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 홀로 선 자들의 역사 조선의 누정樓亭, 비경에 숨은 이야기를 찾아서
  • 지은이 | 김동완
  • 옮긴이 |
  • 발행일 | 2020년 12월 28일
  • 쪽   수 | 400p
  • 책   값 | 19,800 원
  • 판   형 | 153*210(무선)
  • ISBN  | 978-89-6735-855-6 03910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굿즈
책소개

누정樓亭은 책 밖으로 튀어나온 역사서이자

철학·예술·풍수·건축·지리를 담은 인문학 사전이다!

역사와 이야기를 품은 전국 35곳 누정의 사진·글 기행

 

책 소개

 

우리 조상들은 길이 끝나는 곳에 누정을 짓곤 했다. 깎아지른 해안가 절벽이기도 하고, 유유히 흐르는 강변이기도 한 누정 공간은 경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탁 트여 있지만, 그곳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는 가려져 있는 은폐된 성격이 짙다. 주로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한 이들이 이런 곳을 찾아 정자를 지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못 공감이 가는 구도다. 말로 못할 사연과 때론 억울한 울분의 심정을 그들은 세상에 등을 돌리고 탁 트인 자연을 바라보며 삭이곤 했다. 오늘날 사람들에게는 그저 텅 빈 건물이자 탁월한 자연 경관 속에 말없이 엎드려 있는 옛사람의 흔적일 뿐인 이곳에서 역사를 캐내고자 한 이가 있다. 이번에 35곳의 역사를 품은 누정 답사를 묶어 『홀로 선 자들의 역사』를 펴낸 김동완 작가는 오랜 시간 역사 현장을 간난신고로 찾아다닌 글쟁이다. 그가 내면에 품었다가 펼쳐 보여주는 누정 이야기는 웅숭깊은 맛을 내며 우리를 역사의 깊숙한 맥락 속으로 이끄는 여행을 제안한다.

책의 제목을 ‘홀로 선 자들의 역사’라고 지은 것은 정자가 보여주는 정신과 미학을 ‘홀로’라는 말이 잘 표현해주기 때문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관료들이 모여 떠들썩하게 일을 추진하는 궁궐과 관청이 도도한 역사의 앞길을 내고 있다면, 스스로 홀로이기를 청한 자가 지은 집은 그 물길의 옆구리에서 한 삽 한 삽 작은 이야기 냇물을 만들어내는 뒷길의 역할을 하고 있다. 홀로인 자가 홀로 머물며 사회와 역사와 철학과 인간을 사색하는 집에 간간이 홀로 길을 떠난 이들이 지친 몸을 이끌고 객으로 찾아들곤 했다. 홀로와 홀로가 만나 교감했던 그 시간이 세월을 이겨내고 홀로 남아 서 있는 것이 바로 누정이다.

목차

책을 내면서

 

1부 돌아오다 ――

 

퇴계 이황이 반한 장쾌한 비경: 안동 고산정孤山亭

산수에 이름 붙이고 홀로 노닐다: 경주 독락당 계정溪亭

인생 멘토를 만나 「성산별곡」을 쓰다: 광주 환벽당環碧堂

바위를 열어 서재 짓고 성인의 길을 읽다: 괴산 암서재巖棲齋

풍월 부르고 산천 끌어들여 한 백년 보내리라: 담양 면앙정俛仰亭

노인이 동쪽 바닷가에 정자를 지은 까닭은: 동해 해암정海巖亭

늦게 돌아온 자연에서 누리는 청복: 성주 만귀정晩歸亭

초당에 몸을 누이니 영쇠가 덧없구나: 경주 덕봉정사德峰精舍

세파에 지친 몸, 폭포와 계곡에 뉘다: 안동 만휴정晩休亭

조선 최초의 백과사전이 탄생한 곳: 예천 초간정草澗亭

 

2부 머무는 자의 내면 ――

 

인자와 지자를 생각하니 부끄럽네: 거창 요수정樂水亭

벼슬도 마다하고 좋아하는 것 따르니: 경주 종오정從吾亭

취해서도 입을 다물고 깨어나서도 침묵하리: 괴산 취묵당醉黙堂

매화와 학을 벗삼아 은일하다: 구미 매학정梅鶴亭

옥계 37경의 주인이 되다: 영덕 침수정枕漱亭

꼭꼭 숨어사는 즐거움: 영양 경정敬亭

물러나 후학들과 시와 학문을 논하던 곳: 파주 화석정花石亭

맑은 물에 귀를 씻는 청년의 울분: 포항 분옥정噴玉亭

입암사우와 기거하며 자연을 노래하다: 포항 일제당日躋堂

 

3부 그리움이 향한 곳 ――

 

억울하게 죽어간 임진왜란의 영웅: 광주 취가정醉歌亭

죽음으로 절개 지킨 아내를 그리워하다: 김천 방초정芳草亭

조선의 아웃사이더 청운의 꿈을 키우다: 나주 영모정永慕亭

의상이 관음보살을 만난 자리에 해가 뜨다: 양양 의상대義湘臺

나옹화상과 이색의 이루지 못한 만남: 여주 강월헌江月軒

기묘사화 피해 은거하던 6인의 선비: 이천 육괴정六槐亭

단종 유배지 마주하고 초막살이 한 절개: 제천 관란정觀瀾亭

누명 쓰고 죽은 자의 넋을 기리다: 포천 금수정金水亭

불의한 정치를 떠나 고향 땅을 밟다: 경주 귀래정歸來亭

칠형제의 인패를 걸고 정자를 짓다: 포항 칠인정七印亭

 

4부 역사와 인간이 함께 쉬는 곳 ――

 

금강산과 동해를 품은 곳: 고성 청간정淸澗亭

경상감사 도임행차의 추억: 문경 교귀정交龜亭

왕들이 그리워한 절경, 시로 달래다: 삼척 죽서루竹西樓

최초의 서원에 세워진 정자: 영주 경렴정景濂亭

시골 정자에서 마주친 비운의 정적: 울진 망양정望洋亭

화려한 누각에 서린 왕후의 피눈물: 청송 찬경루讚慶樓

 

참고문헌

 

미리보기

누정은 구심력과 원심력을 갖춘 인문의 정수

 

누정은 산수에서 만나는 ‘책 밖으로 튀어나온 역사서’이며 철학, 예술, 풍수, 건축, 지리를 담은 ‘뜻밖의 인문학 사전’이다. 정도전은 “일월성신日月星辰은 하늘에 보이는 이른바 천문天文 현상이요, 산천초목山川草木은 땅에 보이는 이른바 지문地文 현상이요, 시서예악詩書禮樂은 인간 세상에 보이는 이른바 인문人文 현상이다. 천문 현상은 기氣에 의한 것이요, 지문 현상은 형形에 의한 것인 반면에, 인문 현상은 도道에 의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누정은 구심력과 원심력을 갖춘 인문 현상의 정수다. 일월성신과 산천초목을 누정 속으로 끌어들였다가 다시 내보내 재배치했다. 시문이 있어 가능했다. 면앙정의 주인 송순은 담양의 제월봉에 정자를 짓고 “풍월은 불러들이고 아름다운 산천은 끌어당겨 명아주 지팡이 짚고 가며 한평생을 보내리라”며 풍월산천의 주인이 됐고 천문·지문·인문이라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됐다. 선비들은 누정은 물론 주변의 이름 없는 산과 물, 바위에 이름을 붙이고 자신의 정신세계를 구축했다. 편액과 산, 물, 바위에 붙여진 이름은 ‘고문진보古文眞寶’에 다름 아니다. 저자는 누정이라는 끈을 잡고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조선시대 선비들의 삶이 낡은 영상처럼 펼쳐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곤 했다. 글을 쓰는 동안은 누정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기도 했다. 저자는 그 답을 소세양이 송순의 면앙정 현판에 남긴 글에서 찾았다고 했다. “산과 물은 천지간의 무정한 물건이므로 반드시 사람을 만나 드러나게 된다. 산음의 난정이나 황주의 적벽도 왕희지나 소동파의 붓이 없었다면 한산하고 적막한 물가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니, 어찌 후세에 이름을 드리울 수 있었겠는가?” 이 글을 읽으면서 “연꽃의 향기는 멀리 갈수록 맑음을 더한다”는 ‘향원익청香遠益淸’을 떠올리며 무릎을 쳤다고 한다.

 

나갔다가 돌아온 이들의 거처

 

도연명陶淵明은 조선 선비의 롤 모델이었다. 그는 ‘월급 쌀 다섯 말을 위해 소인배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며 벼슬을 내던지고 고향으로 돌아와 선비의 자존심을 지켰다. 그때 쓴 글이 「귀거래사歸去來辭」다. 「귀거래사」는 조선 선비들의 필독시가 됐다. 조선의 관리들은 도연명의 초상화를 벽에 걸고 「귀거래사」를 읊으며 계산풍월의 전원생활을 갈망했다. 그들은 천년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도연명을 상우천고尙友千古로 삼았고 그의 유유자적한 삶을 본받으려고 했다. 「귀거래사」는 조선의 관리들에게 비상구 역할도 했다. 정치에 환멸을 느낀 이들은 임금에게 사직 상소를 쓰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당파싸움에 밀려 파직당하거나 시절이 심상치 않으면 낙향해 정자를 지었다. 경주와 안동, 영천, 순천을 비롯한 전국 각지의 귀래정歸來亭은 정치에 실망하거나 정권의 부당한 처사에 반발하며 낙향한 선비들이 지은 정자다. 경주 강동면 운곡서원 내 유연정悠然亭과 류성룡의 옥연정사 내 애오재愛吾齋도 도연명의 시가 전고다. 고려 후기의 문신 이인로는 자신의 집 이름을 와도헌臥陶軒이라고 지었다. 이 땅의 누정에서 도연명을 만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이 책에서는 나아갔다가 돌아온 이들의 정자를 제1부 ‘귀歸’로 묶었다.

 

머무름의 철학과 미학

 

출처지의出處之義는 ‘도가 행해지지 않으면 그 몸을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는 선비의 처세관이다. 시절이 하수상해 자신의 포부를 펼칠 수 없다고 생각한 선비들은 벼슬자리에 나아가지 않았다.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흐리면 발을 씻는다’는 탁영탁족濯纓濯足의 출처관을 지켰다. 그들은 정치에 나서는 대신 은일의 삶을 살며 안빈낙도의 지극한 즐거움을 추구했다. 푸른 시냇가에 정자를 짓고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벗 삼아 시와 술, 거문고를 즐기며 풍월주인風月主人이 됐다. 벼슬에 나아가지 않은 처사의 모델이 공자의 제자 증석이다. 공자가 물었다. “내가 너희를 알아준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증석은 “기수에서 목욕한 뒤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시를 읊으며 돌아오겠습니다浴乎沂風乎舞雩詠而歸”라고 답해 공자를 감동시켰다. 조선 선비들은 증석의 풍류, 유유자적을 닮고 싶었다. 그런 이들이 정자나 누각을 짓고 ‘영귀詠歸’ ‘무우舞雩’ ‘풍영諷詠’ 같은 이름을 붙였다. 공자의 제자 원헌의 자는 자사子思다. 그는 공자가 죽자 세상을 등지고 풀이 무성한 늪가에서 살았다. 어느 날 위나라 재상으로 있던 자공이 호위병을 대동한 채 네 마리의 말이 이끄는 마차를 타고 자사를 찾았다. 함께 공부하던 자사의 초라한 행색을 보고 “어쩌다 이리 초라하게 병이 들었단 말입니까” 하며 안타까워했다. 그러자 자사가 “내가 듣기로는 재물이 없는 것을 가난하다 하고, 도를 배우고도 실행하지 못하는 사람을 병이 들었다고 하는데, 저는 가난하지만 병은 들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자공은 자기가 던진 가벼운 말을 놓고 평생 부끄럽게 여겼다고 한다. 조선의 처사들은 자사의 은일한 삶을 닮고 싶어 했다. 실제 그런 삶을 이어가는 데 자부심을 가졌다. 정자는 그 자부심의 한쪽 면이다. 나아가지 않고 지고지순한 처사의 삶을 이어간 이들의 정자를 제2부 ‘처處’에 모았다.

 

헐어도 헐리지 않는 그리움으로 지은 집

 

주나라 소공석은 남쪽 지방을 순방할 때 민폐를 염려해 팥배나무 아래 머물며 백성의 민원을 들어주고 아픔을 해결해줬다. 사람들은 그가 살아 있을 때 정사를 돌보던 팥배나무를 보존했고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선정을 찬미하여 시를 읊었다. “팥배나무를 그대로 두고 떠나갔어도 더욱 기려 읊었다存以甘棠去而益詠.”

원호는 단종 때 생육신의 한 사람이다. 그는 단종이 영월로 유배를 당하자 멀리서 유배지가 보이는 제천 평창강 절벽에 초막을 짓고 날마다 통곡하며 절을 했다. 원호가 죽자 후학들이 그 자리에 정자를 세웠으니 관란정觀瀾亭이다. 조선의 선비들은 스승이나 조상이 남긴 시문이나 문장, 학문의 세계, 삶의 방식을 남기기 위해 문집을 만들거나 시를 지어 헌정하는 한편 누정을 지어 ‘거이익영’했다. 영주의 금선정錦仙亭, 나주의 영모정永慕亭, 광주의 취가정醉歌亭이 그런 경우다. 사모하는 마음을 담아 정자를 세우고 길이 남긴 사례를 제3부 ‘모慕’로 엮었다.

 

조선시대 시문학의 정수가 모인 곳

 

누樓는 본래 적의 공격과 침입을 관측하기 위해 성문 위, 또는 성곽의 높은 곳에 지어진 군사용 시설이다. 궁궐의 누각도 같은 목적으로 건축됐다. 기가 막힌 절경지에 세워졌음은 물론이다. 황지우는 그의 시 「길」에서 “돌아다녀보면 조선 팔도 모든 명당은 초소”라고 했다. 시야가 잘 확보되고 주변 풍경을 압도하는 절경지에 세웠으니 당연히 명당이다. 관측은 승람勝覽의 다른 한쪽이다. 누에서 창과 칼을 거둬들이고 붓을 들면 시와 술, 음악이 넘쳐나는 문화적 공간으로 활용됐다. 고을을 찾는 관리들의 연회 장소였고 객이 묵어가면서 시를 짓고 그림을 그렸다. 때문에 이름난 누각에는 이름난 시인묵객이 줄을 지어 찾아왔다.

조선 누정예술사에 길이 빛나는 시문과 문장, 그림이 누樓에 남아 있다. 밀양의 영남루, 삼척의 촉석루, 제천의 한벽루 같은 곳이다. 건축의 취지는 어쨌든 누각은 공공재였고 연회가 열렸던 곳이었다. 또 공사를 따지지 않고 길손이 머물러 가던 곳이었다. 그런 사례를 모아 ‘휴休’라고 이름 붙이고 제4부로 삼았다.

지은이/옮긴이

경주에서 태어나 동국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역사기행 전문작가, 한국여행작가협회 회원이다. 역사 전문 잡지에 입사한 이후 30여 년 동안 전국의 역사 현장을 찾아 산과 들판을 헤매는 ‘글쓰기’를 이어오고 있다. 광고대행사 카피라이터, 일간지 기자를 거쳤으며 모 자치단체 홍보기획팀장을 끝으로 ‘따박따박’ 월급 나오는 직장생활을 마감했다.

아내가 운영하는 첨성대 부근 삼겹살집에서 ‘첨성대 조르바’라는 이름의 불목하니로 살고 있다. 불목하니의 일상을 SNS에 ‘화부일기’로 쓰고 있다. 누정과 경주 남산, 『삼국유사』 현장을 찾아다니는 일을 삶의 큰 즐거움으로 여기고 있으며 조선 선비 중 ‘시대의 문제아’ 아웃사이더의 삶을 추적하는 일에 골몰하고 있다. 낮에는 글 쓰고 밤에는 고기 굽는 ‘주경야돈’의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10년째 커피를 볶고 있는 커피로스터이기도 하다. 전국의 커피 고수를 찾아다니는 연재물을 준비하고 있다.

『경북일보』에 전국의 누정을 찾아다니는 기행문을 100회 연재했으며, 2020년 현재 같은 신문에 ‘삼국유사 오디세이’를 쓰고 있다.

 

굿즈

『홀로 선 자들의 역사』

   황동 문진

 

 

 

 

 

 

 

 

 

→굿즈 확인하기

굿즈 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