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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주는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 식민지 조선에서 성장한 한 일본인의 수기
  • 지은이 | 모리사키 가즈에
  • 옮긴이 | 박승주, 마쓰이 리에
  • 발행일 | 2020년 11월 25일
  • 쪽   수 | 296p
  • 책   값 | 16,000 원
  • 판   형 | 145*217(무선)
  • ISBN  | 978-89-6735-835-8 03910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책소개

식민자의 눈에 비친 피식민자의 삶
대구·경주가 고향인 모리사키 가즈에 자서전, 한국어판 출간!
1927~1944년의 17년간 식민지 조선에서의 성장기를 통절하게 그려내다
마음의 궤적을 조용한 어조로 담아낸 자전문학의 백미!

어린 소녀의 눈에 조선 땅은 어머니처럼 따스하게 비쳤다. 그리고 그 땅의 하늘은 언제나 푸르고 맑았다. 아버지는 일제가 식민지에 세운 학교의 교장으로 조선인의 반일감정을 의식해야 했고 일본 헌병에게도 감시를 받았다. 전쟁은 먼 곳에 있다고 여기고 있었지만, 어느샌가 생활 속에 스며들어 있었다. 말과 땅을 빼앗긴 사람들의 슬픔도 모른 채…… 17년간 그곳의 땅과 ‘오모니’가 키워준 한 소녀. 그녀는 전후 일본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언젠가 자신의 원죄의 땅에 서고 싶다는 바람을 담은 마음의 궤적을 낱낱이 전한다. 말이란 무엇인가? 고향이란 무엇인가? 그곳에서 소녀가 본 것은 무엇이었나? 읽는 사람을 엄숙하게 만드는 감동의 책!

“모리사키 가즈에가 소녀 시절 식민지 조선에서 체험한 것은 ‘민중과 함께 숨 쉬는 감수성’과 ‘다름이 조화하는 혼종성’이었다. 이 책엔 이를 통해 ‘일본 민중에게 조선 문제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문제를 넘어서려고 한 저자의 사상 궤적의 원점이 그려진다. 재조선 일본인으로 나고 자란 ‘원죄’를 짊어지며 경계를 넘는 연대를 추구한 모리사키 가즈에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모리사키의 ‘향수’에 대해 이제 우리가 답할 차례다.”_현무암 홋카이도대학 교수

조선을 사랑해버린 식민 2세의 고통

이 책 『경주는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는 1927년 한반도에서 태어난 모리사키 가즈에가 그곳에서 지냈던 17년 동안을 다룬 회고록이다. 식민자의 딸로서 자신을 품어준 땅에 대한 개인적 애착과 역사적·민족적으로 짊어져야 할 책임 사이에서 갈등하며 조선에서 지낸 17년간을 회고한 이 책에서는 ‘식민지 조선’의 어머니와 같은 애정과 그 어머니와 같은 조선을 사랑해버린 어느 식민 2세의 고통을 그렸다. 1984년 신쵸샤에서 출판된 이후, 1995년에는 지쿠마쇼보, 2006년에는 요센샤에서 출판되었다. 일본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읽혀지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모리사키는 이 작품에 대해 “식민지 체험을 적는 건 괴로운 일이었지만, 되돌릴 수 없는 역사의 일회성이 마음에 걸려 후세를 위한 증언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가급적 신변 자료만을, 그것도 당시에 한정하여, 다시 읽으며 썼다”고 한다. 모리사키는 자신의 경험과 패전 후에 읽은 사료를 대조하며 식민지 조선에서 지낸 일본인의 일상을 세심하게 묘사했다.
모리사키는 2008년에 간행된 자신의 전집을 “식민지 일본인 2세의 뒤틀린 원죄 의식을 바로잡고 싶어서 고뇌하며 살아온 나의 발자취”라고 평가했다. 그녀에게 있어서, 식민지 조선에서 나고 자랐다는 원죄 의식은 엄중했다. 동시에, 그것이야말로 그녀의 집필 활동의 핵심이었다. 즉, 이 책은 식민지 조선에서 산 일본인의 일상을 알 수 있는 실마리인 동시에, 다방면에 걸친 주제를 다루고 있는 모리사키 가즈에의 작품들을 독해할 수 있는 배경을 제공한다.

모리사키 가즈에는 누구인가

모리사키 가즈에는 탄광촌에서 생활하며 활약한 시인이자 작가다. 일본에서는 선구적인 페미니스트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그녀는 1927년 일제 통치하의 조선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1944년 후쿠오카현립여자전문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패전 후 마루야마 유타카丸山豐가 주재하는 시 잡지 『모음母音』을 통해 활동했다. 또 1958년에는 시인인 다니가와 간谷川雁과 함께 지쿠호筑豊 지역 탄광촌인 나카마中間로 이주해 ‘서클촌’이라는 문화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1959년 8월부터 1961년 7월까지는 여성 교류 잡지 『무명통신無名通信』도 간행했다. 탄광에서 채석되는 석탄은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일본의 근대화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그렇지만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사이 일본의 에너지원이 석탄에서 석유로 전환되면서 탄광촌은 큰 변화를 겪게 된다. 그녀가 탄광촌에서 지낸 것도 마침 그 무렵으로 탄광산업에 관여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런 변화와 그에 따른 고통을 견디며 싸워야만 했다. 그리고 1979년부터는 무나카타宗像라는 곳에서 생활하며 문필활동을 계속했다. 식민지에서 태어난 모리사키는 사회적 약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며 작품 활동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모리사키가 다뤄온 주제는 식민지 문제, 여성 문제, 탄광사炭鑛史, 노동 문제, 천황제, 내셔널리즘, 환경, 생명 등 다양하다. 조선과 한국에 관한 책도 많다. 『경주는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 나의 원향原鄕』(1984), 『메아리치는 산하 속으로: 한국기행 85년 봄』(1986), 『두 가지 언어, 두 가지 마음: 어느 식민지 일본인 2세의 패전 후』(1995), 『사랑하는 건 기다리는 거야: 21세기에 보내는 메시지』(1999, 여학교 동창이자 1989년 막사이사이상을 받은 김임순 거제도 애광원 원장에 관해 쓴 책) 등이다.
2008년에는 후지와라쇼텐에서 전집 『모리사키 가즈에 컬렉션: 정신사 여행』(전5권)이 출판되었다. 전집 출판에 즈음해서는 쓰루미 슌스케鶴見俊輔, 우에노 지즈코上野千鶴子, 강상중姜尙中 등 일본의 최일선
에서 활약하는 연구자들이 추천사를 썼다.

이 책의 번역 과정에 대하여

이번에 한국에서 번역 출판을 하는 데 있어 특히 주목할 점은 텍스트에 그녀와 가족이 살았던 환경(대구·경주·김천)이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배경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대구와 경주, 김천은 그녀를 만든 주형鑄型으로 한반도의 자연과 그곳의 사람들이 이 책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한반도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한국에서 번역 출판을 해보자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은 사실 그녀의 출생지인 대구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한국에서의 번역 출판이 이뤄지게 되었다. 2001년부터 도시에 남아 있는 물리적인 공간의 역사를 시민들이 직접 조사하고 기록하여 새로운 향토사를 만들어가려는
시민운동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다 일제강점기의 자료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만 이런 자료는 한국에서 구하기가 어려워 그 누락된 자료에 대한 아쉬움이 생겨났다. 그러다 보니 시민운동은 일본에 남아 있는 자료와 텍스트에 강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도시의 물리적인 공간을 해석하기 위해 그러한 이야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공동번역자인 마쓰이 리에松井理惠는 2003년부터 모리사키의 출생지인 삼덕동(구 삼립정)에서 마을 만들기 현장 조사를 진행했다. 당시 삼덕동에는 일본식 가옥(적산가옥)이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이에 관심이 생긴 마쓰이 리에가 앞서 언급한 시민운동을 접하게 된다. 일제강점기 대구에 대한 텍스트를 찾던 마쓰이 리에는 2006년에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리고 대구에 사는 지인들에게 책을 소개한다.
2007년 앞서 언급한 시민운동은 그동안의 현장 조사 성과를 『대구 신택리지』로 발간했다. 그리고 마쓰이 리에는 『대구 신택리지』를 모리사키 선생님께 전달해드렸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둘 사이에 편지 교환이 시작된다. 2008년에는 마쓰이 리에가 후쿠오카현 무나카타시에 살고 계신 모리사키를 찾아뵙기도 하면서 인연을 이어나갔다. 2013년에 시민사회와 대구광역시 중구청이 함께 해온 활동이 좋은 평가를 받아 아시아 도시경관상(‘대구의 재발견에 의한 도시재생 프로젝트’)을 받았다. 이때 후쿠오카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석한 권상구 씨가 따로 일정을 잡아 무나카타로 모리사키를 찾아가게 된다.
책 번역 출판이 움직이기 시작한 직접적인 계기는 권상구 씨의 이무나카타 방문이었다. 그의 통역으로 동행한 마쓰이 리에가 모리사키로부터 한국어 번역 출판 허락을 받았다. 그 후, 앞서 언급한 ‘대구읽기모임’의 멤버이며 현재 민간 한일교류 거점 공간인 ‘대구하루’를 운영하는 박승주와 마쓰이 리에가 공동번역 형식으로 번역 작업을 진행했다. 먼저 박승주가 초벌 번역을 하고 그것을 마쓰이 리에가 원저와 대조하면서 확인하고 다시 박승주가 번역 작업을 마무리했다.
또한 이 책에는 일제강점기 그림엽서와 사진, 지도가 많이 삽입되어 있는데 대구 자료는 권상구 씨가 약 15년에 걸쳐 수집해온 자료다. 모리사키는 일본 젊은이들에게 일제강점기의 한국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그래서 번역자들도 한국 젊은이들에게 식민지 조선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었는데, 이러한 자료는 이번 번역 출판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목차

 

한국 독자들께

서장

 

1장 은하수

2장 창포 잎

3장 왕릉

4장 혼불

여장

후기

 

모리사키 가즈에 연표

옮긴이의 말

미리보기

우리는 어머니가 저녁식사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남동생을 안은 그녀와 늘 나를 따라다니는 여동생과 넷이서 논다. 언덕을 내려가 위아래 육군 관사 사이의 넓은 길을 건너 연못가에 갔다. 남동생이 풀 위를 기어다닌다. 나는 여동생과 뽕나무 열매를 땄다. 귀가를 서두르는 조선인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넓은 길을 지나다닌다. “밥 무긋나?” “저 오모니, 뭐라고 했어?” “밥 먹었냐고 했어.” “아직 안 먹었잖아.” _ 61쪽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김씨 아저씨는 김옥균이라는 조선의 높은 사람의 친척이라고 했다. 또 옛날 임금님의 친척이기도 하고, 부모님은 경성에 산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김씨 아저씨 댁 아이들은 예의가 바르니까 본받으라고 했다. 여자 아이나 남자 아이나 부모님과 얘기할 때는 똑바로 앉아서 조선말로 이야기를 했다. 나와는 일본어로 이야기했다. 책은 일본어 책이었다. _ 80쪽

 

“여보가 가득하네.” 급우가 말한다. “진짜네. 하지만, 우리 아버지가 여보라고 하면 안 된다고 했어.” “왜? 우리 아버지는 여보라고 해.” 시끄러운 수다에 이 대화도 묻혔다. 일본인은 여보라는 말을 조선인에 대해 비하하듯이 쓴다. 그것은 듣기 거북하다. 조선인끼리는 부를 때 ‘여보!’’라고 하거나 ‘여보세요?’라고 한다. 그런데 일본인은 “여보는 구려” 따위로 쓴다. _ 134~135쪽

 

그중에는 나 같은 어린아이의 눈에도 대인大人이구나 싶은 사람이 있었다. 흰 턱수염을 기른 온후하고 성실한 최긍崔肯 씨의 인품은 일본인의 무례한 행동 따윈 꾹 참고 늘 한결 큰 미소를 보내온다. 거드름 피우는 일본인 중학교 관계자 때문에 몹시 고심하는 아버지를 가만히 지켜봐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정도로 풍격風格이 있었다. _ 179쪽

 

나는 학예회 연극에 출연해 조선옷을 입고 춤을 췄다. 연극 제목은 잊어버렸다. 하지만 대동아공영권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조선인 딸 역을 자진해서 맡았다. 그맘때는 이미 천황의 똥 같은 걸로 까불지는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감히”라며 황실 이야기를 하는 선생님의 말을 들을 때의 기분은 아주 모호했다. _ 224쪽

 

조선말로 모친을 오모니라고 한다. 나라는 어린아이의 마음에 비친 조선은 오모니의 세계였을 것이다. 개인의 가정이라는 것은 넓은 세상 속에 피는 꽃과 같은 것으로, 세상은 하늘과 나무와 바람 외에, 많은 조선인이 살며 일본인과 뒤섞여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식으로 느꼈던 나는 늘 생면부지의 오모니들이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_ 284쪽

지은이/옮긴이

지은이

모리사키 가즈에森崎和江(1927~ )

모리사키 가즈에는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일본인으로 패전 이후에는 일본의 규슈 지역 탄광촌에서 생활하며 활동한 시인이자 작가, 페미니스트다.

1927년 4월 20일, 모리사키 구라지森崎庫次와 아이코愛子의 장녀로 경북 대구에서 태어났다. 1934년 대구봉산정공립심상소학교에 입학한 후 경주공립소학교, 대구고등여학교, 김천고등여학교 등 학창시절을 식민지 조선에서 보냈다. 1944년 후쿠오카현립여자전문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패전을 맞았다. 그 후 마루야마 유타카丸山豐가 주재하는 시 잡지 『모음母音』을 통해 활동했으며 1958년에는 시인 다니가와 간谷川雁과 함께 지쿠호筑豐 지역 탄광촌인 나카마中間로 이주해 ‘서클촌’이라는 문화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1959~1961년 여성 교류 잡지 『무명통신無名通信』도 간행했다. 1979년부터는 무나카타宗像라는 곳에서 생활하며 문필활동을 계속했다. 식민지에서 태어난 모리사키는 평생 사회적 약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품고 많은 책을 펴냈다.

모리사키가 다뤄온 주제는 탄광사炭鑛史와 노동 문제를 비롯해 식민지, 여성, 천황제, 내셔널리즘, 환경, 생명 등 다양하다. 대표적인 저서로 『암흑: 여자 광부에게 전해들은 이야기』(1961), 『비소유의 소유』(1963), 『제3의 성』(1965), 『투쟁과 에로스』(1970), 『이족異族의 원기原基』(1971), 『나락의 신들』(1974), 『가라유키상』(1976) 등이 있으며 한국에 관한 책으로 『경주는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 나의 원향原鄕』(1984), 『메아리치는 산하 속으로: 한국기행 85년 봄』(1986), 『두 가지 언어, 두 가지 마음: 어느 식민지 일본인 2세의 패전 후』(1995) 등이 있다.

 

옮긴이

 

박승주

영남대학교 사범대학 일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2006년 일본 나고야대학 대학원에서 일본 근대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영남대와 금오공대 등에서 강의와 연구 활동을 이어가는 한편, 예비사회적기업이자 한일 교류 거점 공간인 ‘대구 하루’도 운영하고 있다.

 

마쓰이 리에松井理惠

쓰쿠바대학 재학 중인 2001년 고려대 국제어학원 한국어교육센터에서 한국어를 배었다. 쓰쿠바대학 및 동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해서 2011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일본 아토미跡見학원여자대학 관광커뮤니티학부 전임강사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