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아
2021.09.08
"식물세밀화에는 완벽한 완성이란 게 없습니다" - 『식물과 나』 독자 질문과 답변
이 글은 『식물과 나』 알라디너TV 사전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북토크에서 답변한 질문은 생략했습니다. 
북토크 보기: [저자만남] 이소영 x 이다혜 ‘식물과 나‘ 라이브 북토크 – YouTube

 

Q. 식물세밀화가라고 하면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모르는 분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직업을 소개하면서 생긴 에피소드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지금은 사정이 나아졌지만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제 직업 이야기를 하면 완벽히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때는 일부러 인터뷰를 거절하지 않고 해왔던 것 같아요. 비슷한 상황이 계속되면서, 누구든 제 작업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전달 방법이 없을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세밀화집, 허브」라는 영상물을 제작했어요. 이 영상을 만든 후로는 제 직업에 대해 물어보시는 분께 영상을 보라는 말로 짧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영상 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Ji2f6P3_-YI

 

Q. 식물 한 종을 그릴 때 조사 기간은 얼마나 걸렸나요?

식물마다 다르지만 짧게는 6개월 정도, 길게는 10년 동안 조사만 하는 식물도 있습니다. 『식물 산책』에 삽입된 진노랑상사화 그림을 예로 들면 2009년에 관찰을 시작해 2018년에야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이렇게 기록을 한 후에도 더 많은 개체를 관찰하고 기존 기록의 오류를 발견하게 되면 수정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좀더 정확한 관찰 결과로 수정되는 게 옳죠. 따라서 관찰과 연구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 식물세밀화에는 완벽한 완성이란 게 없습니다. 죽을 때까지 수정과 추가를 마다하지 않아야 하기에, 조사 기간은 무한하다고도 말할 수 있겠네요.

 

 

Q.『식물과 나』를 읽고 식물세밀화가가 되고 싶어진 독자입니다! 작가님처럼 식물세밀화가가 되려면 어떤 준비를 하고 무엇을 배워야 하나요?

식물세밀화가에게 가장 중요한 조건 두 가지는 식물에 대한 이해와 식물 형태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기술입니다. 식물을 둘러싼 학문 중 특히 식물형태학을 중심으로 공부(전공)하는 것을 추천하며, 이와 별개로 그림 기술을 익히는 일도 병행되어야 합니다. 당장 매일 실천할 수 있는 일은 주변 식물들을 관찰하며 ‘식물 관찰 일기’를 기록하는 것입니다. 식물을 오랫동안 관찰하는 습관과 그림 기술을 두루 익힐 수 있는 방법이죠. 이 기록은 여러분의 포트폴리오이자 연구 결과로 활용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Q. 작가님이 집에서 키우는 반려식물은 얼마나 되는지, 어떤 종류인지 궁금합니다. 키우던 식물이 나의 잘못으로 인해 죽었을 때 느끼는 죄책감 같은 것도요. 시중의 정원이나 꽃집을 보면 식물도 유행과 트렌드를 정말 많이 타던데요, 식물과 세대 감수성에 대한 생각도 궁금합니다.

집과 작업실에 있는 식물 화분은 모두 30본 정도 됩니다. 대부분은 그림을 그려야 해서 기관으로부터 제공받아 재배하게 된 식물인데, 몇몇은 친구들이 재배하기 어렵다며 준 화분도 있습니다.

누구든 식물을 재배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식물이 죽는 일이 생길 수 있지요. 중요한 것은 죄책감에 빠져 있기보다 다시는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가지 방법을 시도해볼 수 있겠죠. 하나는 같은 종의 식물을 재배하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식물이 죽은 이유가 무엇인지 되돌아보고 탐구하고 공부해 또다시 재배하는 것입니다. 식물이 나로 인해 죽었을 때의 죄책감은 그 현상에 대한 반성과 탐구, 그리고 공부한 대로 실행하는 행동력으로 치환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질문에 적어주신 것처럼 식물 유행의 흐름은 전보다 더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데는 식물문화를 즐기던 연령대가 중장년층에 한정되어 있던 예전과 달리 애호층이 청년 세대까지 확대되어 규모가 커진 상황이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생물과 공존하는 문화에 유행이 있다는 것, 그 유행이 빠르게 변화한다는 것은 우리가 생물을 생물 그 자체로만 보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일종의 소모품으로 여긴 것이죠. 동물문화의 품종 유행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겠습니다.

또 이런 현상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한 가지는 말씀해주신 대로 세대 감수성 차이입니다. 기존에 식물문화를 주로 즐기던 중장년층은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숲의 생태를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생하는 식물의 모습을 접할 일이 점점 줄었죠. 학교 화단에 심긴 회양목이 산에서는 3미터까지 자라는 나무라는 사실, 내가 화분에 재배하는 삼나무 역시 숲에서는 10미터 넘게 자랄 수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사람과 화분에 심긴 모습이 그 식물의 전부인 듯 여겨온 사람이 식물을 대하는 태도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 간극은 각자가 재배하는 식물에 대한 책임감의 무게를 결정짓는 요소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Q.『식물과 나』에 작가님의 이야기가 많이 담긴 만큼, 작가님의 MBTI 유형과 스스로 닮았다고 생각하는 식물이 궁금합니다. 식물을 뽑아주신 이유도 알려주세요!

질문을 보고 MBTI 테스트를 해보았는데 INTJ로 나오네요. 제가 닮았다고 생각하는 식물은…… 없습니다. 저는 그저 인간이란 동물일 뿐이기에 식물과 닮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책에는 친구들로부터 종종 식물과 닮아가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는다고 썼는데요. 이것도 친구들의 막연한 생각이란 걸 잘 알고 있어요. 여기서 더 나아가 저를 특정 식물에 비유하는 건 그 식물에게 미안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Q. 다음 책은 어떤 내용으로 준비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식물 산책』 『식물의 책』 『식물과 나』―이 세 권을 하나의 시리즈로 생각하고 작업해왔어요. 이렇게 한 챕터를 완성했으니 다음 책은 조금 다른 형태로 제작하고자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물론 구체적으로 정한 것은 아니고요. 앞선 세 권의 책이 식물에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기를 권하는 책이라면, 다음은 식물에 관한 좀더 깊숙하고 세부적인 주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식물의 한 기관이나 특정 식물군에 관한 이야기가 될 수 있겠죠. 물론 전달 방법은 기본적으로 식물세밀화가 되겠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