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민
2019.03.18
나는 왜 ‘시리즈’를 내는가
단행본 출판사들은 비슷한 주제나 성격의 책을 연차적으로 묶어 ‘시리즈’를 펴내곤 한다. 시리즈엔 그 출판사가 좋아하고 지향하는 바가 담기게 마련이다. 어떤 종류의 책들을 몹시도 내고 싶은데 한 권으로는 그 욕망을 다 담을 수 없을 때 시리즈라는 ‘주머니’를 만들게 된다. 나도 시리즈를 좋아하는 편이라서 지난 10여년을 돌아보면 꽤 많은 시리즈를 꾸려왔다.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지금까지 13권을 낸 ‘현대의 고전’ 시리즈는 ‘고전’과 ‘현대’의 언밸런스를 의도했다. 고전이라 하면 적어도 수백년 동안 살아남은 책이라는 게 상식이지만, 우리는 20세기에 나온 책들 가운데 고전의 반열에 들어갈 만한 것을 골라보고 싶었다. 내 눈에 콩떡이라고 내가 고전이라 부르고 싶은 책들을 낸다는 의미다. 16권을 낸 ‘걸작논픽션’ 시리즈에서는 치열한 취재와 성찰, 글쓰기를 통해 웅혼한 리얼리즘을 구현한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시리즈에는 나름의 문제의식이 있다. ‘현대의 고전’은 고전을 과거에 묶어두는 관행이 좋은 책을 평가하고 수용하는 데 있어 소극적이게 한다는 점이 불만스러워 시작했다. ‘걸작논픽션’은 한국의 논픽션 글쓰기가 다른 나라에 비해 허약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일본만 해도 ‘고단샤 논픽션상’ 등 권위 있는 상이 몇 가지나 된다. 논픽션은 출판의 여러 가지 덕목이 발휘되는 분야다. ‘치열한 사실 추구’와 ‘폭넓은 시야’뿐만 아니라 탁월한 글쓰기도 갖춰야 한다. 이런 논픽션 저자들이 많아질 때 독서문화는 더 깊고 풍부해질 것이다.
‘실용의 재발견’ 시리즈는 이런 문제의식이 좀 ‘과잉’된 끝에 만들어졌다. 한때 실용분야 책들은 도서정가제 적용을 받지 않아 50~60%씩 할인해서 덤핑으로 판매되곤 했다. 보기에 너무 좋지 않았다. 실용서는 무조건 가볍고 쉬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형성돼 있는 듯 보였다. 매우 반감이 들었다. 사실 실용이란 말은 실학의 슬로건이었다. 실사구시와 이용후생을 두 글자로 줄인 게 실용 아니겠는가. 화초 기르기든, 빵 만들기든, 차 마시기든, 집짓기든 어떤 물건이나 행위가 실생활에서 근사한 쓰임새를 가지려면 얼마나 많은 고민이 필요하겠는가. 좌우로, 앞뒤로, 동서남북으로 따지고 챙겨 보면서 <논어>의 말마따나 정으로 쪼고 사포로 문질러서 반질반질해진 상태에서 빛이 나는 게 실용의 지식이다. 수렁에 빠진 실용을 건져내고 싶었다. 그래서 ‘재발견’이란 이름을 붙여 몇 권의 책을 냈는데 부끄럽게도 그리 본격적으로 하진 못했다. 게다가 큰 출판사들에서 이미 좋은 실용서를 많이 만들어내고 있더라. 다만 시리즈에서 1만부 넘게 팔린 책도 한 권 나왔고 올해도 800쪽 정도 되는 ‘발효’에 대한 책이 나온다는 점으로 변명을 해둔다.
이렇게 시리즈를 새삼 복기해보는 이유는 최근에 끝난 시리즈가 있어서이기도 하고 그 김에 다시 초심을 다잡아보자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2010년부터 한국국학진흥원과 함께 펴낸 ‘오래된 질문을 다시 던지다’라는 시리즈가 지난해 말에 마감되었다. 9년 동안 총 20권으로 완간했으니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힘들기도 하고 좋기도 했다. 학술적 성격이 강하며 ‘인(仁)’ ‘이(理)’ ‘예(禮)’ ‘기(氣)’ 등 총 20가지 키워드를 각각 한 권으로 만들어 철학사를 훑었으니 그 의미는 평가받을 만하다. 역시 2009년부터 내기 시작해 14권을 냈고 곧 20권으로 완간될 ‘규장각 교양총서’도 있다. 이 시리즈는 ‘양반’ ‘여성’ ‘여행’ ‘편지’ 등 테마별로 조선사를 종횡무진한 것이다. 시리즈가 시작될 무렵만 해도 ‘조선시대’는 출판계의 나름 ‘핫템’이어서 책도 잘 팔렸다.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다.
이 밖에도 시리즈가 더 있다. 꾸준히 내고 있는 ‘동양고전’ 시리즈, 총 36권으로 기획된 이중톈 중국사 시리즈, 중국 현대소설을 펴내는 ‘묘보설림’ 시리즈, 학계의 ‘뜨거운 감자’ 같은 논문을 발표 즉시 얇은 문고판 책으로 연결시킨다는 ‘아케이드 프로젝트’ 시리즈, 우리 사회를 따끔하게 질타하는 ‘비평정신’ 시리즈 등. 물론 이 중에는 중간에 동력이 다해 단명하거나 중단된 상태에 처한 것들도 있다.
출판사에 시리즈는 양날의 칼이다. 쭉쭉 뻗어나갈 때의 시리즈는 장군 같지만, 판매와 호응이 줄어들 때엔 발목 잡는 귀신이다. 이럴 땐 집을 부수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하지만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그런 짓을 할 순 없지 않은가. 그럴 땐 소수 독자들의 위로를 사탕 삼아 건사해가는 것이다. 그렇게 건사해 가다보면 완간의 빛을 보게 되고, 서가 한 칸을 넘기게 된다. 그렇게 되면 스스로 감상할 만한 ‘족적’이 생겨나고 버틸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는 안도감도 생겨나는 게 시리즈의 매력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