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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을 훔친 위험한 冊들 조선시대 책에 목숨을 건 13가지 이야기
  • 지은이 | 이민희
  • 옮긴이 |
  • 발행일 | 2008년 06월 23일
  • 쪽   수 | 383p
  • 책   값 | 15,800 원
  • 판   형 | 152*223
  • ISBN  | 9788954605922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책소개

책으로 살펴본 조선시대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다. 성리학은 조선사회를 대표한 단 하나의 이념이었다. 기독교가 지배한 서양의 중세가 흔히 암흑기로 묘사되듯 500년 조선사도 상상력이 억압된 통제사회로 규정되곤 한다. 성리학적 질서는 일신교사회의 특징을 많이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타자를 배제함으로써 동일자의 특성을 갖추어나갔다. 중세의 수도사들이 마녀사냥에 열을 올렸듯 조선의 유학자들도 이질적인 사상을 붓과 칼을 동원해서 처단해나갔다. 삼강오륜의 질서는 그런 정치적인 실천의 제도화였다.
학설과 논쟁을 중심으로 세워지는 사상사 연구의 관행을 따라가면 조선이 이념 기계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고려 말에 성리학을 들여와 성종대에 『경국대전』의 틀을 완비하고 예송 논쟁과 이기 논쟁을 거쳐 실학으로 골인하는 과정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스토리다. 하지만 유학의 정전들을 중심으로 논지를 펼치고 그에 반대되거나 소수자로 묶이는 학설을 통해 부연함으로써 사유의 역동성을 만들어가는 논의 구조를 통해서는 결국 승자를 합리화하는 그림밖에는 그릴 수 없다. 또한 그 속에서 정전의 정확한 카운터파트는 재조명의 손길을 어느 정도 받겠지만 홀로 독립군처럼 존재했던 수많은 사유는 사상사의 물길에 실리지 못한 채 과거에 그대로 버려질 우려도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사유의 역사는 얼마나 앙상한 동어반복이겠는가.
『조선을 훔친 위험한 책들』은 독백의 사상사를 벗어나 대화와 투쟁의 사상사를 그리기 위한 기초적인 시도다. 우리가 잘 몰랐던, 혹은 보고도 그냥 지나쳤던 조선시대의 다양한 사유의 흔적을 찾아내서, 그의 눈과 입을 빌려 그 시대를 해석해보고자 했다. 그 방법으로 이 책은 일종의 금서禁書들의 사회사라는 형식을 취하게 되었다. 사문난적으로 몰린 책과 저자들의 역사는 성리학에 포섭되지 않은 사유를 가장 잘 보여준다. 하지만 ‘마녀’들만으로는 조선의 불온한 사유들이 온전히 그려질 수는 없다. 좀더 내밀하게 살피고 뒤져보면 무채색의 투명하고 평범한 책들에도 시대의 비의가 그려져 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성리학으로 귀결된 책들 속에서도 은연중 그 시대의 현실적 삶과 대결한 흔적, 하지만 결국 권력의 논리를 따르고 만 타협의 고백을 살필 수 있다. 이 책에서는 그들의 존재도 적극 끌어들여서 자칫 ‘금서의 역사’가 빠질 수 있는 또다른 획일성과 식상함을 넘어서고자 했다.

 

각 장의 주요내용 

1. 사림의 훈구파 사냥: 『설공찬전』 필화 사건
중종 대 『설공찬전薛公瓚傳』이라는 소설을 써서 파직당한 채수蔡壽(1449~1515)의 이야기다. 한글로 씌어진 최초의 소설인 『설공찬전』은 불교윤회사상과 왕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해서 수거되어 불태워졌고, 채수는 파직당하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이 사건 이후 조선의 소설이 유교이념으로 천편일률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저자는 왜 『설공찬전』이 탄생했는지의 문제를 파고든다. 그것을 채수라는 인물의 천재성, 어렸을 때 귀신현상을 겪었던 체험적 진실, 정치적인 경력 등에서 찾고 있다. 저자는 이런 과정을 통해 『설공찬전』이 사림파에 의한 이념사냥의 첫 신호탄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2. 조선은 왜 책을 팔지 못하게 막았는가: 조선중기 서사 설치 논란과 어득강
이 책의 서설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조선시대 중반으로 넘어오면 사회적 앎의 욕구가 비등해지고 알음알음 책을 구해보던 것을 넘어서서 서점을 통한 본격적인 책의 유통을 필요로 하게 된다. 하지만 기득권 성리학자들은 거듭된 서사 설치 요구를 계속 묵살했다. 그들이 내세운 반대 이유는 조상에게 물려받은 책을 상업적으로 사고파는 행위가 적절치 못하다는 것, 전래에 없던 풍속이라는 점 등이었지만 실제로는 글자를 아는 문중文衆이 확대되어 성리학적 통치 기반이 흔들릴 것을 우려해서였다. 저자는 퇴계의 스승이기도 한 어득강魚得江(1470∼1550)이 젊은 시절부터 수십년간 줄기차게 서사설치를 주장하는 과정과 이것이 내쳐지는 모습을 흥미롭게 복원함과 동시에 당시 양반들의 이중잣대를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3. 실패한 저격수들, 논쟁의 불씨 키우다: 『곤지기』 『이단변정』 『학부통변』
이 장에서는 성리학의 양명학 비판을 다룬다. 조선의 역사가 막 절반을 지났을 때 서서히 국가의 틀이 완비되고 국가의 이념이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산군대의 사상탄압과 중종 대의 대화재를 겪으면서 도학정치의 틀이 깨지고 많은 성리학 서적이 유실되었다. 강퍅해진 유학자들은 오직 성리학적 질서의 재건을 위해 매달렸고, 그 결과 당파가 형성되었고 이단배척의 움직임이 생겨났다. 첨릉詹陵의 『이단변정』, 나흠순羅欽順의 『곤지기困知記』, 진건陳建의 『학부통변學?通辨』 등 양명학 비판서들이 수입되어서 사상계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점을 지적한다. 비록 양명학을 비판하고 있는 책들이었지만, 조선에 미처 알려지지 않았던 중국의 진귀한 사상서들을 국내에 소개하는 결과를 낳았고, 그것이 앎의 욕구를 더 증폭시켜서 오히려 양명학을 공부하는 재야세력을 더욱 키웠다는 점이다. 그 과정을 한번 따라가보자.

4. 유학자들은 왜 ‘귀신’을 연구했나: 성리학의 귀신 논의를 해체시킨 정약용의 『중용강의
본체와 현상의 관계를 규명하려던 성리학자들의 논변은 조선후기로 갈수록 추상화되고 모호해졌다. 특히 鬼神에 대한 논의가 그랬다. 조선은 제사를 모시는 나라였기 때문에 귀신이 어떤 존재인지, 살아있는 사람과 어떤 관계에 놓이는지 등을 규명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저자는 남효온南孝溫(1454~1492)의 『추강집秋江集』에서 시작된 성리학의 귀신론을 서경덕, 이황, 임성주 등을 거쳐 내려오며 살피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살펴지는 것은 귀신을 인정할 수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논리적인 딜레마다. 왜냐하면 귀신은 기氣에 속했고, 성리학이 추종한 것은 리理였기 때문이다. 이 논의틀을 깬 사람은 정약용이었다. 정약용은 『중용강의』에서 上帝이론을 펼쳤는데, 그것은 귀신의 문제를 리와 기로 앞뒤가 꽉 막힌 철학체계에서 끄집어내고 종교적인 영역으로 옮겨서 논의한 것이었다. 일찍이 천주교의 세례를 받은 바 있었던 정약용은 표면적으로는 그 영향을 감추고 있었지만, 절대적인 신과 한시적인 인간이라는 구도를 변형시켜서 성리학 체계 내로 수용했다.

5. 사무라이에 대한 공포가 탄생시킨 병법서들: 『연병지남』에서 『무예제보』까지
선조 때의 성리학자이자 병법학자 한교韓嶠(1556~1627)의 삶과 저술을 살펴보고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무참히 무너진 조선의 군사체계를 다시 추스르고 일으켜세우는 중심에 바로 한교가 있었다. 그는 명나라 척계광이 지은 일련의 병법서들(『기효신서』 등)을 조선화하여 『무예제보』와 『연병지남』 등을 저술했는데 이것은 왜구와 여진이라는 현실의 적을 토벌하기 위해 최적화된 지식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조선의 조정은 필요할 때 한교를 불러 병서를 지으라, 군사를 훈련시켜라 독촉하면서도 정작 적이 물러나면 이 급했던 때를 잊고 정치논리를 동원해 한교를 탄핵했다. 한교는 결국 제거되고 마는데, 그가 탄핵된 이유를 면밀히 살펴보면 너무나 내밀하게 조선의 군사 현실을 알고 있는 전문가였기 때문이었다.

6. 한 영명한 왕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책: 위험한 변화를 기록한 『심양장계』
『심양장계』는 삼전도치욕 이후 청나라에 끌려간 소현세자 일행이 청나라 심양에 머물며 8년간 있었던 일을 조선의 조정에 보고한 내용을 묶은 책이다. 세자 일행은 청나라라면 치를 떠는 인조를 대신해 그들의 파병요구와 포로송환 문제를 의논하고, 국교 정상화를 위한 외교채널로 기능했다. 그 과정에서 처음에는 갈등이 있고 고성이 오갔지만, 차츰 세자의 뛰어난 외교수완은 청의 왕과 고위관료들을 사로잡게 된다. 또한 당시 청나라를 중심으로 재편되던 동아시아의 국제질서와 북경에 상륙한 서양 선교사들의 손에 의해 전해지던 서양의 자연과학적 지식을 소현세자가 수용하면서 그는 적국에서 매우 현실적이고 국제적인 제왕의 수업을 받게되는 결과를 보여줬다. 이 모든 내용이 담긴 『심양장계』는 인조를 불안하게 했고, 결국 청 황실이 자신을 끌어내리고 세자를 임금의 자리에 앉히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상황을 낳았다. 소현세자는 귀국후 죽음을 맞는다. 위대하지만 위험한 변화를 담고 있는 『심양장계』라는 책의 주요내용과 그것의 비극적 역사성을 살피고 있다.

7. 동방의 보물 같은 책은 왜 백성을 구하지 못했는가: 『동의보감』에서 『마과회통』까지
임진왜란 후 조선의 의료기관들은 그 기능이 마비되었다. 전염병이 발생하면 약을 구하지 못했고 치료는 언감생심, 격리되고 죽어가는 게 순서였다. 『동의보감』은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국가적인 의서편찬 프로젝트였다. 중국의 최신 의료지식과 조선의 경험방을 집대성한 이 책은 중국과 일본에도 수출돼 그 명성을 널리 떨쳤다. 하지만 저자는 『동의보감』이 개인 양생술에 바탕을 둔 의서이기 때문에, 전염병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있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홍역과 두창은 개인의 양생술로 해결될 성질의 전염병이 아니었다. 이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맞는 사회적 행동이 필요했다. 청결한 격리수용시설이 있어야 했고, 제때 도착하는 보급품과 약품, 이를 총지휘할 긴급의료체계가 갖추어져야 했다. 하지만 조선에는 이런 것이 전무했다. 저자는 『동의보감』이라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거대한 의학체계를 조선의 고위층이 얼마나 백성들의 현실에 눈을 감고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알레고리로 사용하고 있다. 반면에 정약용이 저술한 『마과회통』과 『의령』 같은 저술은 그 반대편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실용지학의 산물이라고 조명한다. 정약용은 자식 여섯을 두창과 전염병으로 잃었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8. 양반 이상주의자들을 향한 일침: 서계 박세당의 『사변록』과 『색경』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의 생애와 저술활동을 조명했다. 병자호란 이후 안팎으로 피폐해진 나라를 일으켜 세우는 일에 지식인의 정책 과제가 집중된 때가 있었다. 서계 박세당은 이 시기에 청요직을 역임하면서 신분제와 토지제도의 개혁, 왕과 신하의 역할 구분, 경서의 실용주의적 재해석 등을 외쳤지만 사문난적으로 토벌되고 말았다. 『사변록』이 배격한 것은 남송시대에 주희에 의해 완성된 사서삼경의 체계였다. 박세당은 공자와 맹자가 원래 뜻한 바를 존중했다. 박세당은 송나라 주희가 경전의 뜻을 멋대로 해석했다고 보았다. 주희는 “성性은 곧 리理”라고 말했지만, 박세당은 주자학의 가장 기본적인 이 명제를 거부했다. 박세당은 객관적 자연인 물物과 도덕적 주체인 인간은 분리되어야 하고, 물은 도덕과 별개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사짓는 법을 추구한 『색경』은 노동행위에 경經이란 이름을 붙인 조선 최초의 책이었다. 박세당은 양반도 생산 활동에 참여해야 하며, 조세제도를 개혁해 신분간 불평등을 없애야 한다는 개혁론을 폈다. 『색경』은 농업의 기술을 다룬 책이지만 이런 사상적 시야 아래에서 저술된 책이었다.

9. 유교사회의 희생양, 불살라진 소설들: 조선의 여인들, 비밀결사처럼 숨죽이고 소설을 읽다
왜 사대부와 남성 문장가들은 이토록 여성들의 소설읽기를 그 존재부터 부정해야 했을까. 저자는 여기서 문제를 풀어나간다. 현실적인 이유는 가산을 탕진하고 가사를 소홀히 한다는 점이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여성들이 글을 아는 대중, 즉 문중文衆으로 자라나는 걸 두려워하는 무의식이 깔려있었다. 대다수의 소설이 기존의 사회질서를 조금씩이라도 일탈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일탈적 사유가 상식처럼 자리 잡으면 그 일탈하고 나간 뒤에 남는 빈자리는 영구적인 것이 돼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라르는 짝패의 갈등이 통제되지 않을 경우 영원한 상호 폭력의 악순환에 빠진다고 했다. 조선의 문풍과 당쟁은 그것과 너무나도 닮아있다. 주자학을 대성시킨 송시열이나 이황이든, 자유문인을 표방한 이덕무나 경세가적 실천을 중시한 정약용이든 모두 유학자이긴 마찬가지였다. 유학을 일컬어 현세를 위한 종교라고 하듯, 이들의 공통된 목표는 현세적 삶을 윤리적으로 제도적으로 완벽하게 만들어나간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글은 여성들을 전혀 다른 방향에서 끌어당겼다. 그것은 외설과 투기로 규정된 삶의 새로운 욕망 그리고 유희와 위로로서의 글 읽기였다. 윤리적인 채찍질로서의 사유가 아니라 감싸고 타협하는 사유의 탄생이었다. 기독교 사회가 공동체의 갈등과 위기를 끝내기 위해 희생양에 의존해왔듯, 조선 유학의 두 가지 경향이 대화의 불능, 상호공격의 지능화로 달려가는 짝패의 악순환을 달릴 때 여성들의 소설 읽기는 그 대립의 불모성을 가려줄 희생양으로 선택되고 탄핵되었다.

10. 조정에 피바람을 일으킨 영조대왕의 분노: 책쾌들의 씨를 말린 『명기집략』 사건
영조 대에 일어난 명기집략 사건을 다뤘다. 양반들과 책쾌들이 수없이 처형되었던 이 사건은 중국의 주린이 지은 『명기집략』 때문이었다. 여기엔 조선의 태조가 역적의 아들이라는 등 왕실을 무함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어느날 이 책이 유통되고 있다는 걸 보고받은 영조는 크게 노해서 관련자들을 잡아들였는데 연암 박지원의 절친한 문우였던 이희천이 잡혀와서 죽었다. 이러한 책들을 유통시킨 책쾌(책주름)들도 일망타진되어서 도성 안에서 책쾌를 찾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저자는 영조가 평소에 주린이 지은 역사서를 즐겨 읽었으며 당시 낫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사람까지 처형하고, 왕실의 친척은 아무 문제도 삼지 않는 등 법의 적용이 적절하지 못했음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명기집략』 사건은 비극이지만, 이 사건을 통해 조선에 책이 어떻게 유통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11. 조선의 가장 똑똑했던 왕이 가장 싫어했던 책: 『원중랑집』 등 노론청류의 양명좌파 수입과 그 좌절
정조는 문체반정을 통해 ‘글이 근심에 싸여 가냘프게 떨거나 조급하고 기이할 뿐’인 지식인들의 글쓰기를 나무랐다. 특히 그는 중국 공안파의 일원인 원굉도의 문집 『원중랑집袁中郞集』을 원흉처럼 몰아세웠다. 중국의 공안파는 조선의 비주류였던 노론청류와 남인계 지식인들과 소통했는데 이것은 양국의 좌파들의 만남이었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고루한 고전의 체계에서 탈피해 개인의 자유로운 사상을 마음껏 표출하는 『원중랑집』에 매료되었다. 하지만 무조건 그것을 추종한 것은 아니다. 고염무의 『일지록』으로 대표되는 청나라의 현실주의 실학과 고증학을 도입해서 조선의 역사를 재상고하고 현실주의 학문도 가열차게 추진해나갔다. 하지만 정조의 문체반정은 이러한 움직임이 채 성숙하기도 전에 일망타진함으로써 조선 지성계가 스스로 토론하며 깊어질 수 있는 기회를 봉쇄했다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12. 18세기 백과사전의 시대가 열리다: 박학다식한 선비들의 총서 열풍
조선의 18~19세기는 바벨탑처럼 지식을 쌓아올리려는 열정이 한꺼번에 표출되고 있었다. 저자는 『임원경제지』와 『오주연문장전산고』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조선의 백과사전은 물론 이 시기 기획되고 미처 쓰여지지 못한 수많은 지적인 모험을 18세기라는 변혁기와 맞물리게 해서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서구 계몽주의의 산물인 백과전서가 식민지 개척의 경제적 동기를 내장한 채 과학주의로 무장하고 있다면, 고요한 동양의 나라 조선의 백과사전들은 동시대를 향한 정치칼럼과 생활에세이를 방대한 역사지식 속에 버무려 역류해나가면서 기존의 권위와 불필요한 제도를 혁파하는 지식 게릴라들의 집결지 같은 공간이었다고 조명한다. 어차피 긴급한 당대의 눈으로 볼 때 백과사전 류의 지적 노동은 한가한 뜬구름잡기로 비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18~19세기의 백과사전류의 편찬 열풍은 과욕과 현학의 욕망에 짓눌려 현실적 지시대상을 잃어버린 모호하고 뚱뚱한 책들의 잔치로 비추어질 우려도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그 시대만이 꿈꾸었던 문학의 다른 표현은 아니었을까 라는 게 저자의 시선이다. 마치 루카치적 의미에서 사라진 완전한 세계를 찾아나서는 인간의 고통스런 여정과, 궁극적으로 다시는 고향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아프게 확인하는 낭만적 아이러니의 서사양식이 아름답듯이 그들의 좌절한 꿈도 그렇게 받아들여야 하는 게 아닐까.

13. 조선의 종말, 그 시초를 알린 책: 『조선책략』을 둘러싼 모험
고종시대에 일본에 건너간 김홍집이 한권의 책을 들고왔다. 청나라 외교관 황준헌黃遵憲이 지은 『조선책략』이 그것이다. 이 책엔 러시아를 견제하고 청, 일본, 미국과 연대하라는 주장이 담겨 있었는데 고종은 이 내용을 선별해서 받아들였고, 그것이 영남 유생들이 만인소를 올리고 정국을 격동시키는 계기로 작용한다. 저자는 『조선책략』을 통해 왕실과 지식인세력 사이에 가로놓인 인식의 격차를 조명하면서, 사상을 억압하고 통제한 조선 왕실의 정책이 다양한 정보의 유통, 정치담론의 형성과 전개를 막아 조선을 더욱 고립시켰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전국의 보수세력을 집결시켜 한 목소리로 척화를 외치고 개항정국을 개화와 척화의 사단을 건 대결로 양분하는 분수령을 이루었다는 점도 지적한다. 아울러 『조선책략』은 이후 한국사회에 퍼진 미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의 기원을 이룬다는 점도 분석하고 있다.

목차

머리말
이야기 하나_ 사림의 훈구파 사냥: <설공찬전> 필화 사건
이야기 둘_ 조선은 왜 책을 팔지 못하게 막았는가: 조선중기 서사 설치 논란과 어득강
조선의 책 이야기: “맞난 음식과 낮잠만으로 세월 보내기는 괴로운 일”: 세책점의 등장과 대중 독서시대의 개막

이야기 셋_ 실패한 저격수들, 논쟁의 불씨 키우다: <곤지기> <이단변정> <학부통변>

조선의 책 이야기: 조선시대의 추천 도서 목록은 어땠을까- 홍석주와 이율곡의 권서 논리 비교

이야기 넷_ 유학자들은 왜 ‘귀신’을 연구했나: 성리학의 귀신 논의를 해체시킨 정약용의 <중용강의>
이야기 다섯_ 사무라이에 대한 공포가 탄생시킨 병법서들: <연병지남>에서 <무예제보>까지

조선의 책 이야기: 허균의 애장서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삼치설의 유행과 조선의 책 인심

이야기 여섯_ 한 영명한 왕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책: 위험한 변화를 기록한 <심양장계>
이야기 일곱_ 동방의 보물 같은 책은 왜 백성을 구하지 못했는가: <동의보감>에서 <마과회통>까지

조선의 책 이야기: 독서당 선비 신종호를 기생으로 꾀어내다: 사가독서제가 탄생시킨 독서의 괴물들

이야기 여덟_ 양반 이상주의자들을 향한 일침: 서계 박세당의 <사변록>과 <색경>
이야기 아홉_ 유교사회의 희생양, 불살라진 소설들: 조선의 여인들, 비밀결사처럼 숨죽이고 소설을 읽다

조선의 책 이야기: 명나라에는 없어도 조선에는 있다-소설과 희귀서에 매료된 관료들

이야기 열_ 조정에 피바람을 일으킨 영조대왕의 분노: 책쾌들의 씨를 말린 <명기집략> 사건

조선의 책 이야기: 강을 건너면 이리로 변하는 사람들: 명청대 도서의 수입과 역관

이야기 열하나_ 조선의 가장 똑똑했던 왕이 가장 싫어했던 책: <원중랑집> 등 노론청류의 양명좌파 수입과 그 좌절
이야기 열둘_ 18세기 백과사전의 시대가 열리다: 박학다식한 선비들의 총서 열풍

조선의 책 이야기: 아버지 무덤에 천여 권의 책을 순장하다: 책에 미친 사람들
이야기 열셋_ 조선의 종말, 그 시초를 알린 책: <조선책략>을 둘러싼 모험

주註

미리보기

당대 최고의 리얼리스트인 다산은 성선설과 성악설을 모두 수용해 인간은 도덕적으로 올바르게 행동하려는 본능과 함께 아무 곳에서나 누워서 자고 마음먹은 대로 하고 싶어하는 생리적인 특성을 함께 가지고 태어났다고 여겼다. 바르게 살려면 이 생리 특성을 절제하고 도덕적 성향을 잘 계발해야 하는데 법과 윤리로는 한계가 있다는 게 다산의 생각이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온갖 나쁜 생각과 행동들이 문제였다. 그리하여 다산은 항상 인간의 옆에 붙어서 ‘도덕의 감시자’ 역할을 해줄 무언가를 찾게 되었고, 그 존재를 바로 귀신이라고 규정했다. 이것이 바로 다산의 유명한 ‘상제上帝’ 이론이다. 인간 도덕의 근원은 원래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상제가 끊임없이 감시하고 다그침으로써 유지될 수 있다는 독특한 수양론인 것이다.

다산은 “마치 무덤 옆을 지나가는 사람이 도깨비가 있음을 두려워하듯, 방 안에 서책을 펴고 앉은 선비도 그를 지켜보는 초월적인 상제를 느끼고 몸가짐을 바르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이 두려워했던 초현실적인 존재, 즉 귀신과 같은 존재를 도덕의 감시자로 상정할 경우 사람들이 그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도덕에서 이탈하지 않을 수 있으리라는 것이 바로 정약용의 귀신론에 깔린 의도인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성리학자들과 그들을 비판한 정약용의 귀신론을 두고 어느 것이 맞다 그르다 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본체와 현상의 관계를 규명하려던 성리학자들의 논변이 갈수록 추상화되고 모호해진 것과는 달리, 정약용의 논의는 비교적 뚜렷한 현실적인 목적하에 귀신에 대한 이론을 펼쳤기 때문에 알아듣기도 쉬울뿐더러 호감을 준다는 점이다. 그것은 단지 정약용의 투철한 현실 논리 때문일까. 물론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더욱 근본적으로는 정약용이 귀신의 문제를 리와 기로 앞뒤가 꽉 막힌 철학 체계에서 끄집어내고 종교적인 영역으로 옮겨서 논의했기 때문일 것이다.

_112~113쪽

지은이/옮긴이

지은이

이민희

1970년 인천 강화도에서 태어나 자랐다. 서울 우신고, 연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고전문학으로 문학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폴란드 바르샤바대 조교수를 거쳐 2018년 현재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9년에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고전소설, 구비문학, 비교문학, 문학사, 고전문학교육 등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학제 간 연구를 해 오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파란·폴란드·뽈스까: 100여 년 전 한국과 폴란드의 만남, 그 의미의 지평을 찾아서』(소명출판, 2005), 『16~19세기 서적중개상과 소설·서적 유통관계 연구』(역락, 2007), 『조선의 베스트셀러』(프로네시스, 2007), 『조선을 훔친 위험한 책들』(글항아리, 2008), 『역사영웅서사문학의 세계』(서울대출판부, 2009), 『마지막 서적중개상 송신용 연구』(보고사, 2009), 『고전산문 교육의 풍경』(강원대출판부, 2011), 『강화 고전문학사의 세계』(인천학연구원, 2012), 『백두용과 한남서림 연구』(역락, 2013), 『쾌족, 뒷담화의 탄생』(푸른지식, 2014), 『세책, 도서 대여의 역사』(커뮤니케이션북스, 2017), Book Peddlers and Circulating Library in the 18~19th Century (Lambert Academic Publishing, 2017)가 있다. 그 밖에 수편의 저서와 공저, 그리고 번역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