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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마 전차 경기장에서의 하루 로마의 일상을 지배한 질주의 문화
  • 지은이 | 배은숙
  • 옮긴이 |
  • 발행일 | 2021년 07월 30일
  • 쪽   수 | 320p
  • 책   값 | 18,000 원
  • 판   형 | 148*210 | 양장
  • ISBN  | 978-89-6735-922-5 03920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책소개

로마인에게는 오직 전차 경주만이 필요했다!

영화 벤허의 명장면을 철저히 고증된 역사 연구로 만나보다

 

철저한 문헌 고증에 의해

고대 로마의 전차 경주와 시대상을 복원

 

국내 로마사 전문가인 배은숙 계명대 교수가 신간 『로마 전차 경기장에서의 하루』를 펴냈다. 로마의 병사와 군대 조직을 다룬 『강대국의 비밀』(2008), 검투사들의 모든 것을 담은 『로마 검투사의 일생』(2014)에 이은 책으로 로마는 물론 그 속주에까지 널리 퍼져 로마인의 일상을 지배한 전차 경주를 본격적으로 되살렸다. 배은숙 교수는 이 책에서 전차 경주가 무엇인지부터, 그 역사와 유래, 경주가 이뤄진 경기장의 모습, 경기를 주최한 사람, 준비과정과 경기 장면, 관중과 관련한 다양한 사건사고 등 세세한 사실 하나하나를 A부터 Z까지 모두 되살려 이 책 한권으로 해당 주제를 완벽하게 마스터하는 것을 추구했다. 우리가 전차 경주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귀족부터 평민까지 로마인들이라면 모두가 열광한 스포츠이자 즐길거리였고, 왕과 장군들은 자신들의 권력과 위세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경기장을 짓고 경쟁적으로 경기를 주최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오늘날 유럽 프로축구 구단의 원형 쯤으로 생각되는 ‘팍티오factio’라는 독특한 집단이 형성되어 전차 경주의 모든 것을 주관하고, 기수와 말을 전문적으로 키워내고 팬덤을 조직하고 때로는 폭넓은 대중적 기반을 토대로 로마 황제의 권위에까지 도전하는 모습은 드라마틱하기 그지없다.

로마인들이 얼마나 전차 경주에 열광했는지는 1~2세기에 활동한 로마의 풍자시인 유베날리스Decimus Junius Juvenalis(?~?) “대중이 투표에 관심을 갖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한때 속주 총독직, 집정관직, 군사령관직, 그 밖의 관직을 수여한 것은 시민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시민들은 그런 문제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고 오직 두 가지, 즉 빵과 경주panem et circenses만을 갈망한다”라는 말에서 능히 짐작이 간다. 로마인이 ‘빵과 경주’에 만족한다고 했을 때 이것은 정확하게 무료 곡물과 전차 경주를 말한다. 정치에 관심이 없고 먹고 노는 것에만 관심을 가진다는 비난인데, 그 노는 것이 바로 전차 경주였다. 전차 경주가 열렸던 대경기장(키르쿠스 막시무스Circus Maximus)은 콜로세움 안에서 경기를 치르는 아레나arena보다 규모가 컸다. 검투사 경기에서 그물 검투사, 추격 검투사, 물고기 검투사, 트라키아 검투사, 도전 검투사 등 검투사의 종류도 많고, 각각의 무장 상태가 달라 사용하는 전술이 달랐다. 가령 그물 무기와 팔과 어깨에 7~9킬로그램이나 나가는 보호대를 장착한 그물 검투사와 눈구멍 2개만 뚫려 있는 투구를 포함 15~18킬로그램에 달하는 장비를 갖춘 추격 검투사의 대결은 장기전 대 단기전의 전술로 승부를 건다. 종류, 무장 상태, 전술을 모두 인지해야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검투사 경기와 비교해 전차 경주는 비교적 단순하다. 동시에 출발하여 경주로를 7바퀴를 달려 먼저 들어오는 기수가 승자다. 경기 규칙의 단순성에 비해 박진감과 긴장감이 훨씬 더 크다보니 전차 경주에 대한 로마인의 사랑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전차 경주는 검투사 경기가 쇠퇴한 후에도 존속했다. 한 마디로 전차 경주의 역사는 바로 로마의 역사였다.

이 책은 전차 경주가 열리는 하루를 미시적으로 추적해본 것이다.

총 5개의 장으로 되어 있으며 1장 ‘대경기장의 위용’은 전차 경주가 열리는 대경기장의 외관, 경주로의 모습, 좌석 등에 대해 설명했다. 2장 ‘전차 경주의 운영 조직’은 전차 경주의 주최자, 조직, 운영 방식에 관해 다뤘다. 3장 ‘전차 경주의 광경’은 전차 경주를 시작하기 전 개막식부터 경주가 끝나고 난 후의 시상식까지 경주 전체의 과정을 설명했다. 4장 ‘흥분하는 관중’은 경주를 관람하는 로마인의 모습, 심리적인 상황, 흥분으로 인한 사건 사고 등에 대해 소개했다. 5장 ‘사라져버린 전차 경주’는 로마가 전차 경주를 시작할 때부터 전성기를 지나 쇠퇴할 때까지 전차 경주의 역사를 추적했다. 단순한 구경거리이지만 로마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는 전차 경주는 국가의 흥망성쇠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을 던져주기도 한다.

 

목차

들어가며

 

1장 대경기장의 위용

  1. 전차 경주가 열리는 날

전차 경주의 의미 | 전차 경주 개최 광고 | 전차 경주 개최 전날

  1. 전차 경기장으로 가는 길

로마시의 전차 경기장 | 속주의 전차 경기장 | 대경기장의 역사 | 대경기장으로 들어가는 길 | 무료입장

  1. 전차 경주로

무르키아 사당 | 출발문 | 중앙분리대 | 전차 경주로

  1. 관중석

관중석의 크기 | 황제의 좌석 | 로마 시민의 좌석 | 전차 경기장에서의 연애 | 콜로세움에서의 좌석과 비교

 

2장 전차 경주의 운영 조직

  1. 팍티오, 팀 체제

조직의 필요성 | 팍티오의 단결성 | 대표적인 팍티오 | 황제들이 선호하는 팍티오 | 팍티오의 수장

  1. 전차 경주의 구성원과 수단

전차 기수 | 전차 경주의 보조원들 | 말 | 전차

 

3장 전차 경주의 광경

  1. 개막식

전차 경기장으로의 행진 | 전차 경주 준비

  1. 전차 경주 과정

출발 순간 | 출발 신호 | 목숨을 건 질주 | 고난도의 기술은 코너에서 | 속출하는 사상자들 | 공포의 7바퀴 | 전차 경주를 본뜬 전차 검투사

  1. 시상식

상금 | 전적 | 죽음, 전차 경주의 종착역 | 경품 행사

 

4장 흥분하는 관중

  1. 팍티오와 관중의 관계

관중의 동질감 | 내기 | 저주 서판

  1. 사가들의 기록과 관중의 폭력성

로마인, 훌리건이 되다 | 사가들의 시각 | 검투사 경기의 폭력성과 비교 | 전차 경주에서 관중의 폭력성 | 제위를 흔드는 팍티오의 경쟁 | 니카의 반란 | 전차 경기장, 정치적 소통의 장

 

5장 사라져버린 전차 경주

  1. 과거의 영광

에트루리아 기원설 | 이탈리아 남부 기원설 | 로마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전차 경주 | 전차 경주 주최자 | 전차 경기장에서 개최된 야생동물 싸움

  1. 전차 경주의 부활을 꿈꾸며

전차 경주의 종결 | 황량한 대경기장

 

나가며

참고문헌

찾아보기

 

미리보기

대경기장의 위용

로마시는 수도의 위상에 맞추기라도 하듯 여러 개의 전차 경기장을 보유하고 있었다. 대경기장을 비롯해, 플라미니우스 경기장, 바티카누스 경기장, 바리아누스 경기장, 막센티우스 경기장 등이 있으며 이 경기장마다 온갖 우여곡절이 있다.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후 4세기까지 로마의 지배자들은 전차 경기장 건설을 자신의 업적으로 삼았다. 더 웅장하게, 더 화려하게 지은 경기장에 자신의 이름을 붙인다면 당대는 물론, 후대인도 오랫동안 자신을 기억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카이사르처럼 신전을 지을 수도, 폼페이우스처럼 극장을 지을 수도 있지만, 매일같이 이용하고 극적인 재미까지 더해주는 전차 경기장을 더 좋아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로마의 크고 작은 전차 경기장은 위대한 기념물을 남기고 싶은 지배자들의 열망의 산물이었다.

대경기장 바깥에 1층으로 된 주랑柱廊현관이 있었다. 여기에 가게들이 위치해 각종 음료나 기념품을 팔았다. 주랑의 가게를 통해 경기장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와 계단이 있어서 사람들이 편리하게 들락날락할 수 있었다. 축제가 열리는 날 주랑은 대목을 맞았다. 가판대에는 다양한 물건들이 놓여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차 경주가 벌어지는 날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바퀴가 달린 말 모양 목제 장난감이었다. 목이나 말의 입 부근에 구멍을 뚫어 실을 매달아 끌고 다니는 아이들을 보면 다른 아이들이 부모에게 사달라고 조르기 마련이었다. 전차 모형의 목제 장난감이나 유명한 기수를 조각한 작은 인형도 인기 있는 품목이었다. 전차 모형이나 기수 인형에는 전차 기수들의 팀을 상징하는 각각의 색깔이 칠해져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응원하는 팀 색깔이 입혀진 물건을 사 갔다. 경주 장면이 그려진 도자기나 등잔은 어른들이 사는 물건이었다. 전차 경기장 안에서 경주를 보면서 끼니를 간단히 해결하기 위해 구운 빵,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과자류, 뜨거운 음식과 음료를 파는 가게들은 항상 붐볐다.

이 장에서 저자는 전차 경주로의 모습, 관객석과 계급별, 남녀, 직급별로 앉는 위치 등을 세부적으로 고찰한다. 시인 오비디우스Publius Ovidius Naso(기원전 43~기원후 18?)는 사람들로 가득 찬 경기장에서 연애의 기회를 잡을 것을 권했다. 사람이 많은 만큼 원하든 원하지 않든 옆자리의 이성과 접촉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전차 경주의 운영 조직

기사, 평민, 해방 노예 중에서 돈을 가진 몇 명이 공동 출자하는 방식으로 자본을 모았다. 그렇게 모은 자본으로 기수를 고용하고 말을 사육하여 전차 경주에 내보낸 것이 경주용 팀 조직인 ‘팍티오factio’의 시작이었다. 팍티오라는 용어는 특정 색깔을 선호하는 관중을 지칭하기도 한다.

이 체제를 정치적 분파, 사회적 계층 분파, 군사적·종교적 연합이라고 보기도 한다. 이들을 현대적인 의미의 단순한 ‘팬클럽’ 혹은 ‘경기장 도당’이라 보기도 한다.

전차 경주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기수와 말을 출전시키는 횟수가 증가하고, 승리하여 돈을 벌 기회 역시 늘어났다. 자연히 기존의 소규모 팍티오가 돈과 사람을 끌어들여 대규모 자본과 탄탄한 조직력을 갖춘 팍티오 체제로 거듭났다. 과거 귀족들이 명예를 추구하는 목적으로 참여했던 전차 경주가 이제는 비천한 출신의 사람들이 참여하는 직업적인 활동이 되었다.

팍티오가 말과 기수뿐 아니라 마부, 회계원, 수의사까지 갖춘 하나의 조직이 된 것은 기원전 4세기 이후였을 것이다. 기원전 329년 출전하는 전차 기수의 수가 늘어나고 관중이 출발 시점에 관해 예민해지면서 부정 출발을 방지하기 위한 출발문이 만들어졌다. 이때 부정 출발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공정성을 주장한다는 것 자체가, 항의할 수 있는 조직, 즉 거대한 팍티오 체제가 존재했다는 증거라고 추측된다.

국가는 팍티오와 도급으로 계약했다. 기원전 214년 포에니 전쟁 비용으로 인해 국고가 텅 비자 감찰관들은 신전을 유지하거나 행렬에 사용되는 말을 공급하는 도급 계약을 금지했다. 국가가 말을 제공하는 개인이나 조직에 돈을 지급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전차 경주에서 조직적인 팍티오를 감찰관들은, 경주를 가능하게 하는 기구이면서도 국고 낭비를 유발하는 기구로 보았다.

전차 경주가 빈번하게 열리고 팍티오에 사람과 돈이 들끓게 된 것은 기원전 3세기 로마가 부유해지면서였다. 마케도니아를 포함한 그리스 지역과 아프리카가 로마의 영토로 편입되면서 전리품과 배상금, 조공 등 여러 명목의 돈이 로마로 들어왔다. 군사령관은 자신의 군공을 알리기 위해, 정무관들은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앞 다투어 전차 경주를 화려하게 개최했다. 그들에게는 권력 쟁취라는 확실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전차 경주에 투자하는 돈이 아깝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은 순수한 경주를 훨씬 뛰어넘어 남들보다 더 화려한 구경거리를 만들어내는 데 진력했다.

 

전차 경주의 광경

황제가 수건을 버리는 동작을 하는 즉시 그는 출발문 위의 노예들에게 밧줄을 당겨 올리라고 소리쳤다. 출발 외침 소리를 들은 노예들은 밧줄을 당겨 올렸고, 이와 동시에 출발문이 열렸다. 기수들은 출발문에 막혀 출발 신호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트럼펫 취추자들의 소리에 의존했다. 또 콜로세움과 달리 차광막이 없다는 것은 눈부신 태양광과 숨 막히는 더운 열기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햇빛이 반사되어 작은 수건만으로 관중이 모두 출발 신호를 알아차릴 수 없으므로 트럼펫을 불어 출발을 알렸다. 황제가 출발 신호를 보내기 위해 일어설 때, 수건을 떨어뜨릴 때 들리는 트럼펫 소리는 기수들에게는 심장 박동을 촉진하는 소리였다. 천천히 울려 퍼지는 트럼펫 소리는 곧 출발 신호가 떨어질 것이니 정신을 최대한 집중하라는 뜻이었다.

기수들은 정해진 경주로를 따라 달리면서 속력을 늘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각자 초반에 가속도를 붙여야 지정 주로가 끝나자마자 중앙분리대 쪽으로 붙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안쪽으로 달리면 거리가 짧아지므로 결정적으로 유리했다. 서로 안쪽 노선을 파고들려고 하니 선이 끝나는 동시에 치열한 몸싸움 아니 말싸움이 벌어졌다. 기수들은 채찍질하면서 말을 강하게 밀어붙여 안쪽 노선을 노렸다. 유리한 노선을 점했을 때는 속도를 올려 빼앗으려고 달려드는 다른 말들을 떨궈내는 데 진력을 다했다. 기수들의 의도는 채찍질을 통해 고스란히 말에게 전해졌다. 평소 말과 교감 훈련을 해온 만큼 이 순간 채찍질에 모든 마음을 담았다.

 

흥분하는 관중

6세기 초 청색과 녹색 팍티오에 대한 지지가 과열되다보니 상대 팍티오가 차지한 좌석을 구매하는 일이 일어났다. 상대 팍티오의 단결력을 저해하기 위해 좌석을 구매하는 것은 당시 새롭게 나타난 현상이었

다. 이 역시 동일 팍티오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모여 앉는 것이 관행이었음을 알게 한다. 따라서 좌석 배정으로 볼 때 같은 팍티오를 지지하며 같이 앉은 관중들끼리의 동질감은 상당히 높았다.

대경기장 바깥에서부터 자신이 지지하는 팍티오가 승리하리라는 것을 공언하는 사람도 있었다. 2세기 녹색 팍티오를 지지하는 어떤 부자는 야생 새들을 잡아 머리에 녹색을 칠해서 우리에 가두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우리에 갇힌 새들을 보여주면서 자신이 지지하는 녹색 팍티오의 기수들이 승리하면 이 새들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풀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경주를 보지 않은 사람도 녹색 팍티오가 승리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겠다는 의지였다. 그만큼 열성적인 팍티오 지지자들은 자신과 팍티오를 동일시했다.

 

사라져버린 전차 경주

검투사 경기, 야생동물 사냥, 전차 경주 중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은 검투사 경기였다. 검투사 경기를 잔인함의 대명사로 본 교회는 이 경기를 폐지하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교회는 검투사들과 검투사가 되려고 훈련하는 자들은 물론, 검투사 경기와 야생동물 사냥을 본 사람들도 세례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규정했다. 검투사 경기 다음으로 없어진 것은 야생동물 사냥이었다. 동로마 제국에서 아나스타시우스 1세 황제는 498년 야생동물과 인간의 싸움을 금지했지만, 야생동물들끼리의 싸움은 허용했다.

전차 경주는 검투사 경기와 야생동물 사냥이 사라진 뒤에도 존속했다.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379~395 재위)가 이교적인 종교와 의식을 공식적으로 금지하고, 로마인에게 자신과 같은 기독교를 믿도록 명령했다. 명령과 달리 사람들이 이교 신전에서 여전히 제례를 하자 황제는 391년 이교 신전과 희생제에 참석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듬해에는 모든 종류의 이교 의식을 금지했다.

이교 신을 기리고, 희생제와 함께 시작된 전차 경주는 기독교의 교세가 확장되고, 국교가 되면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로마시에서는 5세기에 정치 분열과 재정 악화로 인구가 상당히 감소했다. 500년에 로마시의 거주 인구는 10만 명이었다. 거주 인구 모두 대경기장에 간다고 해도 1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을 채우지 못했다. 하루 개최하는 경주의 수는 8회로 줄어들었다. 관중과 인기가 줄어들면서 전차 기수가 되려는 사람도 줄어들었다. 오랜 훈련과 경험을 축적한 전차 기수가 나타나지 않았고, 유명한 기수가 없자 인기는 더 떨어졌다.

지은이/옮긴이

지은이   배은숙

 

계명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경북대 사학과에서 「아우구스투스의 프린키파투스 확립과 원로원의 성격 변화」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강대국의 비밀』(2008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기획안 공모전 최우수상), 『로마 검투사의 일생』(2014년 문화체육관광부 세종도서), 『로마 전차 경기장에서의 하루』(2021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 인문교양 선정), 『청소년을 위한 로마제국 쇠망사』 등이 있고, 공저로 『실크로드, 중국과 한국의 접점을 찾아서』 『실크로드에서 만난 신 이야기』 『페르시아에서 만난 실크로드 영웅들』 『인물로 보는 서양 고대사』 등이 있다. 연구 논문으로는 「공화정기 로마군 공성전의 시기별 특징」 「한국사 게이미피케이션을 위한 서양사 전략 게임 분석」 「공성전을 통해 본 고대 동서양의 공학기술 활용성」 「콘스탄티노폴리스 창건의 지정학적 실익」 「고대 동서양의 군 주둔지와 제철 지역의 병참선 연구」 「제정 초기 전차 경주에서 팍티오(factio)와 폭력성」 「고대 벽화를 통해 본 동서양의 화장술의 차이」 등이 있다. 현재 계명대 Tabula

Rasa College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