 시작한다. 2000년에 출간된 『감각적인 것의 나눔』, 2003년에 출간된 『이미지의 운명』이 그것이다. 말하자면 이 책에 실린 두 글, 「잊을 수 없는 것들」과 「역사의 의미와 형상들」은 그 전환점에 놓여 있는 텍스트이자 또한 『역사의 이름들』(1993)에서의 작업, 즉 역사로도 읽히고 이야기로도 읽히는 histoire의 중의성을 영화·사진·회화 등의 프리즘을 통해 들여다본 텍스트이기도 하다. 바꿔 말해 『역사의 형상들』은 역사의 이름들을 불러오며, 이미지의 운명을 언급하면서 감각적인 것의 나눔을 다루는,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 놓인 텍스트다. 우리는 여기서 랑시에르 저작들의 여러 지점을 꿰어나가는 한 형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1996년 12월, 조르주퐁피두센터에서는 ‘역사에 직면해서(1933~1996)’라는 주제의 전시회가 열렸다. 즉 1933년부터 1996년까지 60여 년간 양차 세계대전을 비롯해 헝가리 혁명, 베트남전, 사회주의의 몰락 등 여러 역사적 사건에 직면했던 예술가들을 한데 불러모은 것으로, 이 책은 당시 전시회 카탈로그를 위해 쓰인 글을 묶어낸 것이다. 시차는 상당하다. 전시회가 1996년에 있었고, 이 책 『역사의 형상들』은 그로부터 16년 뒤인 2012년에 출간됐다. 그러나 이 숫자들은 일견 의미심장해 보인다. 1990년에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를, 1995년에 『불화』를 발표한 랑시에르는 사유의 방향을 조금 틀어 미학과 정치의 관계를 탐구하기 시작한다. 2000년에 출간된 『감각적인 것의 나눔』, 2003년에 출간된 『이미지의 운명』이 그것이다. 말하자면 이 책에 실린 두 글, 「잊을 수 없는 것들」과 「역사의 의미와 형상들」은 그 전환점에 놓여 있는 텍스트이자 또한 『역사의 이름들』(1993)에서의 작업, 즉 역사로도 읽히고 이야기로도 읽히는 histoire의 중의성을 영화·사진·회화 등의 프리즘을 통해 들여다본 텍스트이기도 하다. 바꿔 말해 『역사의 형상들』은 역사의 이름들을 불러오며, 이미지의 운명을 언급하면서 감각적인 것의 나눔을 다루는,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 놓인 텍스트다. 우리는 여기서 랑시에르 저작들의 여러 지점을 꿰어나가는 한 형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역사 앞에 선 예술이 마주한 시련을 알고 있지 않은가. 아도르노의 그 유명한 문장,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라는 말을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 그런 일이 있었다. 끔찍한 일, 도무지 말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이 일어났다. 여기서 예술을, 아름다움을 말하는 게 가능한가? 그것은 “표상될 수”도, “형상화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볼 수 없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부당하지 않은가? 랑시에르에 따르면, 그 결론은 허위다. 진실은 그 반대다. 아우슈비츠 이후 오직 예술만이 아우슈비츠를 드러낼 수 있다. 그러나 어떻게?

이미 알랭 레네는 수용소 문이 열렸을 때 생존자와 시체를 찍은 사진들에서 장소들의 침묵과 주변 자연의 무관심을 대조시켰다(「밤과 안개」). 클로드 랑즈만은 모든 기록 자료를 배제하면서, 어떤 끔찍한 광경도 표상하지 않으면서, 그때 그 사람들, 그러나 그때와 정확히 같지 않은 인물들에게 그때 그 행동을 재연해달라고 청하지 않았던가?(「쇼아」) 고야는 자신의 데생들 중 하나에 ‘우리는 볼 수 없다’고 썼다. 그렇지만 그가 정말로 아무것도 없는 백지, 아무도 볼 수 없는 무언가를 그렸던가? 그는 ‘우리가 볼 수 없는’ 광경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다. 보기를 허락하지 않는 것을 보고 또 보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그림의 고유한 속성이기 때문이다. 양차 세계대전 이후로 회화는 더 이상,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꽃들을, 비스듬히 누워 있는 나체들을, 혹은 첼로 연주자들을 그릴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세계의 미국적 무질서에 동의하는 순수한 형식놀이에 무의미하게 전념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무엇인가? 역사에 직면한 이미지들은 무엇을 생각하는가? 이어지는 것은 일련의 미술작품들이다. 여기 [총살당한 자](장 포트리에)를 보라. 도무지 어떤 ‘자’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마치 두꺼운 반죽과도 같은 형상을 보라. 바넷 뉴먼의 색과 면으로 이루어진 그림을, 오토 딕스의 형상 파괴를, 키리코의 마네킹 같은 형상들을, 혹은 1968년 미스 아메리카의 초상과 베트남 포로를 찍은 스냅사진을 결합한 [미스 아메리카](볼프 포스텔)를 보라…….

짧고 압축적인 이 글들에서 그는 그가 지속적으로 주제 삼고 있는 역사·정치·미학의 불가분한 관계를 우리 시대 발명품인 영화나 사진 이미지들, 혹은 그 자신의 역사를 가진 회화 이미지들의 ‘표상의 힘’을 통해 질문한다. 즉 예술이 한 시대를 관통한 사건들을 어떻게 형상화하는지, 또 그것이 역사와 어떻게 관계하는지를 반성하며, 이미지들이 역사 안에서 역사를 만들며 감각적인 것을 나누는 방식들을 질문한다. 그 방식들은 여기서 구체적으로 영화와 회화의 고유한 역사를 형성한다. 여기서 ‘의’는 소유격만이 아니라 주격으로도 읽혀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그 방식들은 우리가 지나온 영화와 회화의 역사에 대한 반성을 포함하면서 동시에 그것들이 더 이상 표상할 수 없는 비인간적인 현실을 마주쳤을 때,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그것들이 발명하는 새로운 역사의 형성과정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이 방식들은 다름 아닌 시간 속에서 역사 그 자체가 취하는 형상들이다. 그런데 예술가들이 감각적인 세계의 요소들을 분리하거나 다시 분배하기 위해 그 세계를 자르는 방식에 대해서 질문하는 것은, 모든 예술적 작업의 한가운데서 정치에 대해 질문하는 것일 뿐 아니라 예술의 ‘역사’ 그 자체, 역사라는 ‘말들’의 역사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다. 이는 랑시에르가 이 책과 다른 책에서 계속해온 작업이다. 랑시에르에게, 이미지가 역사l’histoire를 쓰지 않고서는 이야기une histoire를 쓸 수 없다면, “어떤 장소 혹은 어떤 순간에 자신을 드러내거나 감추면서 말하지 않는 이미지가 없는 것처럼, 공식적인 역사가 영원히 고정한 이미지들을 다르게 드러내거나 감추면서 그것들에 대한 논의를 다시 열 수 없는 이미지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역사를 표상하는 행위는 물론 우리를 고정된 역사 안에 가둘 수도 있지만, 동시에 역사의 의미를 해방시킬 수도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자리에 랑시에르가 책 전체를 통해 제기하는 질문 – 이미지는 무엇을 생각하는가? – 이 놓인다. 이미지는 어떻게 역사 안에 자리가 없는 자들, 말이 없는 자들, 심지어 우리가 사라지게 한 자들을 보고 듣게 할 수 있는가? 이 무화/가시화에 대한 랑시에르의 질문은 아우슈비츠 이후 예술의 불가능성에 대한 현대 철학자들의 질문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랑시에르에 따르면, 이 표상 불가능성이 바로 예술의 의무다. 오직 예술만이 키리코의 공식 – 인간 안에 인간의 부재 – 을 따라 “비인간적인 것을 미美의 비인간성을 통해 감각적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은 이렇듯 역사의 이미지들 안에서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결국 존재와 비존재 사이의 나눔을 문제 삼고 다시 연출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목차

잊을 수 없는 것들
1. 카메라 렌즈 뒤에서
2. 창문 뒤에서
3. 가시성의 문턱
4. 소멸에 직면해서

역사의 의미와 형상들
1. 역사의 네 가지 의미
2. 역사와 표상: 근대성의 세 가지 시학
3. 역사화歷史畫의 세 가지 형식

옮긴이의 말
인용된 영화들

미리보기

“기계는 위대한 자들과 평범한 자들을 똑같이 찍는다. 기계는 그들을 함께 파악한다. 그렇다고 해서 기계가 가진 소명이 무엇이든 간에 과학과 기술이 귀족과 천민의 조건들을 민주적으로 접근시켜 그들을 평등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기계는 다만 그들이 같은 이미지, 동일한 존재론적 지위를 점하는 이미지를 나눠 갖는 것을 가능케 한다. 그 이미지가 그때 거기에 존재하게 하기 위해서 그들은 이미 어떤 것을 공동으로 가지고 있었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같은 시간,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시간에 속해야 한다.” _23쪽

 

“카메라가 예프레모프 농부들에게 준 말은, 카메라가 그들의 역사적인 위엄을 드러내는 바로 그 순간 그들을 비존재로 돌려보낸다. 카메라는 그들의 말을 초원, 눈, 이즈바가 있는 풍경과의 닮음 안에 기입한다. 유의미한 것과 무의미한 것, 침묵과 말의 낭만적 평등은 목소리를 무성으로, 말을 벙어리로 만들기 위해 얼굴의 주름 혹은 땅의 굴곡을 말하게 하는 끊임없는 제로섬 교환의 평등이다. 보게 하고 듣게 하는 기계는 모든 삶에 빛을 주자마자 그것을 곧 자신의 것으로 다시 취한다. 따라서 역사를 만드는 작업은 그 빛을 흉내 내는 것과 자신의 근본적인 거리를 의식하는 예술에 속한다.” _52쪽

 

“예술의 완성과 자기 제거는 짝을 이룬다. 예술에 존재하는 모든 형식이 자기 자신의 제거나 마찬가지인 완성을 겨냥하는 것은 운명적 잠재력으로서 역사의 고유함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역사의 시대는 모든 역사의 고유함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역사의 시대는 모든 제도화된 글쓰기가 그러하듯이 고유한 형태가 없는 모든 물질에 형식 놀이의 요소로 변모할 가능성을 부여한다. 반-표상주의의 시대는 표상될 수 없는 것의 시대가 아니라, 위대한 사실주의의 시대다.” _91쪽

지은이/옮긴이

지은이

자크 랑시에르 Jacques Ranciere

1940년 알제리 출생, 프랑스 고등사범학교(Ecole Normale Superieure) 를 졸업했다. 파리 8대학에서 1969~2000년까지 철학 교수로 재직했고 현재 파리 8대학의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루이 알튀세(Louis Althusser)의 수제자로서 1965년 『자본론 독해, Lire le Capital』 작업에
참여해서 명성을 얻었으나 1968년 프랑스 학생운동을 기점으로 루이 알튀세와 결별했다. 결별의 이유는 마르크시즘의 엄격한 과학성과 결정론적 사상에 충실했던 알튀세와 실천 중심의 마오이즘(Maoism)에 경도되어 있던 랑시에르의 견해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특히 루이 알튀세의 단정적 언어해석 원칙에 반감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사람들은 추정하고 있다.
이후 알튀세와는 다른 노선을 추구했고, 1974년 『알튀세로부터의 교훈, La lecon d’Althusser』을 출간하면서 알튀세의 사상을 비판했다. 1970년대 말 이후에는 젊은 좌파성향의 지식인들 – 조앙 보렐(Joan Borell), 아를레트 파르쥬(Arlette Farge), 쥬느비에브 프레스(Genevieve Fraisse) – 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노동해방 연구에 몰두하면서 『프롤레타리아의 밤』, 『노동자의 꿈에 대한 보고서』를 집필했다.
자크 랑시에르는 1980년대 중반부터 과거와는 다른 인물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그 분기점은 조세프 자코토(Josephe Jacotot)에 대한 고찰이었다. 이 연구의 결과물이 『무지한 스승, le Maitre Ignorant』이었고, 이 저서를 발표하면서 명성을 얻음과 동시에 마르크시즘과의 결별을 공인받게 되었다. 그는 다수의 책을 집필한 영화애호가이기도 해서, 미학과 정치의 관계를 분석한 저술활동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저서로는 『무지한 스승, le Maitre Ignorant』1987, 『정치의 주변부에서, Aux bords du politique』1990, 『침묵의 언어, La parole muette』1998, 『문학 정치, Politique de la litterature』2007, 『프롤레타리아의 밤, La nuit des proletaires』1981, 『노동자의 언어, La parole ouvriere』1976, Alain Faure공저 외 다수가 있다.

 

옮긴이

박영옥

연세대 철학과에서 사르트르 철학 연구로 석사학위를, 프랑스 부르고뉴 대학에서 레비나스 철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 미셸 앙리의 『물질 현상학』 및 『육화, 살의 철학』, 기욤 르 블랑의 『안과 밖: 외국인의 조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