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아
2020.10.20
손택 없는 세계에서
다이앤 아버스가 찍은 수전 손택. 1965.

 

 

…… 서점과 언론사에 보내는 신간소개문을 가까스로 썼다. 가까스로 안 쓴 것같이 거창하고 요란하게 나왔지만. “이 사람은 왜 이렇게 프로필도 안 써지고 봇자[보도자료]도 안 써지는지… 각이 안 잡힌다 ㅠㅠ” 개인 인스타그램에서 우는소리 했다. 믿을 구석인 편집자 선배에게도 우는소리 했다. “엄청 끙끙대면서 울며 겨자먹기로…… ㅠㅠ” 사실 번역원고가 들어오기도 전인 지난해에도 다른 책 행사에서 다른 저자를 만나 우는소리 했다. “선생님, 이 책은 평작이에요…… ㅠㅠ” 저자는 호기심인지 측은지심인지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었지만, 저 말은 진심이었다. 뭘 가져가도 그 사람 자체, 그 사람의 삶 자체에 다가가려 하면 그대로 찌그러졌다. 그 사람 앞에서 여전히 꼿꼿하고 단단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이 쓰고 말한 것들뿐이었다.

수전 손택이 전 생애에 걸쳐 보여준 압도적인 존재감은, 그가 죽고 없는 세계에서 그의 평전을 작업하는 나를 기묘한 부재감에 사로잡히게 했다. 팬데믹은 있는데, 그 은유의 심연을 지상으로 끄집어올리는 사람은 없구나. 아둔해지지 말고 흐리멍덩해지지 말고 현혹되지 말라고 윽박지르는 사람도 없고, 아무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조악하고 하찮은 것과 웅장하고 하품 나는 것을 찬미하는 사람도 없구나. 혜성 같은 환멸로 대중을 사로잡는 인물을 본 적이 없구나. 내가 사는 세상에는 수전 손택이 있지 않구나. 전광훈 트럼프 기안84 온 세상 개소리가 들려오면 이렇게 생각했다. 손택이 있다면 저 말들을 어떻게 피폭시켜 발설지옥에 빠트릴까.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나락으로 굴러가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했다. 손택이 SNS를 안 해서 다행이다.(그리고 이 다행을 위해 잃을 것은 무엇일까.)
부재를 계속 의식하다 보면 존재감 비슷한 것을 느끼게 된다. 나는 점점 수전 손택을 등장 인물이 아닌 주변 인물처럼 느끼게 되었다. 저서를 보면 말을 듣는 것 같고 인터뷰를 보면 대화를 나누는 것 같고 영상을 보면 만난 것 같고 일기를 보면 그만 봐야 할 것 같았다. 책을 내려면 지성의 화신이라는 사실이 중요해야 하는데, 어쩐지 그 화신이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열광과 혐오를 어떻게 견뎠는지에 더 관심이 갔다. 좌절이 성취에 가려지지 않았고, 환상이 현실에 밀려나지도 않았다. 기획된 정체성으로 완성해낸 수전 손택만큼이나, 그러기 위해 그 사람이 포기한 수전 손택, 되고 싶어했으나 되지 못한 수전 손택이 궁금했다. 그가 만난 사람은 누구인지, 그가 사람들과 있을 때 누가 되는지를 알고 싶고, 무언가를 맹렬히 해나가던 시간만큼이나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시간의 환희와 수심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알고 싶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궁금해하다 결국 평전 읽기에 이르는 듯하다. 그들에게는 “해석이란 지식인이 예술작품에 가하는 복수다” “다 같이 슬퍼하자. 그러나 다 같이 바보가 되지는 말자” 같은 말들만큼이나 다음 구절들이 중요하게 읽힐 것이다.

 

“저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였어요. 제가 아이라는 게 너무 짜증이 나서 늘 분주했죠.”(48)
“외딴곳에 살았지만, 바깥세상 어딘가에 나 같은 사람이 얼마 없으리라고는 절대 생각해보지 않았거든요.”(58)
“누군가가 저를 사랑했다는 말은 못 하겠어요. 아니, 그런 말은 정말 할 수 없습니다.”(82)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사람이었죠. 그에 비하면 저는 세상 물정에 밝은 사람이에요.”(82)
수전 손택은 누군가 자신을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르치려 든다는 느낌이 들 때마다 가차없는 공격을 퍼부었다.(253)
손택의 마음을 특별히 사로잡은 점은 그의 “음울한 기질”—손택이 강렬하게 동질감을 느낀 우울함—이었다. 손택에 따르면, 이 우울함은 스스로를 가차없이 대했던 태도, 화해할 수 없는 자의식과의 관계로 인해 자기 자신을 텍스트처럼 해독하며 서로 모순되는 여러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 운명을 그에게 지웠다.(299-300)
손택은 이런 비난에 엄청난 상처를 받았다.(375)
“사람들은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과 함께라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둬야 했죠.”(379)
“수전과 함께한다는 건 조수석에 앉거나 갓길에서 차에 치여 죽거나 둘 중 하나였지만, 조수석에 앉으면 환상적이었죠.”(381)
“펜 역사에서 전 세계를 상대로 말하는 법을 아는 유일한 위원장이었습니다.”(382)
“우리는 ‘동반자’나 ‘파트너’와 같은 단어를 끔찍이 싫어했습니다. 수전은 그런 단어를 절대 사용하지 않았죠.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 우리 관계는 모든 차원을 포함했습니다. 파란만장했죠.”(340-341)

 

 

애니 리버비츠가 찍은 수전 손택. 1988.

수전 손택이 찍은 애니 리버비츠. 1994.

 

초교를 마치고 500여 개에 달하는 색인 목록이 어느 정도 정리되어갈 무렵에 유튜브에서 손택의 영상을 자주 찾아보았다. 이것도 기획된 정체성인가 싶을 정도로 우아하고 권위 있는 목소리, 투시와 응시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듯한 눈빛, 딱 필요한 만큼만 사용하는 몸짓, 드러내는 것과 드러내지 않는 듯한 것의 조율, 긴장감을 조성하거나 무장을 해지시키는 순간들은 그야말로 지성과 관능의 결정체로 보였다. 저 눈은 내 뒤에 서 있는 무수한 나를 다 볼 것 같았다.

 

평전 읽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호기심을 가지고 책을 선택하는 듯하다. 『수전 손택: 영혼과 매혹』이 그것을 채워줄 수 있는 책인지 모르겠다. 이 책을 편집씩이나 하고 얻은 거라곤 그를 영영 알 수 없을 거라는 예감뿐이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이 책은 어떤 종류였든 그 호기심을 더 왕성하고 풍부한 것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슈라이버의 책을 작업하는 동안 계약한 두 번째 책 『수전 손택: 삶과 일』(근간)*이 그 증거다. 같은 인물의 평전을 두 권 내는 사람이 어디 있나. 하지만 내가 그러고 있다.

 

 

 

이야기하기와 사진 윤리에 관한 존 버거와의 대화. 1983.

 

 


* 2020년 퓰리처상 수상작인 두 번째 책 『수전 손택: 삶과 일Sontag: Her Life and Work』(근간)은 전기작가 벤저민 모서가 방대한 자료 조사와 함께 그동안 접근이 제한돼 있던 개인적 기록들과 이제껏 공적으로 손택과의 관계를 언급한 적이 없는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을 직접 인터뷰해 20세기 지식인 중 가장 매혹적인 삶을 산 인물의 끝 모르는 복잡성과 눈부신 생애를 고스란히 담아내 ‘수전 손택 평전’의 결정판으로 불린다. 2021년 출간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