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우정
2020.08.14
바르트가 수많은 사람과 주고받은 우정의 편지

계획에 없던 일이었습니다.

편집부에서 ‘바르트_앨범’으로 불렸던 이 원고는 두 가지 옷을 입고 세상에 나왔습니다.

저에게 맡겨진 임무는 이랬습니다.

‘편지’라는 특성에 맞게 소장욕을 자극하는 멋짐 뿜뿜 양장 특별판을 만들 것.

그리고 독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무선 보급판을 만들 것.

그러니까, 두 가지 버전으로 만들 것. 아니, 결국 두 권의 책을 만들라는 거잖아?

작업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두 개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본문 디자인도 두 개, 표지도 두 개.

차별점을 두고 싶었기에 판형도 달랐고, 그러다보니 페이지수까지 달라졌습니다.

본문 디자인도 조금씩 다르게 하고, 본문의 사진들을 양장은 컬러로 무선은 흑백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과연 책이 잘 나올 것인가, 독자들이 두 가지 버전을 반길까, 소장욕을 자극하는 양장본이란 과연 무엇인가!(투덜투덜)

그렇게 원고는 제 손을 떠나 인쇄소로 갔습니다.

며칠 후, 마침내 책이 회사로 들어왔습니다. 책을 보자마자 깨달았습니다.

이 책을 만들기를 정말 잘했구나, 너무 아름다운 책이구나!

그만큼 책은 너무나 아름다웠고…

저는 책이라면 무선을 선호하는 쪽인데도, 양장본은 정말로 소장 욕구를 자극했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이렇습니다.

특별양장본(500부 한정판!)과 무선보급판 중에

각자의 취향에 따라, 필요에 따라 선택해서 구매할 수 있다는 것!

 

이 책은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1915~1980)의 편지들을 묶은 책입니다.

롤랑 바르트는 『애도 일기』 『사랑의 단상』 『밝은 방』 『텍스트의 즐거움』 『글쓰기의 영도』 『기호의 제국』 등

국내에 여러 권의 책이 번역돼 있는 프랑스의 작가이자 문학이론가, 사상가입니다.

이 책에는 바르트가 살아생전 여러 사람과 주고받은 편지들이 실려 있습니다.

편지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그의 미간행 원고와 친필 편지 촬영본도 함께 실려 있습니다.

이 책은 프랑스에서 2015년에 출간되었습니다.

1915년생인 바르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서 바르트 전집의 편찬자이기도 한 에리크 마르티가

기획하고 편집했습니다. 마르티는 바르트 주변 지인들을 수소문해 바르트와 주고받은 편지들을 모았고,

그중에서도 특히 한 번도 세상에 나오지 않은 편지들만을 모았습니다.

바르트는 청년 시절 결핵에 걸려 요양소에서 꽤나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시간상으로는 이즈음인 1932년 요양소에서 쓴 편지부터 1980년 사망할 때까지 쓴 편지들입니다.

바르트와 편지를 주고받은 인물들 중엔 우리가 아는 사람도 있고, 들어본 사람도 있고, 또 아예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프랑스, 독일, 스위스 등지에서 활동했던 작가와 사상가들인데요!

이들이 주고받은 편지는, 아주 사적인 기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당시 지식인들이 어떤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는지

엿볼 수 있는 지형도로서 역할도 한다는 점이 특징적입니다.

———

이 책을 편집하면서 사후 서간문을 출간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사실 원래부터 바르트를 좋아했던 것도 아니고 그에 대해서 잘 몰랐지만,

이 책을 통해서 바르트라는 인간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되었고, 또 조금은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유명한 학자로서만 우러러봤던 인물에게서 인간적이고 또 구질구질한 면모를 보기도 하고,

(주로 그가 요양소에서 주고받은 편지들에서 그의 이러한 면이 자주 보입니다)

또 평생 글을 쓰는 사람이 겪고 있는 솔직한 심정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에서 어떤 사람이 유명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그가 자서전, 일기, 서간문을 출간했는지의 여부라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르트는 세 가지 모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저서 가운데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가 부분적으로 자서전의 역할을 하고, 『애도 일기』가 일기에 해당됩니다.)

바르트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이 편지들이 굉장히 가치 있고 흥미롭게 다가올 것 같고,

바르트를 잘 모르는 분들에게는 바르트라는 사람을 먼저 파악하고 어쩌면 그의 글로 나아갈 수 있는

지름길이 되어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