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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준비의 기술
  • 지은이 | 박재영
  • 옮긴이 |
  • 발행일 | 2020년 11월 15일
  • 쪽   수 | 240p
  • 책   값 | 14,500 원
  • 판   형 | 135*205(무선)
  • ISBN  | 978-89-6735-834-1 03810
책소개 목차 미리보기 지은이/옮긴이 추천의 글
책소개

나는 여행보다 ‘여행준비’가 훨씬 좋다

당신을 ‘프로 여행준비러’로 만들어줄 책

웃다가 정신 차려보면 세계일주한 기분!

뒤통수를 맞는 ‘반전의 철학’과 기상천외한 여행지들에 대한 대처 방안 수록

 

‘여행책’ 아니고 ‘여행준비’에 관한 책

 

먼저 이 독특한 책을 쓴 저자에 대해 소개해보련다. 그는 의사이고, 책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청년의사라는 언론의 편집주간이기도 하다. 『개념의료』라는 의학서도 집필했지만, 『종합병원 2.0』이라는 장편소설도 썼다(맞다, 그는 이재룡·신은경 주연의 1994년 드라마 <종합병원>에 자문을 했고, 이어서 그가 쓴 『종합병원 2.0』도 드라마화되었다). 공중보건의사 시절 요리책을 써서 텔레비전에 출연했고, 응원단 주치의로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 모두 참여해본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무엇보다 ‘프로 여행준비러’로서 지난 10년 동안 야심작을 구상해왔다.

바로 『여행준비의 기술』로, 이것은 ‘여행책’이 아니고 ‘여행준비’에 관한 책이다. 여행은 아무나 할 수 없지만, 여행준비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전염병은 여행을 못하도록 국경을 막지만, ‘여행준비’에까지 손을 쓰진 못한다. 그래서 저자는 오랜 시간 갈고닦아온 ‘여행준비의 기술’을 여행이 불가능한 시대에 내놓는다. 언젠가 하게 될 다음 여행을 미리 준비하자고 결의를 다지면서.

여행은 ‘준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얻는 것의 폭도 달라지고, 추억의 깊이가 달라진다. 티켓과 숙박을 어떻게 하면 싸게 예약할까 하는 이야기는 이 책에서 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모두 돈이 부족하고 시간도 많이 모자라니 그런 제약이 뒤따르는 상황에서도 여행준비만큼은 재미있게 해보자는 것이다.

여행을 가려면 포기해야 할 것이 많다. 경제 공동체 구성원들과 지출 코드를 맞춰야 하고, 같이 떠날 사람과 시간도 맞춰야 한다. 같이 다닐 짝꿍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한쪽이 여행을 덜 좋아할 수 있으니, 얼마나 자주, 얼마나 길게, 얼마나 멀리 갈 것인지 현명하게 결정해야 한다. 여행을 좋아하더라도 선호하는 스타일은 크게 다를 수 있어 이 역시 잘 조율해야 한다. 짝꿍이 없다면 같이 갈 사람도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 여행의 동반자와는 인생의 동반자만큼이나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고 같이 다니면 여러모로 좋을 때가 많으니까.

인생은 짧고 여행할 수 있는 날은 더 짧다. 하지만 여행준비를 해보면 알게 된다. ‘여행준비’가 거의 ‘여행’만큼이나 재미있다는 것을. 가끔은 준비에만 그치고 여행을 못 가도 상관없다. 여행준비를 하다보면 내 욕구가 무엇인지, 나의 가치관은 무엇인지 알게 되고, 대화할 때 상대와 맞출 수 있는 화젯거리가 풍부해지니까. 게다가 타인의 취향까지 알게 되는 것은 덤이다.

 

여행의 명분을 만들자!

 

여행준비의 가장 중요한 기술 한 가지는 ‘여행의 명분’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열심히 일만 하다가 여행 갈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별생각 없이 여행을 떠났다가 근원을 알 수 없는 죄책감(너무 자주 놀러 다니는 게 혹시 아닐까, 이 돈을 저축했어야 하는 건 아닐까)에 시달리지 않도록 우리는 성실한 자세로 여행의 명분을 미리미리 쌓아야 한다. 그래야 더 자주 떠날 수 있고, 떠났을 때 더 당당하게 놀 수 있다.

저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하나는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시간만 지나면 저절로 찾아오는 시점을 기념하는 것이다. 결혼기념일이나 생일 때마다 여행을 떠나는 건 어렵다 하더라도, 결혼 5주년, 10주년, 20주년, 25주년 기념일이나 30세, 40세, 50세, 60세 생일은 여행을 떠날 충분한 명분이 되지 않나. 생일을 10년에 한 번 기념하는 건 너무 띄엄띄엄이 아니냐고 생각할 필요 없다. 부모님 생신과 배우자 생일도 있고 아이들 생일도 그냥 지나치란 법은 없기 때문이다. 입사 10년, 20년도 자축할 만하고, 자녀의 초·중·고, 대학 졸업도 좋다.

다른 하나는 무엇이든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성취’를 기념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뭔가 대단한 걸 이루기는 쉽지 않으니, 적당히 만만하면서도 적당히 어려운,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나 주변 사람을 치하해줄 수 있는 뭔가를 목표로 설정하고, 그걸 이룬 기념으로 여행을 떠나면 된다. 다이어트에 성공했다거나, 악기를 배워 한 곡을 끝까지 연주하게 됐다거나, 책을 한 권 냈다거나 하면 여행을 떠난다. 기쁜 일을 여행으로 자축하는 것도 좋지만, 이런 명분을 세워두면 오히려 목표를 앞당겨 달성할 가능성이 높아지니 일거양득이다.

 

식도락이 30프로, 여행은 관계의 미학

 

저자의 여행과 여행준비에는 그만의 특징점이 있는데, 식도락을 좋아하는 그로서는 여행준비 시간의 최소 30퍼센트는 식당 찾기에 할애한다. 여행 중에 잘 먹는 한 끼는 멋진 풍경보다 가슴에, 혀에, 머리에 더 깊이 남기 때문이다. 길을 가다 대충 골라 들어간 식당에서도 추억은 생길 수 있지만, 더 잘 준비하고 미리 예약할수록 식당에서 더 근사한 경험을 할 확률이 높아진다. 덴마크 여행을 떠나기 전 세계적인 레스토랑 노마를 예약하는 데 실패한 저자는 그대로 주저앉지 않았다. 두 번째 타깃인 제라니움을 노리기 시작했다. 주 4일만 문을 여는 제라니움은 90일 전부터 예약이 가능한데, 정확히 90일 전, 그것도 덴마크 시각 자정에 시도해도 예약에 성공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일정표에 크게 입력해놓았다가 저자는 정확히 90일 전 새벽에 일어나서 컴퓨터를 켰다. 새로고침을 몇 번 반복하다보니 예약 페이지가 열렸다. 곧바로 클릭. 그리고 성공!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해냈다! 이름, 이메일과 함께 신용카드 정보를 입력하고 밥값의 절반쯤을 미리 결제해 예약에 성공했다. 수없이 새로고침하며 눌러도 실패했던 노마 예약의 실패가 이로써 회복됐고, 제라니움에서는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들이 생겼다.

둘째, 외국에서 직접 운전을 한다면, 여행의 재미와 환상은 두 배로 상승한다. 특히 해외에는 ‘세상의 끝’ 분위기를 풍기는 드라이브 코스들이 있는데 저자는 자신이 가본 코스들을 신중하게 골라 책에 담아냈다.

셋째, 혼자 하는 여행보다 ‘같이’ 하는 여행을 저자는 선호한다. 그의 가장 충실한 여행 파트너는 아내인데, 여행준비를 하다보면 나를 알게 되는 것은 물론 배우자의 가치관과 선호도를 속속들이 알게 된다. 서로 한발씩 양보하고, 좋아하는 곳을 공유하며, 여행에 대한 환상과 추억을 쌓아가면서 상대를 마치 자신처럼 더없이 가깝게 인식하게 된다.

이외에도 현지어를 얼마만큼 준비해서 갈까, 플렉스를 할 수 있는 여행회화로는 무엇이 있을까 등등 이 책은 쓸모 있는 여행준비의 기술들을 펼쳐놓는다.

 

이탈리아는 난장판이고, 미국은 먹기만 하고

: 스포츠 관람 중 깨달은 의외의 민족성

 

마치 실용서일 것 같은 이 책은 한편 여행과 여행준비의 에피소드가 가득한 이야기책이기도 하다. 물론 여행에서 생긴 일화도 많이 담겨 있어 앞으로도 여행을 기대하게 만든다.

그중 이탈리아, 영국, 네덜란드, 미국, 일본, 호주, 타이 등에서 관람한 각 국가의 스포츠는 국민성을 간파하도록 이끌었다. 프란체스코 토티가 주장이던 시절 이탈리아에서 AS로마 홈경기를 보러 갔을 때였다. 경기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분위기는 거의 난장판이었다. 곳곳에서 폭죽을 터뜨려 연기가 가득했고, 경기장 전체에 몽둥이를 든 경찰관과 호스를 든 소방관이 줄지어 서 있었다. 휘슬이 울린 후에는 더했다. 누구는 소리지르고, 누구는 담을 넘고, 여기저기서 뭔가가 날아다녔다. 그때 AS로마는 두 골을 앞서가던 중이었는데 동점이 되더니 후반 중반쯤 역전골까지 먹었다. 그 순간 관중이 폭발했다.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그런데 황당한 건, 그렇게 난리를 부리던 관중들이 아직 경기가 10분 이상 남았는데 갑자기 일어나서 퇴장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한 골만 넣으면 동점인데, 왜 나가지?’ 경기는 종반으로 치달으며 점점 치열해지는데, 사람들은 계속 빠져나갔다. 저자는 당황해 속으로 생각했다. ‘선수들 얼굴 보며 욕해주려고 좋은 자리 잡으러 가는 건가? 나도 나가봐야 하나?’ 마침내 종료 5분을 남겨두고 저자도 안절부절못하다가 그들을 따라 나갔다.

하지만 따라 나간 결과는 허무했다. 경기에 열광하던 시민들은 자신이 응원하던 선수들을 뒤로한 채 교통 정체를 피해 빨리 집에 가려고 서두른 것이었다. 즉 그들에게는 역전의 순간을 볼 기회보다 차 안 막히는 게 급선무였던 것이다.

한편 미국에서 야구장에 가면 이 사람들은 야구를 보러 온 건지 먹으러 온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끊임없이 먹는다. 관중석의 자기 자리는 비워놓은 채 매점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서 이것저것 먹으며 TV로 야구를 보는 사람도 많다. ‘그럴 거면 왜 왔는지. 여기가 맛집이야?’

영국에서 축구장에 가면 그자들은 축구를 보러 온 건지 도서관에 온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진지하고 심각하게 축구를 본다. 하프 타임 때 말고는 화장실에 가는 사람도 거의 없어서, 중간에 누가 나가려 하면 짜증이 밴 얼굴로 길을 비켜준다. 이 엄중한 시기에 화장실 가는 너는 생각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이런 표정이다. 당연히 경기를 보며 뭘 먹는 사람도 드물다.

일본에서 야구장에 가면 외야석을 가득 메운 관중의 일사불란한 응원에 놀라게 된다. 내야는 우리 야구장 풍경과 비슷하지만, 외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거의 모두가 유니폼을 입었고, 응원단장의 손짓 하나에 신속 정확하게 구호를 외치며 동작을 실행하는데, 이건 전문 응원단이 따로 없을 정도다.

 

***

저자가 오랜 세월 쌓아온 ‘기술’들을 읽다보면 독자 역시 나도 ‘여행준비의 기술’을 습득하고 싶다, 여행보다 ‘여행준비’가 더 끌린다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될 것이다. 우리, 너무 오랫동안 준비할 수 없지 않았나. 이제는 슬슬 준비하면서 앞으로 도래할 여행의 기회를 잡아야 할 것이다. 바로 이 책과 함께. 그리하여 저자는 마지막 보너스 트랙으로 ‘가보니 참 좋았던 곳 일곱 군데’ ‘가서 먹으니 참 좋았던 식당 일곱 군데’ ‘가보면 참 좋을 (아직 안 가본) 곳 일곱 군데’를 방출한다.

 

목차

머리말

 

1부 여행준비라는 취미의 매력

1 느끼할 땐 피클이지

  1. 취미가 뭔지 몰랐다
  2. 아무튼 외국어
  3. 우아하게 돈 쓰는 데 필요한 영어
  4. 아버지와 김찬삼
  5. 여행준비는 버리기 연습
  6. 대화의 기술

 

2부 여행은 또 다른 일상

  1. 평소처럼, 평소와 달리
  2. 별을 찍어보아요
  3. 여행지에서 뭘 먹지?
  4. 인생 맛집, 추억 맛집
  5. 세계 최고 식당의 자격
  6. 경기장에 가면 보이는 것들
  7. 호기심 대마왕의 기억력
  8. 자본주의 전시장
  9. 독서, 최고의 여행준비

 

3부 몸은 못 떠나도 마음만은

  1. 오키나와에서 대리운전을
  2. 어머, 이건 꼭 사야 해
  3. 관객 혹은 배우가 되어
  4. 가보니 참 좋았다
  5. 가서 먹으니 참 좋았다
  6. 가보면 참 좋겠다
  7. 피자 다섯 조각
미리보기

두 번째 여행지는 프랑스와 영국이었다. 비행기 표만 사두었을 뿐, 출발 두어 달 전까지 구체적인 계획은 별로 없었다. 첫 해외여행도 아닌데 천천히 준비하지 뭐, 하는 생각도 있었고, 졸업시험과 의사국가시험을 앞두고 있어서 준비할 시간이 없기도 했다. 그 무렵 문제의 문청들이 모이는 자리가 있었다. 다들 별 볼일 없는 근황들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J가 수줍게 말했다. “나, 영화제 초청받았어.”

그가 영화아카데미 졸업 작품으로 만든 단편영화 「2001 이매진」이 클레르몽페랑 국제단편영화제에 초청된 것이었다. “우와!” 우리의 짧은 축하와 긴 질문이 이어졌다. 돈 주냐, 비행기 표 주냐, 호텔 숙박 해주냐, 밥도 주냐, 근데 클레르몽페랑이 어디냐. 흥분이 좀 가라앉은 후 우리가 물었다. “근데 내용이 뭐냐?” “자기가 환생한 존 레넌이라고 믿는 남자의 이야긴데…… 사람들이 그의 음악성을 몰라주는데…… 어느 날 요코를 만나 사랑하게 되는데…… 누군가 자기를 죽이려 한다는 망상에…….”

그런데 이런 우연이 있나. 영화제 기간이 내가 프랑스에 머물기로 되어 있는 기간과 겹쳤다. 그때까지 영화제라곤 단 한 번도 못 가본 내가 따라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심지어 숙소 문제도 해결됐다. 나도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J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내 방에서 같이 자. 트윈이야.”_14~15쪽

 

제목과 달리 여행준비의 ‘기술’이 안 나온다고 불평하실 분들이 계실지 모르니, 이쯤에서 중요한 기술 하나 투척해본다. 여행준비의 기술 중 매우 중요한(어쩌면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여행의 명분’을 만드는 일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주 많지만, 여행에는 숱한 제약이 따른다. 그러니, 너무 열심히 일만 하다가 여행 갈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별생각 없이 여행을 떠났다가 근원을 알 수 없는 죄책감(너무 자주 놀러 다니는 게 혹시 아닐까, 이 돈을 저축했어야 하는 건 아닐까 등등)에 시달리는 일이 없도록, 우리는 성실한 자세로 여행의 명분을 미리미리 쌓아야 한다. 그래야 더 자주 떠날 수 있고, 떠났을 때 더 당당하게 놀 수 있다._29쪽

 

짝꿍이 지도에 찍어놓은 별들을 하나씩 클릭해보면 미처 몰랐던 그의 숨겨진 욕망이 보일 수 있다. 그가 평소에 어떤 꿈을 꾸며 살고 있는지, 그 편린을 엿볼 수 있다. 여기에는 왜 가고 싶어? 여기는 어떻게 알고 별을 붙여놓은 거야? 이런 질문을 통해 대화의 물꼬를 틀 수도 있다. 앞에서도 대화의 기술을 이야기했지만,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야말로 좋은 대화의 시작이다._93쪽

 

내가 자동차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은 이렇다. 주 목적지가 어떻게 정해졌느냐에 따라 첫 단계가 다르다. 지도에 별이 많이 찍혀 있기 때문에 목적지로 간택된 경우라면, 그 별들을 다시 살펴보고, 책꽂이에 있는 가이드북도 다시 펼쳐보고, 인터넷 검색도 추가로 더 하면서 더 많은 별들을 찍는다. 학회나 출장 등의 이유로 목적지가 정해져서 그 주변에 별이 하나도 안 찍혀 있는 경우라면, 일단 서점에 가서 책들을 산다. 최소 두세 권은 산다. 그 책들을 훑어보면서 관심이 가는 곳들에 별을 찍는다. 별다방에서 별을 모아서 매년 연말에 받긴 했으나 주로 커피 잔 받침으로만 쓰이던 다이어리가 이때 유용하게 쓰인다. 특히 관심이 많이 가는 곳들은 종이에도 메모를 해나간다. 그다음엔 별들을 이어야 한다. 갈등의 순간이 시작된다. 어떤 별들을 잇느냐에 따라 타원형이 그려질 수도 있고(이러면 숙소를 최소 세 군데쯤 찾아야 한다), 눈송이 모양이 그려질 수도 있다(이때는 숙소가 한두 곳이면 충분하다)._173쪽

 

할머니는 종이를 찢는 동작을 여러 번 반복했다. 그래도 된다고? 그게 말이 돼? 나중에 이탈리아에 다시 입국할 때 체포되는 건 아니고? 걱정하는 눈빛의 나를 보며 할머니는 또 말했다. 젊은 친구, 내 말을 믿어. 노 프라블럼. 그냥 찢어버려. 저 뒤에 있는 진짜 경찰 아저씨 나타나면 상황이 더 복잡해져. 그러니 얼른 가. 집으로 고지서가 안 갈 수도 있어. 그럼, 당연히 아무것도 안 해도 돼. 걱정하지 말고 그냥 가. 할머니는 눈을 끔뻑끔뻑하며, 만면에 미소를 띠며, 영화 「괴물」에서 변희봉 님이 했던 그 손동작을 시연했다._177쪽

지은이/옮긴이

지은이

박재영

의사 출신의 21년차 저널리스트이자 ‘여행준비러’. 책 팟캐스트 <YG와 JYP의 책걸상>의 진행자이며, 여행준비와 요리, 책 읽기가 취미다. 장편소설 『종합병원2.0』, 한국의료 해설서 『개념의료』, 평론집 『한국의료, 모든 변화는 진보다』 등 7권의 저서를 펴냈고, 『청진기가 사라진다』(공역), 『환자의 경험이 혁신이다』(공역), 『차가운 의학, 따뜻한 의사』 등 8권의 책을 번역했다. 여러 일간지 및 주간지의 고정 칼럼니스트로 활동했으며, 팟캐스트 및 유튜브 <나는의사다> 프로듀서 겸 진행자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의료법윤리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브란스병원에서 수련의 과정을 마친 후 3년 동안 공중보건의사로 일했고,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장을 지냈다. 1999년부터 2011년까지 신문 청년의사 편집국장으로, 그 후에는 편집주간으로 일하고 있다. 연세의대 의학교육학과 객원교수로, 인문사회의학 관련 내용을 강의하고 있다. 그 외에 한국의료 현안, 헬스케어의 미래, 병원 경영, 글쓰기/커뮤니케이션, 의료 인문학 등의 주제로, 병원, 기업, 학회/협회, 학교 등에서 다수의 강연을 했다. 현재 한국의료윤리학회 상임이사, 인권의학연구소 이사다.

 

추천의 글

제목이 점잖아서 점잖은 여행 책인 줄 알았는데 유쾌한 웃음으로 가득한 책이다. 꼭 여행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딴짓과 딴생각에 쉽게 빠지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꼭 맞는 독자다. 웃다보면 삶에 깊숙이 들어오는 주제들을 맞닥뜨려, 박재영 작가는 작가가 될 수밖에 없었구나 싶어진다. 여행의 선택들을 자세히 살피다가 더 큰 선택들도 들여다보게 되는 흥미롭게 다층적인 에세이다._정세랑 소설가

 

‘여행준비의 기술’이라니, 여행준비에 무슨 기술이 필요하단 말인가, 처음에는 그렇게 고개를 갸웃거렸더랬다. 그런데 읽으며 마음이 서서히 바뀌었다. 준비 없이 가는 여행은 음식을 맛보지 않고 삼키는 거나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일이라 믿게 됐다(내가 여태까지 그렇게 살아왔다니……). 심지어 여행준비만으로도 꽤 즐겁겠구나, 아니 일상을 곧 여행준비의 과정으로 만드는 것도 괜찮겠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됐다. 결론적으로 이 책, 무척 유용하다. 그리고 대단히 재미있다._장강명 소설가

 

이 책을 읽으며, 스스로를 ‘준비하는 상태’에 놓아두는 사람에게만 일상이 비로소 보여주는, 기발하고 풍성한 세계에 관해 생각했다. ‘여행준비’라는 하나의 방식으로, 평소라면 그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갈 일상을 붙들어 반짝반짝 윤을 내는 과정은 이미 어떤 세계를 ‘여행 중’인 것과 다름없다는 사실도. 여행 한 번 못 간 올해가 될 줄 알았는데, 여행 중인 올해가 되었다. 웃긴데 눈물이 나고 슬픈데 웃음이 나는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랬다._김혼비 에세이스트

 

저자는 나를 딱 한 번 만났을 뿐인데 어느 날 원고를 툭 보내오더니 읽어보고 괜찮으면 추천사를 써달라고 했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고 설명하는 시각도 대체로 이런 투다. 정중하지는 않지만 무례하지도 않고 예리하지만 집착이 없다. 사실 이 책은 여행서를 빙자한 자서전 같기도 한데, 그럼에도 강력 추천하는 이유는 매우, 대단히, 몹시 재미있기 때문이다. 꼭 사서 읽으시면 좋겠다. 저자가 인세로 돈맛을 좀 보면 얼른 한 권 더 써주지 않을까 싶어서다._이진우 MBC ‘손에 잡히는 경제’ MC

 

여행은 즐겁다. 빠듯한 삶 속의 아기자기한 빈틈이다. 그러나 박재영은 여행준비도 여행만큼 맛스러움을 보여준다. 여행엔 원래 놀라움이 따르지만, 준비만 가지고도 여행 후일담이 될 수 있는 놀라움은 색다른 기쁨이다. 능청스런 글솜씨가 한몫을 다한다._황동규 시인

 

여행이 아닌 여행준비의 기술이라니! 행복이 현재의 결과물에 좌우된다고 생각되지만, 의외로 미래에 대한 긍정적 기대도 상당한 영향을 준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느끼는 기대가 실제 여행보다 더 좋을 수도 있다. ‘내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알게 해주는 것’이 여행준비의 장점이라는 저자의 이야기에 공감한다. 이 책을 통해 여행준비의 기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순간, 삶의 스트레스에서 한발 물러나 자신과 세상을 여유롭게 보는 힐링 기술, 메타뷰meta-view를 키울 수 있다. 이 책은 코로나 우울증 극복을 위한 최고의 명약이다._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그의 팟캐스트를 들으며 궁금했다. 그는 어떻게 세상만사 모든 것에 댓글을 달 수 있게 되었나? 책을 읽어보니 알겠다. 세상 모든 곳에 갈 준비를 해본 사람. 가보지 않았어도, 먹어보지 않았어도, 가보고 먹어본 사람보다 즐거울 수 있는 사람. 박재영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_이준원 SBS ‘최영아의 책하고 놀자’ PD

 

소설을 읽은 뒤 그와 대화하면 결과는 늘 내 쪽이 의문의 1패다. 읽기는 내가 더 성실히 읽은 것 같은데 대화의 승기는 항상 그가 잡고 있는 식이다. 질투를 넘어선 궁금증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다 읽고 확실히 알았다. 나는 기술에서 밀렸다. 인물부터 파악하는 자는 배경 먼저 파악하는 자보다 작품을 즐길 수 없다. 나는 소설 속 이야기를 읽지만 박재영은 소설의 시공간을 경험한다. 언제나 관광객 모드를 장착하고 있는 이 탁월한 능력이야말로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인생 준비의 기술이 아닐까._박혜진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