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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에 질문하는 뼈 한 조각 인류의 시초가 남긴 흔적을 뒤쫓는 고인류학
  • 지은이 | 마들렌 뵈메 뤼디거 브라운 플로리안 브라이어
  • 옮긴이 | 나유신
  • 발행일 | 2021년 08월 27일
  • 쪽   수 | 368p
  • 책   값 | 22,000 원
  • 판   형 | 140*200 | 양장
  • ISBN  | 978-89-6735-926-3 03400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책소개

선행인류의 하악뼈 하나가 고고 역사의 통설을 뒤집다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을 반박한 바로 그 연구!

발굴 어드벤처와 새로운 학술 가설

 

『역사에 질문하는 뼈 한 조각』은 2019년 독일에서 출간돼 화제를 모은 책으로 고인류학의 최전선에 있는 이들이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을 뒤집는 가설을 내놓으며, 우리가 늘 궁금해하는 선행인류에 대한 새로운 탐구를 보여준다. 대표 저자인 마들렌 뵈메 교수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인정받는 고기후학자이자 고환경학자, 고인류학자, 고생물학자다. 이 책은 새롭게 발견된 유물들과 혁신적인 연구 방법으로 인류 진화사의 패러다임에 변화를 일으킬 만한 설득력 있는 가설들을 제시한다.

때는 2016년 5월 17일, 햇빛 좋은 봄날이었다. 뵈메 팀은 독일 알고이 지방에서 곡괭이로 땅을 파고 있었다. 이때 팀원들의 숨을 멎게 할 무언가가 발굴된다. 밝은 회색 점토에서 고동색 뼛조각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고 거기에 이빨 두 개가 솟아 있었던 것이다. 이빨의 크기와 형태로 보건대 의심의 여지 없이 대형 유인원의 하악골이었다. 이 화석은 매우 특별했는데, 그 이유는 이 종이 침팬지와 인간의 공통 조상일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뵈메 팀은 지금껏 발견된 적 없는, 직립보행하는 대형 유인원 종을 발굴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들은 여기에 ‘우도Udo’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분과학문을 넘나들며 2000만 년이 넘는 인간의 진화 과정을 아우르는 가운데 가장 오래된 선행인간은 무엇인가에 대한 단서 추적에 나선다. 사실 뵈메의 전공인 고인류학은 반성적인 학자들부터 사기꾼에 가까운 이들이 뒤섞여 있는 복잡한 분야다. 우연히 발견한 유물들은 개인의 허영심을 자극하기도 하고, 오랜 의심과 회의를 버텨내고 빛을 발하기도 한다. 그런 탓에 연구는 일직선으로 나아가지 않고 후대의 학자들이 앞선 이론을 뒤엎고, 그것이 또다시 뒤집히는 등 지그재그를 그리며 진보한다. 이 책에서 독자는 저자들의 현장 연구를 좇아 새로운 유물과 이론들을 접하는 가운데 인간 진화의 역사가 새롭게 쓰이는 전율의 순간들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악골 추적기: 그리스와 불가리아 유적의 퍼즐

 

2016년 독일 알고이의 놀라운 하악골(우도Udo)이 발견되기까지, 뵈메 팀에게는 10여 년의 지속적인 추적의 역사가 있었다. 그 흐름은 다음과 같다.

2009년 니콜라이 스파소프 소피아 자연사박물관 관장은 뵈메에게 전화를 걸어 불가리아에서 지난 10년간 쫓던 것을 드디어 발견했다고 전해왔다. 흥분에 찬 들뜬 목소리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니콜라이가 발굴한 상악골의 어금니는 전형적인 호미니드의 특징을 보일 뿐 아니라, 700만 년보다 더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놀랄 만한 발견이었다. 그 시기 유럽에서는 대형 유인원이 이미 오래전에 멸종했다는 게 통상적인 학설이었던지라 니콜라이의 발견은 기존 학설을 뒤엎는 것이었다. 뵈메는 곧 이 연구팀에 합류하게 된다. 더욱이 이 상악골은 멸종된 포유류의 잔해가 자주 나오던 불가리아 서남부가 아닌, 불가리아 중부 치르판 지방의 아즈마카 근처에서 발굴되었다.

이윽고 뵈메의 조교 네 명과 프랑스의 소규모 팀, 불가리아 연구자들이 하나가 되어 아즈마카의 모래구덩이를 더 깊이 파기 시작했다. 지질과 유적지의 나이를 알아내는 것이 목표였다. 이들은 지질 지도를 만들고 퇴적물과 그것들의 지층 간 연관관계를 조사하며 지자기장의 변화에 대한 데이터를 얻기 위해 지표면에서 구멍을 뚫어 암석의 심心을 시추했다. 이 작업은 상악골 어금니의 연대를 계산하는 데 도움이 될 터였다. 그 과정에서 다른 화석들도 발견됐는데 코끼리 한 마리의 해골이 거의 완전한 형태로 보존된 것도 있었다. 이는 최초의 코끼릿과의 하나인 아난쿠스속에 속하는 대표 개체로 밝혀졌다. 동일한 지질학적 지층에서 호미니드의 어금니와 아난쿠스 해골이 연이어 발굴된 것인데, 이런 조합은 그 전까지는 아프리카 유적지에서만 나왔기에 연구자들의 흥분도는 더욱 올라갔다. 그들은 이 유적지를 약 650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했다. 아즈마카에서 나온 다른 포유류 종들도 불가리아 유적지가 특별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뵈메와 니콜라이는 불가리아에서 발견된 것과 ‘그리스의 하악골’은 동일한 시기의 것일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그리스의 하악골이란 1944년 아테네 피르고스에서 독일의 지질학자 브루노 폰 프라이베르크가 발굴한 대형 유인원의 하악골(프라이베르크의 그래코피테쿠스, 일명 ‘엘 그래코’)을 일컫는다. 이것이 정말 700만 년 전의 유럽 대형 유인원의 어금니인 것일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이는 초기 인류 진화 역사에 완전히 새로운 장을 열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의 하악골을 재감정하는 것과 아즈마카, 피르고스, 피케르미 유적지의 연대를 정확하게 추정하는 일이었다. 뵈메 팀은 곧 이 하악골의 소재를 찾아 나섰고, 이는 저자들을 19세기 고생물학의 초창기로, 유럽 정치의 뿌리로,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아테네에서 발생했던 사건들 속으로, 그리고 거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금고로 이끌게 된다.

 

아프리카 선행인류 설이 뒤집히다

 

2년간의 추적 끝에 2014년에야 뵈메는 드디어 엘 그래코(그래코피테쿠스)의 화석을 찾았다. 이전에 현역 고생물학자 누구도 그래코피테쿠스나 그것이 발견된 장소인 피르고스 유적지에 대해 들어본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끈질기게 매달린 결과 제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를 피해 어느 금고에 보관되어 있었던 이 유물들이 발견된다.

사실 뵈메와 그의 동료 니콜라이, 비건, 푸스는 연구를 통해 그래코피테쿠스가 대형 유인원이 아니라 가장 오래된 잠재적 선행인간이라는 가설을 세운 바 있다. 그렇게 본 이유는 그래코피테쿠스의 치아 형태가 선행인간의 전형적인 것과 닮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직립보행과 더불어 학계가 대체로 의견 일치를 보이는 인간 계보(호미니니)만이 갖고 있는 몇 안 되는 특징 중 하나다.

이 발표는 큰 반향을 일으키며 양분된 반응을 낳았다. 엘 그래코의 발굴 장소가 그리스와 불가리아라는 것은 인간 진화의 핵심적 발달이 이루어진 곳이 아프리카뿐이라는 일반적인 학설과 정면으로 배치되었기 때문이다.

뵈메 팀이 목격한 학계의 폐쇄적인 반응은 놀라울 정도였다. 이에 대해 뵈메는 “한 종의 지리적 분포는 계통발생학적 특징이 아니며 따라서 ‘엘 그래코’가 선행인간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와는 상관없다. 계통의 기원과 관계해서 중요한 것은 오직 형태적 특징 또는 유전자에 어떤 암호가 들어 있는가 하는 것뿐이다”라며 맞선다. 물론 수백만 년 된 화석에서 유전적 증거를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그래코피테쿠스의 화석화된 발자국은 발견되지 않았기에 이것이 실제로 가장 오래된 선행인간인가 하는 물음은 더 나은 화석이 발견되어야만 답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저자들의 이러한 학설을 옹호할 만한 다른 발굴들은 계속 이어졌다. 그래코피테쿠스에 대한 논문이 발표되고 두 달쯤 지난 때에 트라칠로스 발자국에 대한 연구 결과가 발표된다. 이 발자국은 인류 최초의 조상이 아프리카에서만 살았다는 기존 견해를 뒤집는 것이기에 뵈메 팀에게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트라칠로스 화석은 직립보행을 입증해주는, 다른 화석들보다 훨씬 더 오래된 직접적인 증거물로, 현생인류의 발과 가까운 해부학적 구조를 보였다. 즉 이는 아프리카가 아닌 유럽에서 나온 인간과 비슷한 존재의 것이었다.

현재까지 고인류학 최대의 아이콘은 320만 년 된 선행인간 ‘루시’의 유골이다. 조핸슨이 이끄는 팀에 의해 에티오피아 아파르 지방에서 루시의 뼈들이 발굴됐고, 이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로 명명되었다. 이후 새로운 발굴물이 나올 때마다 인간이 기원한 곳은 아프리카뿐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었고, 1984년 케냐에서 발견된 호모 에렉투스의 화석 또한 이런 학설에 무게를 실어줬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타웅, 탄자니아의 올두바이 협곡, 에티오피아의 아파르 지방, 케냐의 투르카나 호수는 오늘날 인류 진화 발달사에서 가장 잘 알려진 지역들이다. 이러한 발견들 이후로 인간과 그의 선조들이 아프리카에서 진화했고 호모 에렉투스에 이르러 인간이 이 대륙을 벗어나 아시아로 진출했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졌다.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마침내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의 가장 오래된 화석들이 발견되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고인류학자가 인식을 같이한다.

하지만 저자들은 더 정확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반박한다. 인류 진화에 관한 학문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 더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 많은 학설이 시험대에 오르고 있는 데다 고인류학자들이 수십 년간 제 집처럼 느꼈던 학문 체계들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유전적 연구와 분자생물학 연구 결과는 인간 계보가 침팬지 계보로부터 분리된 시점을 약 700만 년 전에서 1300만 년 전으로 본다. 이에 따르면 우리 인간의 가장 오래된 조상의 화석 또한 이 시간대에서 나와야 한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화석들은 그 걸출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모두 그보다 수백만 년 더 후대에 속해 엄청난 빈틈을 보이고 있다(이에 반해 유라시아에서는 이 시기의 화석이 다수 발견됐다). 뵈메의 동료 연구자 데이비드 비건은 1992년에 이미 그때까지 알려져 있던 대형 유인원과 선행인간들을 분석한 결과, 모든 아프리카 대형 유인원과 인간의 기저에 유럽 대형 유인원 화석이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지만, 이것은 현재까지도 그저 ‘개인 의견’으로 치부되고 있다.

 

힘을 얻는 사바나 가설: 환경과 기후변화가 추동하는 인간의 진화

 

저자들의 연구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요소는 진화의 추동력으로 환경의 변화와 기후변화를 꼽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사바나 가설은 설득력을 얻는다. 저자들은 아프리카 선행인류 화석의 나이가 오래될수록, 아프리카의 기후 역사가 더 정확히 재구성될수록 명확해진 사실은 직립보행하는 선행인류로 향한 발걸음이 내딛어지고 나서야 아프리카에서 사바나 기후가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일부 고인류학자는 여전히 사바나 가설이 아닌, 대형 유인원의 적은 인구가 아프리카 열대 주변부 지역에서 직립보행을 발달시켰을 것이라거나 직립보행은 나뭇가지 위에서 걸으면서 생겨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새로운 학설은 아프리카가 인류의 요람이라는 가정과 명백히 모순되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인간의 진화에 있어 어떤 생각을 선호하든 간에, 분명한 것은 호모속의 진화가 이 행성에서 약 270만 년 전에 시작된 빙하기의 극적인 기후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 점이라고 말한다. 거의 정확히 빙하기 시작 시기에 인류 진화에서 획기적인 발전이 일어났는데 호모속의 가장 오래된 화석들이 이 시기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새로운 학설을 가로막는 학계

 

계속되는 논쟁 속에서 프랑스 학계의 거장 미셸 브뤼네는 논쟁의 한가운데 서 있는 연구 책임자다. 브뤼네는 인류의 조상을 찾고자 차드 북부에 있는 드주라브 사막에서 30년 동안 조사를 벌여온 고생물학자다. 이 불모지에서 프랑스 학자와 차드 연구원들이 찾던 것은 선행인류의 화석이었다. 그러던 중 1995년에 350만 년 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종의 하악골이 발견되었다. 이후 더 주목을 끌 만한 연구가 뒤따라야 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연구진의 지구력이 점점 바닥을 드러내던 차에 2001년 7월 19일 아호운타 짐도우말바예라는 연구원이 어떤 물체를 발견한다.

1년 후 세계 언론은 이 발견을 대서특필했고, 브뤼네와 연구단원들은 발굴한 두개골을 푸아티에대학으로 가져와 표본으로 만들어 조사하고 뢴트겐 검사를 했다. 그 결과 “인간의 가장 오래된 원시 조상은 북아프리카에서 나왔고 700만~600만 년 전에 살았다”고 발표되었다. 침팬지와의 분지 시점에 가까이 있던 것으로 추정된 발굴 화석에는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토우마이’라는 별칭도 뒤따랐다.

하지만 이 학설은 곧 다른 학자들의 반론에 직면한다. 두개골 특징의 신빙성이 의문스럽다는 주장이 대표적이었다. 뵈메가 속한 ‘엘 그래코’ 팀도 사헬란트로푸스와 그보다 조금 더 오래된 그래코피테쿠스를 비교했다. 그 결과 엘 그래코 팀은 ‘토우마이’의 하악골 치아들의 치근이 ‘엘 그래코’보다 훨씬 더 원시적임을 밝혀냈다. 즉 송곳니 뿌리가 더 길뿐더러 두 번째 앞어금니 뿌리는 그래코피테쿠스처럼 합체되어 있지 않고 완전히 떨어져 있었다.

매우 설득력 있는 반박들이 제기되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고생물학자는 여전히 사헬란트로푸스가 이족 보행을 했고 따라서 선행인류일 거라고 여긴다. 이 수수께끼가 풀리려면 더 많은 사실 자료가 제시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브뤼네 팀의 출판물들은 두개골 한 점, 하악골 파편 세 점, 낱개로 된 치아 여러 점만 발표 주제로 삼았을 뿐이다.

저자들은 브뤼네 팀을 강하게 비판한다. “사헬란트로푸스의 넓적다리뼈를 둘러싸고 일어난 일은 학계에는 큰 손해다. 데이터와 진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필수적인 절차를 막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프랑스 고인류학의 신용을 실추시켰다.”

 

시기를 더 거슬러 올라가는 증거가 나오기까지

 

고유전학의 도래로 학계에서는 변화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심지어 멸종된 종의 화석에서 게놈을 추출해 분석하는 것까지 가능해져, 동일 종 내에서 돌연변이종의 비율도 계산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전문가들은 현재 살아 있는 한 종의 대표 개체들과 그 조상 사이의 변화된 게놈의 수를 규정했다. 고유전학이 수백만 년의 과거를 읽어낼 순 없다 하더라도 수십만 년은 가능한데, 이 기간은 게놈에서 많은 돌연변이가 일어나 집적될 수 있는 시간이다.

이처럼 훨씬 더 정확한 방법에 기초해 ‘돌연변이 발생 확률은 보통 일정하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큰 불규칙성을 보인다’는 것이 이제 일반적인 인식으로 자리 잡았다. 더 중요한 사실은 돌연변이가 부모의 나이, 정자 형성, 신진대사율, 신체 크기, 인구 집단의 크기 등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종마다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최신 시도들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부모와 자녀의 유전적 차이에서 바로 돌연변이 비율을 알아내고자 한다. 이 과정은 화석 없이도 가능하다. 이 연구 결과가 인간에 대해 보여주는 사실은 인간의 게놈이 지금까지 가정되었던 것보다 더 천천히 변화했다는 점이다. 결국 연구자들은 분자시계와 고유전학의 조합 속에서 인간 계통과 침팬지 계통의 분지는 원래 계산되었던 700만 년 전보다 더 전에, 즉 1300만 년 전에 일어났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밝혀냈다.

여기서 한 가지 방향성이 도출된다. 즉 초기 진화 역사를 더 잘 알기 위해서는 훨씬 더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기조는 최소한 600만 년 전 두 발로 걷는 존재가 어떻게 해서 그처럼 이른 시간에 크레타섬 해변을 거닐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

종합해볼 때 현재의 연구 결과는 아프리카 사바나의 동물 세계가 유럽의 피케르미 동물상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사바나 지형의 기원은 실제로 유럽, 즉 ‘엘 그래코’ 당시의 생활공간이다. 우리가 전형적인 아프리카 동물이라고 생각하는 현재 아프리카 사바나에 살고 있는 거의 모든 대표적인 동물은 그 기원이 유라시아에 있다. 사자, 하이에나, 얼룩말, 코뿔소, 기린, 가젤, 영양. 아프리카 사바나의 동물상이 500만 년 전 유라시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라면 선행인류라고 해서 그 ‘규칙’에서 예외로 여길 이유가 있을까. 아프리카 유래설 I 이론과 정반대로 초기의 유인원 또한 양 대륙을 왕래했다는 것이 오히려 더 설득력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아시아에서 나온 놀라운 발견 자료들은 새로운 생활공간으로의 이동과 정복이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이전부터 우리 인간의 진화사의 일부였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목차

서문

 

1엘 그래코그리고 침팬지와 인간의 분리

1장 인간의 기원에 관한 물음: 단서 추적의 시작

2장 그리스에서의 모험: 피케르미에서 발견된 최초의 화석 원숭이

3장 여왕의 정원에서: 브루노 폰 프라이베르크의 발견

4장 잊힌 보물을 찾아서: 뉘른베르크 나치 전당대회 광장의 카타콤베로

5장 자력계와 마이크로 CT: 첨단 테크닉 연구실의 원시 시대 뼈

 

2부 원숭이들의 진짜 행성

6장 좌초와 행운의 순간들: 우리 최초의 조상을 찾는 과정에 대한 짧은 역사

7장 아프리카의 시초: 대형 유인원 진화의 첫 번째 황금시대

8장 유럽의 발달: 떡갈나무 숲의 대형 유인원

9장 알고이의 원숭이: ‘우도’와 침팬지의 조상

 

3부 인류의 요람: 아프리카 아니면 유럽?

10장 최초의 원조 조상: 아직 원숭이 아니면 이미 선행인간?

11장 크레타의 화석 발자국: 태곳적 두 발로 걷던 존재의 수수께끼 흔적들

12장 모래 속의 두개골과 ‘비밀의’ 넓적다리: 의심스러운 사헬란트로푸스 사례

13장 선행인류에서 원인으로: 흔들리는 아프리카 유래설

 

4부 진화의 동력, 기후변화

14장 뼈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진화를 이해하기 위한 열쇠, 환경의 재구성

15장 시간의 먼지 속에 가라앉다: ‘엘 그래코’ 시기의 지형과 식생

16장 커다란 장벽: 거대한 사막이 넘을 수 없는 장애가 되다

17장 염호가 분포되어 있었던 회백색의 사막: 말라버린 지중해

 

5부 인간을 인간 되게 하는 것

18장 자유로운 손: 창의력을 위해 넓혀진 가능성

19장 돌아다니고 싶은 욕구: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

20장 털 없는 장거리 달리기 선수: 달리는 인간

21장 불, 정신, 작은 치아: 영양 섭취가 뇌 발달에 끼친 영향

22장 사람들을 연결시켜주는 목소리: 경계 신호에서 문화로

 

6부 살아남은 하나

23장 혼란스러운 잡다함: 계통수의 문제

24장 수수께끼 유령: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견된 사람

25장 그들 중 한 명만 남았다: 이성적인 능력을 가진 인간

미리보기

우리 최초의 조상에 관한 물음은 아마도 인류 자신만큼이나 오래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 최초의 조상은 누구인가? 우리는 도대체 왜 진화했는가? 무엇이 우리를 현재의 우리와 같은 존재로 만들었고 만들고 있는가?

인간은 오랜 시간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주로 종교와 철학 속에서 찾아 헤맸다. 자연과학이 생기면서 서서히 이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다른 방식의 사고, 즉 자연사적 유물, 철저한 관찰, 폭넓은 측정 자료, 날로 섬세해져가는 분석 기술에 기초한 사고가 일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선사시대 인간과 그들의 조상들에 관한 비교적 신생 학문인 고인류학은 목표 지향적인 자기 반성적 연구일 뿐 아니라 우연히 발견한 유물들, 개인의 허영심, 빛을 발하는 인물들, 뻔뻔한 사기꾼의 학문이기도 하다. 고인류학자들은 고생물학자나 고고학자들처럼 손에 삽을 들고 사는 사람들이다. 밖에서 보면 종종 이들에겐 보물 또는 행운을 찾는 사람의 아우라가 느껴진다. 유물들 중에는 그것들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된 정황을 생각할 때 이따금 미소를 짓게 만드는 것이 있다. 또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돌이켜 생각할 때면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게 되는 에피소드들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면 우리 자신의 진화 역사에 관한 훨씬 더 구체적인 그림이 빚어져 나왔다._55~56쪽

 

많은 화석이 아프리카와 유라시아의 자연사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화석들에는 두 대륙이 서로 천천히 가까워지고 있는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아프리카 대륙판이 1년에 1밀리미터의 속도로 현재도 여전히 북쪽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_83쪽

 

사바나 가설이 설득력 있는 또 다른 이유는 환경과 기후의 변화가 진화의 추동력으로 주목된다는 점 때문이다. 실제로 아프리카 선행인류 화석의 나이가 더 오래될수록 그리고 아프리카의 기후 역사가 더 정확히 재구성될수록 더욱 명확해진 사실은 직립보행하는 선행인류로 향한 발걸음이 내딛어지고 나서야 아프리카에서 사바나 기후가 광범위한 지역에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프리카를 인류의 요람으로 고수하기 위해 몇몇 영향력 있는 고인류학자는 사바나 가설을 포기하고 처음에 대형 유인원의 작은 인구가 아프리카 열대의 주변부 지역에서 직립보행을 발달시켰을 것이라거나 직립보행은 나뭇가지 위에서 걸으면서 생겨난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사바나 가설은 맞지만 우리 최초의 조상의 고향을 동아프리카로 위치지우는 것은 틀리다는 생각이 이들에게는 불가능해 보였다._169~170쪽

 

우산 원인의 치아는 실제로 비교적 작은 크기였다. 이 치아들은 키가 고작 1미터인 알고이의 ‘우도’의 크기였고 치근의 형태는 심지어 발칸의 ‘엘 그래코’보다 약간 더 원시적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얼마 전에 발견된 필리핀의 호모 루소넨시스도 이와 비슷하게 원시적 치근에 작은 크기의 치아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이러한 치아의 특징은 1995년에 이미 알려졌던 바고 이 특징들은 선행인류와 가장 오래된 원인으로 용인 가능한 변수 내에 있었다. 또 그 시기에 중국에서는 발굴 작업을 통해 우산 원인의 존재를 뒷받침해주는 ‘물샐틈없이’ 확실한 많은 증거물이 또 발견되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러한 극적인 철회 사건이 있어야 한단 말인가? 아프리카 유래설은 위기에 처해서는 안 된단 말인가?_179쪽

지은이/옮긴이

지은이_마들렌 뵈메Madelaine Böhme(1967~)

지구과학자이자 고생물학자. 불가리아 플로브디프에서 태어나 독일 드레스덴에서 성장했다. 프라이베르크 공대와 라이프치히대학에서 수학한 뒤 라이프치히대학 지질학고생물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뮌헨대학에서 교수 자격을 취득했으며, 베트남, 라오스, 불가리아, 알고이 지방 등에서 발굴 조사를 진행해왔다. 튀빙겐대학 대륙 고기후학과 교수 및 젱켄베르크 인간 진화와 고환경 센터(HEP 튀빙겐) 초대 센터장으로 재직 중이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인정받는 고기후학자 및 고환경학자 중 한 명으로, 인간 진화를 기후와 환경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관찰하고 있다. 뵈메가 이끄는 연구팀은 알고이 지방에서 지금껏 발견된 적 없는 직립보행의 특징을 가진 대형 유인원 종을 발굴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이 화석이 특별한 이유는 여러 특징에서 침팬지와 인간의 공통 조상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연구 결과는 인간의 진화가 아프리카에서만 진행되었다는 가정에 상당한 균열을 일으킨다. 뵈메는 기존 퍼즐에 완전히 새로운 조각을 더함으로써 인류 진화의 최신 버전을 구성해낸다. 이는 우리 최초의 조상들이 살았던 경이로운 세계에 생명감을 불어넣고 있다.

 

뤼디거 브라운Rüdiger Braun

물리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자유 학술전문 기자로 『슈테른』과 『게오』 등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디 보헤』 부서장을 역임했으며, 『막스 플랑크 연구』의 편집장을 지냈다.

 

플로리안 브라이어Florian Breier

지리학, 독문학, 정치학을 전공했다. 학술 관련 글을 쓰고 있으며, 독일 공영방송 제트데에프ZDF, 다큐멘터리 방송 ‘Terra X’, 아르테Arte, 베데에르WDR, 에스베에르SWR 등의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옮긴이_나유신

이화여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미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베를린 자유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현재 베를린 GPB 칼리지에서 한국어 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키치의 비진지함』 『처음 시작하는 한국어』가 있고, 옮긴 책으로 『인류는 어떻게 역사가 되었나』 『놀이하는 인간』(공역)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