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 강의 이야기를 듣다 민물의 인문학, 신화에서 문학까지
  • 지은이 | 신진철
  • 옮긴이 |
  • 발행일 | 2016년 05월 16일
  • 쪽   수 | 320p
  • 책   값 | 17,000 원
  • 판   형 | 145*218
  • ISBN  | 9788967353216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책소개

경외와 숭배, 파괴와 수탈,
기쁨과 불안, 축제와 전쟁
민물을 둘러싼 인간의 문화사

이집트인은 하늘의 은하수를 나일 강의 그림자라고 믿었다
카이사르는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 역사를 다시 썼다
산업혁명의 공신 템스 강은 런던 시민들에게 ‘몬스터 수프’라 불렸다
강가의 화신 갠지스 강은 인도 문명의 요람이자, 오염의 상징이다
메콩 강, 콜로라도 강, 도나우 강은 갈등과 긴장을 안고 흐른다
한강에는 ‘괴물’이 살고, 태화강에는 연어가 돌아왔다

신화와 문학, 철학과 과학, 종교와 정치, 인간과 자연이 어울려 흐르는
강의 오디세이아

2015년 겨울, 수몰이 예정된 영주의 한 마을에서 마지막 주민이 이사를 나갔다. 400년 넘는 역사의 금강마을이다. 수몰 예정지에서는 청동기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문화재가 대거 출토됐고, 통일신라 시대의 유적지도 발견됐다. 그러나 마을의 운명은 바뀌지 않았다. 1990년대부터 미국은 650개의 댐을, 일본은 320개의 댐을 철거했다. 그러나 댐 개수 세계 6위, 단위면적당 댐 밀도로는 세계 1위인 한국은 지금도 새로운 댐을 짓기 위해 강에 보를 대고 마을을 수장시키고 있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수천 년 역사와 ‘댐 하나’를 맞바꾸게 했는가? 무엇이 강과 민물에 대한 담론을 이토록 빈약하게 만들었는가? 무엇이 한 모금, 한 줌, 한 줄기의 민물이 기억하는 복잡하고 장엄한 인간의 나날들을 지워냈는가? 왜 한강과 낙동강, 영산강 같은 우리 강은 갠지스나 템스 강, 도나우 강처럼 고유의 면모와 정취를 갖지 못하고 콘크리트에 둘러쳐진 똑같은 모습을 하고 흐르는가?

 

강이 빚어낸 질문에 ‘물의 인문학’으로 답하다

물이 교환가치를 지니기 시작하면서, 4대강이 ‘녹조 라떼’로 변모하면서 강과 물에 관한 많은 책들이 국내외에서 소개됐다. 그러나 이 책처럼 동서양의 이름난 물줄기와 한반도의 작은 하천까지 모두 주제로 삼아 신화와 문학, 철학과 과학, 종교와 정치, 역사와 기억을 넘나들며 물과 맞닿은 인간 초상의 면면을 그린 작품은 없었다. 이 책은 민물을 프리즘 삼아 인류의 정신과 문화를 되짚은 인문적 에세이이자, 아랄 해에서 낙동강까지 민물의 변천을 통해 인간 삶을 들여다본 역사적 기록이다.

 


원초적 기억에 새겨진 강의 신비

이집트인은 하늘의 은하수를 나일 강의 그림자라고 믿었다. 그들은 나일 강의 원초적 실체를 상상하며 신화를 창조했다. 소리도, 빛도 없는 무한의 공간에 태초의 혼돈이 있었다. 사막 한가운데로 흐르는 강은 넘쳤다가 줄어들기를 반복하며 수만 년간 그들의 삶을 조각했다. 물이 불었다 줄면, 그 자리에는 기름진 토양이 남았다. 땅은 어김없이 초록의 생기를 띠며, 보리와 옥수수 같은 작물을 길러냈다. 사람들은 이를 범람의 신 하피가 가져다주는 축복이라 믿었고, 성대한 제사가 치러졌다.

거기에 빠질 수 없는 게 술이었다. 인류는 대략 7500년 전부터 포도주를 마셔왔으며, 고대 로마인은 점령지마다 포도나무를 심었다. 인간은 ‘신비의 물’, 술의 힘을 빌려 상상력을 발휘하고, 슬픔을 달랬으며 기쁨을 나누었다. ‘기적의 물’ 또한 오래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그것은 특별한 물이 아니라 인간을 낫게 하는 물이었다. 병에 걸리면 신이 노여워해 벌을 내렸다고 믿었던 고대 그리스인에게 히포크라테스는 신의 노여움이 아니라 잘못된 생활습관 때문임을 일깨웠고, 가장 기본적인 처방으로 물을 이용한 자연치료법을 택했다. 물을 수양과 치유의 도구로 삼은 건 이들만이 아니었다. 세례자 요한은 요르단 강물로 사람들의 죄를 씻어주었다. 유대인은 ‘미크바’라고 불리는 정결의식에서 제사를 지내기 전 반드시 물로 손과 발을 씻는 의식을 치른다. 이슬람교에도 ‘우두’라 불리는 정결의식이 있다. 불교의 ‘목욕재계’나 힌두교의 목욕문화도 마찬가지다.

12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목욕 의식 ‘쿰 멜라’ 기간이 되면 전 세계에서 수천만 명의 순례자가 갠지스 강을 찾는다. 성스러운 목욕의 날, 강가는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기도를 하러 온 사람들로 가득 찬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존경과 사랑과 봉헌을 받는 갠지스 강은 그 시원도 축제의 풍경만큼이나 신비롭다. 피의 전쟁이 끊이지 않던 전설 속 태양 왕조의 후예 바기라트의 수년에 걸친 고행으로 강가 여신은 천상에서 물을 내려보냈고, 그때의 충격을 줄이기 위해 시바 신은 자신의 머리칼을 풀어 물줄기를 흘려보냈다. 천상의 물이 흐르자 땅은 정화되었고, 대지를 가득 채운 피비린내도 걷혔다. 인도인에게 강가의 화신인 갠지스 강은 믿음과 치유의 상징이다. 인도 초대 수상 네루는 갠지스 강을 두고 “인도의 유구한 문화와 문명의 상징”이라고 했다. 그러나 강이 언제나 이렇게 인간을 번영케 하기만 했을까?

 


강과의 악연……경외와 정복의 트라우마

강은 인간에게 ‘두려움’을 가르쳤다. 인간에게 강은 생명의 원천인 동시에, 그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경외의 대상이었다. 하늘은 끝없이 비를 퍼붓고, 불어난 물은 모든 것을 수장시킬 것처럼 거세게 인간의 삶 속으로 밀려들었다. 홍수의 내러티브는 종교나 문화를 가리지 않고 인류 역사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된다. 대홍수에서 구원받은 노아의 성경 속 이야기는 지우수드라로 이름을 바꾸어 수메르 신화에도 등장한다. 이집트의 경전, 인도의 고서, 아메리카 원주민과 유럽 토착민의 설화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20년이 넘도록 대홍수가 계속된 요순시대의 중국도 마찬가지다. 물과 공존하면서도 물에 굴복하지 않는 것, 치수治水는 인류의 정신사에서 늘 자연과 인간의 대결을 보여주는 중요한 주제였다.

냉전이 시작되고 개발 체제가 본격화되면서 치수의 신화는 정점에 달했다. 인간은 신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어마어마한 규모로 물을 다스리려 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세기 댐은 자연 정복의 상징이자 국력의 척도로 여겨졌고, 많은 나라가 스스로 나서서 제 국토를 파내고 깎아가며 경쟁적으로 댐을 건설했다. 콜로라도 강 협곡에 들어선 후버 댐은 냉전 시기 우월한 과학 기술을 대외적으로 보여줄 미국인의 자랑거리였다. 이후 80여 년이 지난지만 비슷한 역사를 다른 곳에서 또다시 쓰이고 있다. ‘세계의 재난’이라 불리는 싼샤 댐은 지구 반대편에서 댐을 허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본 전체 담수와 맞먹는 400억 톤의 물을 머금은 채 그 규모를 자랑한다. 치수의 대가는 생물종 멸종과 생태계 파괴, 산사태, 지진 같은 자연재해로 인간에게 되돌아왔다.

인간의 활동이 다시 인간에게 치명상을 입힌 사례로는 템스 강 오염 사고가 악명 높다. 수질오염이 대규모의 재앙을 동반한 최초의 사례로 기억된다. 물고기가 헤엄치던 강은 19세기 중엽 산업혁명의 여파로 ‘몬스터 수프’라 불리며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대악취의 해’로 기록된 1858년, 그토록 경외하던 강을 제멋대로 이용하고 오염시킨 뒤, 만평을 그려 그것을 조롱하고 손수건으로 코를 막고 다니며 기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런던은 심각한 식수난에 시달렸으며, 뒤이은 수인성 전염병 콜레라의 창궐로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물 부족 문제다. “20세기의 전쟁이 석유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었다면, 21세기의 전쟁은 물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될 것이다.” 1995년 스마일 세라겔딘 당시 세계은행 부총재는 새로운 100년을 ‘물 전쟁’의 시대로 예견했다. 그리고 그것은 더 빠른 시점에 현실이 되었다. 강을 낀 세계 곳곳에서 물 분쟁이 빚어지고 있다. 메콩 강, 콜로라도 강, 도나우 강, 요르단 강 주변 지역은 지금 이 순간에도 갈등과 긴장을 안고 흐른다. 세계 물 시장 규모는 2018년 8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지만, 시장의 성장은 역설적으로 생존권의 침해를 우려하게 만든다. 유엔은 2025년에 이르면 전 세계적으로 18억 명이 절대 물 부족 지역에 살게 될 것이며, 전체 인구의 3분의 2가 물 부족에 시달릴 것이라고 예견했다. 물의 인문학은 그래서 현시대에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물은 인류가 함께 나누어야 할 공공재인가, 사유화할 수 있는 탐욕의 대상인가?

 


우리의 강은 어디로 흐르는가

인류의 미래라는 거대한 질문을 앞에 두고, 15년 넘게 시민단체에서 하천 살리기 운동을 해온 저자는 단순히 ‘자원’으로 축소된 물이 아닌 그것에 담긴 인문의 맥락을 사유해보기를 주문한다. 그럴 수 있다면 개발과 탐욕에 가로막힌 우리의 담론에도 물꼬가 트일 것이라고. 이 책의 반이 문명의 시원이 된 세계 각지의 강과 그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에 대한 고찰이라면, 나머지 반은 우리 땅을 흐르는, 곧 우리 삶과 역사를 같이해온 한국의 민물에 대한 순례기다. 수백만 년 이 땅을 흘러온 하천은 그 곁에 터를 잡고 살아온 필부필부의 삶을 비추는 물이다.

서울 도심을 가로지르는 한강은 80년대 개발 체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번듯하고 화려한 빌딩숲 사이를 유유히 흐르는 한강의 풍경은 그 자체로 ‘가난을 걷어내고 잘사는 나라의 여유로움을 보여줘야 한다’는 암울한 시대의 다짐이기도 하다. 광주천과 원주천, 대전의 갑천 등도 한강을 따라 변모했다. 아스팔트에 덮였던 청계천도 비슷한 수모를 겪었다. 1964년 복개 공사에 들어간 청계천은 40여 년을 지하에서 흐르다 2005년 마침내 시민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하천이 시대의 논리와 필요에 따라 덮이고 열리는 사이 그곳을 삶터로 삼은 자연과 인간의 생태계는 멋대로 들쑤셔지고, 파괴되었다. 억지로 잡아다 푼 물고기는 생태계 복원의 청신호로 포장됐고, 노점상, 옷가게, 서점을 운영하며 지역에 생기를 불어넣었던 상인들은 복합쇼핑몰로 내쫓겨 막막한 생계로 고통받고 있다.

장성댐, 소양강댐, 팔당댐, 안동댐 등 1980년대 지어진 수많은 댐은 수만 명의 집과 추억을 호수에 묻었다. 영산강을 비롯한 여러 물길은 일제강점기 수탈의 뱃길로 쓰이며 식민지의 삶을 더 비참하게 했다. 강원도 화천의 파로호는 전쟁에서 피 흘린 수많은 사람들의 넋을, 창녕을 흐르는 낙동강은 모래를 팔아 먹고살던 사람들의 위태로운 삶을, 울산의 태화강은 집단폐사를 잊고 먼 바다를 헤엄쳐 다시 돌아와준 연어의 생애를 기억한다.

‘물과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에 관한 질문은 단순히 가뭄이나 홍수에 대비해, 관광자원으로, 수자원으로, 건축 자재로 하천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이 책은 강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그 질문을 의식주라는 기본적인 생활조건부터 그 주변에 살아온 사람들이 만들어낸 문명과 문화, 그리고 자연과의 공존까지 전혀 다른 차원의 담론으로 환원한다.

목차

프롤로그 | 강, 물꼬를 트다
제1부 세상살이는 물길을 닮고

1장 인간을 닮은 물
2장 평화의 물, 탐욕의 물
3장 경계의 물
4장 기적의 물
5장 경외의 물
6장 비추는 물
7장 치유의 물
8장 역사를 증언하는 물
9장 음악같이 흐르는 물
10장 강을 거슬러간 사람들
11장 인생을 품은 물

제2부 물길은 역사를 싣고 흐른다

12장 한강에는 괴물이 산다
13장 천변 사람들
14장 눈물로 채운 호수
15장 수탈된 남도, 가로막힌 강
16장 소리를 잃은 강물
17장 연어에게선 강물 냄새가 난다
18장 모래가 삼킨 삶
19장 욕망에 사로잡힌 강
20장 양수리의 새벽
21장 혼탁해진 방죽
22장 추억을 거슬러오르는 물길
23장 물은 여전히 탁하다
에필로그 | 새만금과 4대강이 가르쳐준 것

참고문헌

미리보기

신을 앞세운 전쟁의 발단은 강이었다. 시리아는 요르단 강 상류에 댐 건설을 추진하고 있었고, 제 영토로 흘러들 물이 부족해질 것을 우려한 이스라엘이 선제공격을 감행한 것이었다. 공사 중이던 댐이 제일 먼저 파괴되었고, 그들은 내친김에 지중해에서 인도양으로 이어지는 길목까지 차지했다. (…) 강물은 곧 마르기 시작했다.
1960년대만 해도 13억 세제곱미터였던 요르단 강의 수량은 최근 약 1억 세제곱미터로 줄었다. 50년 새 90퍼센트 이상 감소한 것이다. 이제 요르단 강은 강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울 정도로 작은 물줄기로 변했다. 원인은 강 주변 국가들의 과도한 물 소비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스라엘과 요르단, 시리아, 팔레스타인까지 4개국이 농업용수와 식수로 매년 엄청난 양의 물을 소비하고 있으며, 파이프라인과 댐, 수로 등 각종 취수시설을 지어대는 바람에 요르단 강은 작고 볼품없는 개천으로 변했다. 특히 강 주변에 깊은 우물을 파서 지하수를 끌어올리고, 물길을 내륙으로 돌려 막대한 양의 물을 소비한 이스라엘은 요르단 강물 고갈의 주범으로 지목된다.3 젖과 꿀이 흐르던 가나안 땅의 시련은 새로운 세기를 맞이한 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_「평화의 물, 탐욕의 물」

 

『맹자』와 『서경』에 전하는 바로는 태평성대를 구가하던 시절, 20년이 넘도록 계속된 대홍수가 들이닥쳤다고 한다.12 중국 문명의 요람인 황하는 서북쪽의 황토 고원지대에서 발원하여 중원을 지나 보하이 만渤海灣으로 흘러가는데, 큰비가 내리면 성난 파도가 이는 바다처럼 요동을 쳤다. 황토와 뒤엉켜 상류로부터 쏟아지는 누런 물줄기는 비가 멎은 후에도 천둥소리를 그치지 않았다. 백성의 공포와 요임금의 근심이 얼마나 깊었으랴. 그 후 황하는 줄곧 ‘중국의 슬픔’이라 불렸다. (…) 치수 사업은 요순 임금의 후예들에게 자랑스러운 전통이었다. 지난 2009년 양쯔 강 중류에 싼샤 댐이 준공됐고, 그에 앞서 담수를 시작했다. 이미 수많은 댐을 지었던 중국이고, 내로라하는 나라마다 댐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싼샤 댐이 세계적인 관심을 끈 것은 무엇보다 높이 185미터, 길이 약 2.3킬로미터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 때문이었다. 또한 댐으로 인해 생겨난 인공 호수는 상류로 660킬로미터를 뻗어나가며 그 수위가 해발 60미터에서 175미터로 높아졌다. 만수 때 물의 총량은 393억 톤으로, 일본 내 전체 담수의 양과 맞먹고 우리나라 전체 담수 규모의 두 배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나 싼샤 댐을 둘러싼 우려 또한 적지 않았다. 서울의 두 배에 가까운 면적의 땅을 덮은 인공호는 역사의 유물과 유적지를 손쓸 겨를도 없이 수장시켰고, 200만 명의 주민이 정든 고향을 떠나야 했다. 처리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상황에서 쓰레기가 담수와 함께 역류했고, 멸종 위기에 처했던 양쯔강철갑상어Acipenser dabryanus와 양쯔강돌고래Lipotes vexillifer는 야생에서 아예 자취를 감췄다. 일각에서는 최근 잇따르는 산사태와 지진이 싼샤 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_「경외의 물」

 

1921년 레닌은 소비에트연방 남부의 새 공화국에서 “무엇보다 관개농업이 이 지역에 활기를 주어 과거를 청산하고 사회주의 국가로 확실하게 변모하게 해줄 것”이라고 연설했다. (…) 1980년대에 이르자 아랄 해 인근의 85퍼센트가 목화 재배에 이용됐다. 거미줄 같은 수로들이 800만 헥타르의 땅에서 서로 연결되었고, 그 길이를 모두 합하면 지구와 달 사이 거리의 세 배에 달했다. 중앙아시아는 지구상에서 가장 넓은 관개농업 구역이 되었다. 28아랄 해가 본격적으로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 건 1960년대 카라쿰 운하가 건설되면서부터였다. 카라쿰을 통해 힌두쿠시 산맥에서 뽑아낸 아무다리야 강물 대부분이 서쪽으로 1300킬로미터 떨어진 사막에 자리한 투르크메니스탄까지 보내졌다. 세계에서 가장 긴 수로를 통해 사막으로 흘러간 강물은 아랄 해로 돌아오지 않았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소련의 공산주의도 붕괴됐지만 아랄 해는 다시 채워지지 않았다. 나일 강과 규모가 비슷하던 아무다리야 강은 지난 반세기 동안 겨우 무릎 깊이의 물줄기로 말라버렸다.
아랄 해 면적의 90퍼센트가 사막으로 변했고, 버려진 폐선들은 모래 속에 잠겼다. 그 위로 독한 염분과 화학물질을 머금은 소금 바람이 불었다. 아무다리야 강 하구에 자리한 무이나크29 사람들은 이제 물고기 대신 ‘배의 무덤’을 관광 상품으로 팔고 있다. 한때 아무다리야 강 최대의 항구도시였던 무이나크지만, 이제 바다는 이곳에서 2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다. _「역사를 증언하는 물」

 

여의도는 이제 양과 염소나 키우던 조선시대 방목장도, 일제가 일본과 만주를 잇는 비행기를 띄우던 활주로도 아니다. 그곳은 어느덧 이름도 다 헤아리기 어려운 금융기관들과 방송사, 유수한 대기업의 고층빌딩으로 빼곡히 채워진 노른자위 땅이 돼 있었다.
오늘의 한강은 분명 어제의 그것이 아니다. 무심한 세월이 강남과 강북을 잇는 20개도 넘는 다리 사이를 가로지르는 사이, 끊겼던 한강철교가 다시 이어졌고 제3한강교가 한남대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성수대교는 언제 무너졌냐는 듯이 번듯한 모습이다. 사람들은 다시 한강으로 몰려왔다.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차를 몰고 강바람을 맞으며 담배를 피우고, 혼자 쓴 소주를 삼키기도 한다. 캔 맥주를 하나씩 든 연인이 데이트를 하고, 잔디밭에선 소풍 나온 가족들이 웃고 있다. 자전거가 길을 가르며 지나가고, 음악을 들으며 조깅하는 사람들이 그 뒤를 따른다. 유람선은 푸른 강물 위에 하얀 구름처럼 떠서 한강 풍경을 완성한다.
행복은 부러움을 타고 공중파를 통해 빠르게 감염됐다. ‘KS 마크’가 찍힌 서울 사람들의 삶은 곧 전국의 강과 하천으로 복제되어갔다. 한강변의 풍경은 대구의 신천, 청주의 무심천 그리고 울산의 태화강으로 번졌고, 시민들은 괴물이 출연했던 한강은 잊은 듯 강물에 비친 ‘서울의 달’을 동경했다. 광주천과 원주천, 대전의 갑천까지 고향의 추억과 지역의 역사가 흐르던 강변은 판에 박힌 듯한 모습의 공원으로 진화했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추억과 역사를 잊은 것일까?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게걸스럽게 강의 이름과 그것에 담긴 기억을 집어삼켰다. _「한강에는 괴물이 산다」

지은이/옮긴이

지은이

신진철

만경강이 바다와 만나는 하구에서 태어났다. 시민단체에서 일할 때, 전주천 복원 사업에 참여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십수 년 동안 강과 함께했다. ‘시민행동21’과 ‘한국강살리기네트워크’ 창립을 주도했고, 그곳에서 실무 책임을 맡아 15년 넘게 일했다. 전국의 하천 관련 단체와 협력하며 교육 및 사례 발굴, 공존과 거버넌스를 통한 지속가능한 사회 구축에 관심을 두고 활동해왔다. 하천지킴이들과 함께 엮은 책으로 『이제 우리 강으로 가자』 『주민참여 하천살리기 한일 우수사례모음집』 『소유역 하천살리기운동 매뉴얼』 『전주천 10년의 기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