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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시카와 고지로의 중국 강의 오경五經·사서四書의 사회 지배와 중국인의 형성
  • 지은이 | 요시카와 고지로
  • 옮긴이 | 조영렬
  • 발행일 | 2021년 02월 28일
  • 쪽   수 | 304p
  • 책   값 | 16,000 원
  • 판   형 | 무선 | 140*205
  • ISBN  | 978-89-6735-875-4 03100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책소개

탁월한 논리와 근거로 가장 근본에서부터

중국을 머리에서 발끝까지 꿰뚫는 책!

 

국내에 저서가 여러 권 소개된 바 있는, 일본의 한학자 고故 요시카와 고지로吉川幸次郞(1904~1980)의 책이 오랜만에 출간되었다. 이번 책은 중국 유학파이자, 평생 중국어로 논문을 읽고 쓴 원칙을 지킨 요시카와 선생의 전집에서 중국과 중국인에 관한 강의를 모아 한 권을 구성했다. 자세히 보면 『요시카와 고지로 전집 제2권』(지쿠마쇼보, 1968)에 실린 「중국인의 고전과 그 생활」 「중국인의 일본관과 일본인의 중국관』 「중국의 고대 존중 사상」 「중국의 지식인」 「사인士人의 심리와 생활」 등 다섯 편의 글을 엮은 것이다. 시기적으로는 1940년대에 초반에 이뤄진 대학 강연과 글 3편, 1953년에 발표된 글 1편, 마지막으로 1967년에 발표한 장편 논문 1편이다.

약 20여 년에 걸친 중국론을 하나로 묶은 것이지만 이 책을 일이관지하는 한마디는 “중국인 정신의 불변하는 특질은 무엇이고, 무엇이 그 특질을 만들었으며, 그 특질은 실생활에서 어떠한 특수한 형태로 표출되는가?”이다. 이런 질문에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이 책은 그에 합당한 매우 논리 정연한 설명과 풍부한 근거사례들을 제시해준다.

목차

서문

 

1장 중국인의 고전과 그 생활

2장 중국인의 일본관과 일본인의 중국관

3장 중국의 고대 존중 사상

4장 중국의 지식인

5장 사인士人의 심리와 생활: ‘구체제 중국’ 서설

  1. 특권의 양태
  2. 특권을 누리는 이의 자격 요건으로서의 언어 능력
  3. ‘과거’를 통한 언어 능력의 인증
  4. 비특권자의 소외
  5. 여론餘論

 

옮긴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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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기

감각에 대한 신뢰: 사후세계에 대한 냉담함

 

요시카와는 중국인의 정신이 가진 가장 중요하고 중심이 되는 특질이 ‘감각에 대한 신뢰’라고 말한다. 중국인은 감각을 넘어선 존재에 대해서는 신뢰하지 않았다. 그 증거가 ‘사후생활에 대한 냉담함’이다. 『논어』에서 공자는 “아직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라고 말했다. 인간은 죽은 뒤 어떻게 되느냐에 대해서 중국에는 딱 부러지게 말한 기록이 전혀 없다. 사후세계에 대한 중국인의 냉담함을 요시카와는 ‘신화’와 ‘소설’이라는 두 채널을 통해 설명한다. 우선 중국엔 신화가 많지 않다. ‘하늘과 땅天地’은 어떻게 해서 생겼는가, 해와 달은 어떻게 생겼는가, 인간이라는 것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가, 그런 것에 대해 대개의 민족은 신화적인 설명을 갖고 있다. 그러나 중국인에게 천지만물이나 인간이 어떻게 생겼는지 설명을 듣는 일은 매우 어렵다. 또한 중국에서는 소설이 활발히 일어나지 않았다. 소설이라는 것은 세계를 모방하여 짓는 글의 갈래이며, 만들어낸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진짜로 감각에 닿는 사실史實과는 다르다고 받아들여졌다. 중국에서는 소설을 늘 건전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했다.

 

감각 신뢰가 선례先例에 대한 집착으로

 

‘감각의 세계를 신뢰하는’ 성향은 생활의 법칙을 이미 발생한 사실, 즉 선례先例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과거의 생활, 즉 선례는 옛사람들이 살면서 감각했던 것이고 그 점에서 확실한 느낌을 준다. 이와는 반대로 자신의 이성으로 생활 법칙을 발견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불안을 느낀다. 이성으로 발견한 법칙은 늘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형태이고, 미래와 이어져 있으며 그저 상상의 세계에서만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실제로 과거에 존재했고, 감각에 닿았고 의식 안에 들어온 생활만큼 확실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또한 감각을 신뢰하고 집착하는 입장은 사람으로 하여금 사물이 통일되는 방향보다 오히려 통일되지

않는 방향에 더욱 민감하게 만들었다. 즉 감각이 파악할 수 있는 한계 안에서 이 세계의 사물이 드러내는 모습은 천차만별千差萬別이다. 따라서 감각을 존중하는 민족은 당연히 사물의 다양성에 민감하며, 이렇게 다양성에 민감한 세계관에서는 자신의 이성이라는 것은 늘 아주 작게 보인다는 게 요시카와의 설명이다. ‘자신의 이성’의 보편타당성에 대해 늘 의심을 품는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사람의 마음이 같지 않은 것은, 그 얼굴과 같다人心之不同如其面焉”는 말이 있다. 이것은 중국인이 생각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겪는 감정을 잘 표현한 말이다. 이렇게 사람의 마음이 사람의 얼굴처럼 다르다면, 제 혼자서 생각한 생활 법칙, 그것이 과연 얼마만큼 타당하겠는가, 그보다는 차라리 이미 발생한 선례에서 자신의 생활을 기댈 만한 규범을 찾자, 그러한 방향으로 기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된다.

 

선례의 성지聖旨, 오경의 탄생

 

‘선례를 존중하고 선례에 집착하는’ 성벽이 하나의 주장 단계에 도달하여 굳어진 것이 생활 규범을 고전에서 구하는, ‘오경五經’(『시詩』 『시書』 『예禮』 『역易』 『춘추春秋』)에서 구하는 태도라고 요시카와는 이 책의 핵심 테마를 꺼내든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의 의문이 든다. 중국인이 다양성에 민감한 민족이라면, 과거에 발생한 모든 생활이 제 생활의 규범이라는 생각에 끌릴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하필 오경에만 그토록 매달린 것일까. 사실 사마천의 『사기』 이후 각 왕조의 방대한 역사책인 ‘이십사사二十四史’는 과거의 모든 행동을 경험으로써 존중하려는 중국인의 태도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생활 속에서 모든 선례를 보전하고 간직하려 노력하다보면, 수많은 선례가 존재하게 되고 선례의 천차만별과 마주하게 된다. 차이가 많고 다른 것들이 동시에 생활 속에 존재하면 거기에는 혼란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인간이 선례를 기억하는 능력에는 한도가 있고, 기억한 것을 실행하는 능력에는 더더욱 한도가 있다. 그 결과, 그러한 수많은 선례를 통일하는 무언가를 찾는 단계가 당연히 찾아오게 된다. 그렇다면 무언가 형이상形而上에 속하는 것, 즉 모든 선례의 배후를 관통하며 흐르는 것을 구하는 게 자연스러운 후속 흐름이다. 사실 중국에서도 그러한 것을 구하려 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예를 들어 노자가 말하는 ‘도道’ 또는 ‘오경’ 자체의 사상으로 말하면 ‘천天’이나 『역易』에 보이는 ‘태극太極’ 등이다. 또한 송나라 주자朱子가 주장한 ‘이理’ 등은 모두 선례의 배후에 있으면서 그것을 지배하는 것이고, 형이하形以下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형이상에 속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제출된 ‘형이상에 속하는 것’, 그것을 확실히 파악하는 것은 중국에서는 잘 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린다. 중국의 문헌에서는 ‘도’란 무엇인가, ‘이’란 무엇인가, ‘천’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분명한 설명을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관련하여 저자는 노자의 예를 든다. 노자는 ‘도’에 대해 “물物이 있어 혼성混成하여 천지에 앞서 생겼다. 나는 그 이름을 모른다, 그것에 이름을 붙여 도라 한다有物混成,先天地生…吾不知其名,字之曰道”라고 했다. ‘자지왈도字之曰道.’ 즉 이름을 붙여 도라 한다는 이 표현은 매우 재치 있는 태도이지만 역시 형이상에 속하는 것을 파악하는 데 서투른, 익숙하지 않은 성벽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게 요시카와의 입장이다. 그래서 중국인은 차라리 다양한 선례 모두를 지배할 만한 절대적인 것을, 차라리 선례 그 자체에서 구한다는 태도로 나아갔다. 즉 선례 가운데서 선례를 구하고 그것이 다른 선례를 지배하게 한다. 이렇게 찾고 구한 ‘선례 중의 선례’가 바로 ‘오경’이라고 요시카와는 주장한다.

 

완전한 것은 과거에 있다: 상고주의尙古主意

 

중국에서는 오경에 기록된 생활, 그것은 인간의 생활로서 완전한 것이므로 인간 생활의 절대 규범으로 인식되어왔다. 완전한 것이 지상에 있다고 보는 이런 사고방식은, 동시에 완전한 것은 과거에 있다고 보는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대체로 선례를 존중하는, 즉 과거에 발생한 사실을 생활 규범으로 삼으려는 생각은 현재 생활보다 과거 생활에서 가치를 찾으려는, ‘옛것을 숭상하는尙古’ 감정을 이미 전제로서 갖고 있는 것이다. 이윽고 이러한 과거생활 중에서도 특히 존중할 만한 것을 선택하고, 즉 선례 중의 선례를 선택하고 그것을 완전한 것이라 인식하면, 상고주의尙古主義는 더욱 확고부동해질 수밖에 없다. 왕희지를 완전한 서예가라 의식하는 것은 왕희지 이외의 서예가 모두를 불완전하다고 보는, 즉 왕희지 이후에 왕희지만한 서예가가 없었다고 본다는 말이다. 비슷한 논리로, 두보 이후에 두보만한 시인은 없었다는 말이고, 오경 이후에 오경에 견줄만한 생활이 없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옛것을 숭상하는 사상은 당연히 더욱 오래된 것일수록 더욱 가치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절대 긍정은 있어도 절대 부정은 없다

 

그렇다면 ‘오경’ 이외의 책은 중국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했을까? 가령 이슬람의 경우를 보자. 이슬람교回敎의 『코란』은 중국에서 오경이 존재하는 방식과는 다른 것처럼 보인다. 『코란』은 『코란』만이 도리이고 이외에는 모두 도리가 아니다. 오히려 없는 편이 좋다, 그것이 이슬람교의 사고방식이이다. 또한 이슬람교의 경우만큼 강렬하지는 않지만, 단 하나의 도리가 존재하는 것 외에 나머지 일체는 무익하다고 보는 불교의 사고방식도 이와 가깝다. 그런데 중국은 그렇지 않았다.

중국인들은 오경이 가장 높은 도리이고 도리 그 자체라고 여겼지만, 다른 책도 불완전하게나마 도리를 드러내고 있다고 인식했다. 중국인의 정신에는 모든 선례를 존중하려는 면이 한켠에 있었다. 그것들도 불완전하지만 절대 부정해야 할 대상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중국엔 절대적으로 긍정할 만한 것은 있어도 절대적으로 부정해야 할 것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흔히 완전한 것을 원으로 나타낸다. 이는 매우 중국적이라는 게 요시카와의 생각이다. 원이라는 것에는 그 반대가 없다. 원이 아닌 것으로는 삼각형도 있고 사각형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원으로 귀착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곳을 보면 완전한 것을 빛으로 나타내고, 그 반대를 어둠으로 나타내는 데 익숙한 문화권이 많다. 이런 문화에서는 어둠은 어떻게 해도 빛에 도달할 수 없다는 사고방식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그러나 중국인의 사고방식은 그렇지 않았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요즘 세계 각국의 질타를 받고 있는 중국의 ‘중화사상’이 단순한 우월주의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근본적인 차원에서 자라나서 강화된 정신적 태도라는 점을 유념하게 된다.

 

이번 『요시카와 고지로의 중국 강의』는 이런 차원의 설명에서 시작해 오경과 사서가 점차적으로 중국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어, 사상적·문화적·제도적으로 펼쳐지고 그에 맞서 사람들의 습성과 사고관이 정립되고, 이러한 정립들이 강고하게 묶여 물샐틈없는 무의식으로까지 장착되는 과정을 유감없이 그려보이고 있다. 싫든 좋든, 중국을 알기 위해서는, 중국의 영향을 받은 한자문화권 속의 우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필독서라고 할 수 있다.

 

지은이/옮긴이

요시카와 고지로吉川幸次郞(1904~1980)

현대 일본의 중국학을 주도한 세계적인 한학자로 일본의 중국 고전 번역과 해석·연구에 큰 획을 그었다. 고금의 문헌에 해박하고 고증에 뛰어났으며, 직관력이 남다르고 문체가 평이하면서도 아름답다는 평을 받는다. 일본 고베에서 무역상의 차남으로 태어나 교토대학을 졸업한 후 1928년 선배인 중국어학자 구라이시 다케시로倉石武四郞와 함께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 1931년까지 베이징에서 공부했고 귀국한 후 동방문화학원 교토연구소(후일 동방문화연구소로 개칭, 현재의 교토대학 인문과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지내면서도 중국 고전은 중국어로 직독할 것, 논문은 중국어로 쓰는 것 두 가지를 철저히 지켰다.

1947년 교토대학 교수가 되었고 1962~1963년 컬럼비아대학 객원교수를 지냈으며 1964년 일본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주요 저서로 『요시카와 고지로 전집(전28권)』 『두보시주杜甫詩注』 『도연명전陶淵明傳』 『중국 문학 입문』 『중국의 지혜: 공자에 대하여』 『진사이·소라이·노리나가』 『한문 이야기』 등이 있다.

 

옮긴이 조영렬

1969년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났다. 고려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한림대 부설 태동고전연구소(지곡서당)를 수료했으며, 고려대학교 대학원 중일어문학과 일본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21년 현재 선문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시를 쓴다는 것』 『지금 당장 읽고 싶은 철학의 명저』 『독서의 학』 『장자, 닭이 되어 때를 알려라』 『시절을 슬퍼하여 꽃도 눈물 흘리고: 요시카와 고지로의 두보 강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